[장자] 루쉰&장자 - 절망도 희망도 허망하니 +6
기픈옹달
/ 2017-08-03
/ 조회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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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쉰 강좌에서 나눈 글입니다. 장자와 연관이 있어 나누어요.
절망도 희망도 허망하니
루쉰의 <외침>은 적막속에 있다. 그는 <고향>에서 ‘내가 내 길을 가고 있음을 알았다’고 하였으나 그의 길은 쭉 뻗은 곧은 길은 아니다. 왜냐하면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따라서 그의 걸음이란 <방황彷徨>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는 막막한 들판을 방황한다.
이런 루쉰의 모습은 <장자>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장자는 쓸모 없이 커다란 나무에 대해 불평하는 혜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 지금 그대에게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쓸모 없다고 하여 걱정하고 있구려. 아무것도 없는 고을, 드넓고 막막한 들판에 심어두는 것은 어떻소? 그 옆에서 방황하기도 하며 그 아래에서 멋대로 누워 있을 수도 있겠지요.
루쉰은 무지에서 방황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我不如彷徨于无地) 그는 천당도 지옥도 황금세계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 희망도, 절망도, 이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멈춰있을 것인가? 아니. 그는 머무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다른 길을 갈 뿐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당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내가 싫어하는 것이 미래의 황금 세계에 있으니, 나는 가지 않겠소. 그런데 그대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오. 동무, 나는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소. 나는 머무르지 않으려오. 나는 원치 않소! 오호오호, 나는 원치 않소. 나는 차라리 무지에서 방황하려 하오. <그림자의 고별>
그런데 이 말은 한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그림자, 그인 동시에 그가 아닌 무엇의 말이다. 누군가는 내면의 깊은 울림, 영혼의 목소리, 욕망의 유혹 따위를 말하겠지만 그는 그림자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림자. 이것은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나 결코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그림자의 외침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그림자는 고별을 말하나 과연 떠날 수나 있을까?
그보다 그림자라는 ‘어둠’에 주목했다는 점을 일단 살펴보자. 그림자의 목소리는 아무리 보아도 밝고 명쾌할 수 없어 보인다. 대체 그 목소리는 어떤 것일까? <가을밤>을 보면 그는 한 밤 중에 어떤 웃음소리를 듣는다.
나는 문득 한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클클대는 것이 잠든 사람을 놀래지 않으려는 것 같았으나, 사방의 공기가 화답하며 웃는다. 깊은 밤이라 다른 사람은 없다. 나는 즉각 그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가을밤>
그 목소리는 자신밖에 들을 수없는 소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조차도 섬뜩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어쩌면 그림자의 목소리는 한밤에 들린 웃음소리마냥 어둠으로 허무로 깊이 끌어당기는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어둠과 허무가 그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그는 세계가 본디 어둠과 허무라 말한다. ‘사방이 먼지이다.’(<동냥치>) ‘별도 없고 달도 없다. 말라 죽은 나비도, 웃는 것의 막막함도, 사랑의 춤사위도 없다.’(<희망>) 이 공허의 세계 속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육박해 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는 이 세계의 본 모습, 적막하며 허망한 이 세계를 응시하되 그저 어둠에 집어 삼켜지는 존재는 아니다. 그는 소멸로 그의 존재를 드러낸다. 죽음과 썩음이야 말로 존재와 생명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바로 들풀이 그러하듯이.
들풀은 뿌리가 깊지 않고 꽃도 잎도 아름답지 않다. 그렇지만 이슬과 물, 오래된 주검의 피와 살을 빨아들여 제각기 자신의 삶을 쟁취한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짓밟히고 베일 것이다. 죽어서 썩을 때까지. 그러나 나는 평안하고, 기껍다. 나는 크게 웃고, 노래하리라. <제목에 부쳐>
그러니 그의 평안이란, 그의 웃음이란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무엇과 다르다. 무엇인가를 얻은 결과가 아니다. 도리어 상실과 소멸 끝에 얻는 평안과 웃음, 노래이다. 어둠으로 질주함. 그렇기에 그림자는 어둠속에 소멸하고, 존재를 상실하되 거꾸로 세계로 육박해 나아가며 다른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나 홀로 먼 길을 가오. 그대가 없음은 물론 다른 그림자도 암흑 속에는 없을 것이오. 내가 암흑 속에 가라앉을 때에, 세계가 온전히 나 자신에 속할 것이오. <그림자의 고별>
장자는 일찌기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다. 그림자를 떼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던 사람은 끝내 죽고 말았다. 그러나 그림자를 떼어내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더 큰 그림자-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거꾸로 이 방법은 자신도 그림자가 되는 법이라 할 수 있다. 루쉰의 말을 빌리면 암흑 속에 가라앉기. 그러나 이 암흑이야 말로 세계를 온전히 만나는 공간이 된다. 무위와 침묵, 그리고 허무야 말로 먼지 속에 방황하는 자들이 얻을 수 있는 세계의 본 모습이다. (<동냥치>)
그는 이른바 ‘계몽의 시대’를 살았으나 당대의 여러 사람들과는 달랐다. 진화를 이야기했으나 그가 말하는 진화란 특정한 목표를 향하지 않는다. 그는 한 해의 시작, 숱한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1월 1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희망이야 말로 ‘방패’였다고 말한다.
전에는 내 마음도 피비린내 나는 노랫소리로 가득하였다. 피와 쇠붙이, 화염과 독기, 회복과 복수. 헌데 문득 이런 모든 것이 공허해졌다. 때로는, 하릴없이, 자기 기만적 희망으로 그것을 메우려 하였다. 희망, 희망, 이 희망의 방패로 공허 속 어둔 밤의 내습에 항거하였다. 방패 뒤쪽도 공허 속의 어둔 밤이기는 마찬가지이건만.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는 내 청춘을 줄곧, 소진하고 있었다. <희망>
그래, 희망이야 말로 빛 아닌가. 어둠을 몰아 낼 수 있을 것 같이 밝게 빛나는 무엇. 희망은 늘 빛의 형상을 띄고 있다. 눈부신 것, 광채나는 것, 따뜻한 무엇. 그렇기에 사람들은 희망을 좇아 삶을 매진한다. 비록 그것이 무지개처럼 끝내 잡을 수 없는 것이라 하여도. 그러나 그는 희망을 좇기 이전에 자신에게 엄습한 어둠을 밤을, 허무를, 침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희망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라도 어둠은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당신은 나의 작품을 많이 읽은 듯하지만, 나의 작품은 너무 어둡습니다. 나는 언제나 ‘암흑과 허무’만이 실재하고 있는 듯해서 일부러 그것에 맞서 절망적인 항전을 하고 있는 바, 과격한 말이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나의 연령과 경력 탓일지도 모르고,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암흑과 허무만이 실재한다는 것을 결국 증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지서>: <루쉰 꽃이 되지 못한 부초> 190쪽에서 재인용
사실 어찌보면 모순적 말이다. 암흑과 허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허무란 텅비어 없다는 것이다. 어찌 ‘텅비어 없음’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러니 루쉰의 말처럼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도 옳다. 그러나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실재한다고 증명할 수 없다 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거꾸로 그렇기에 결코 이 존재하지 않는 허무란 없앨 수가 없다. 있음을 없애기는 쉬우나 없음을 없애기는 어렵다. 아니 어쩌면 끝내 떼어내고 없앨 수 없다. 마치 그림자처럼.
‘희망의 방패’도 어둠의 내습을 막지 못한다. 그렇다면 절망할 것인가? ‘절망絶望’이란 무엇인가. 이는 희망이 끊어진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닌가. 절망이란 희망의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희망이 있어야 절망이 있다. 그가 떼어내지 못한 어둠과 허무란 희망인가 절망인가? 그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무엇을 발견한다. 허망虛妄!
绝望之为虚妄, 正与希望相同。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마찬가지이다. <희망>
희망도 절망도 허망하다. 그렇다면 오롯이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필멸의 운명을 안고 나아가는 자가 있을 뿐이다. 오직 나아감이 있을 뿐. 그렇기에 그의 나아감은 희망을 상실하였으나 진취적이다. 그의 방황은 길을 만들어 낸다.
나는 몸소 이 공허 속의 어둔 밤에 육박하는 수밖에 없다. <희망>
마치 그림자가 그러하듯이. 마치 밤에 웃음소리를 듣듯이.
한 루쉰 연구자는 이를 ‘절망의 절망’으로 다른 연구자는 이를 ‘반항’이라 말하기도 했다.
희망을 비웃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희망을 비웃는 웃음은 절망도 비웃는다. 그는 절망에 안주하지 않았다. 절망을 절망했던 것이다. 절망에 길을 물어 찾아 겨우 당도했던 것대로라면 그는 한 명의 허무 철학가에 그칠 것이다. 사실 루쉰 속에서 ‘허무’만을 뽑아 내는 비평가도 있다. 인간 그 자체에서 멀어져 사상만을 고정된 것으로 놓고서 보는 경우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사상’이라는 껍질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루쉰은 절망 속에 살지 않았다. 그는 절망을 버렸다. 양주, 노자, 안드레예프를 향해 길을 걸었던 것만이 아니라, 양주, 노자, 안드레예프에서 묵자, 공자, 니체를 향해 길을 걸았다. 그 방황의 길 위에서 천애 고독의 문학가로서 <이소>의 시인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루쉰>, 다케우치 요시미, 131쪽.
‘절망’에 대한 반항은 결코 희망의 긍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결말을 알아차린 뒤의 현실적 선택이다. ‘나’는 ‘나’의 과거, ‘나’의 현실적 운명, ‘나’의 미래의 결말 전부를 ‘나’의 ‘현재’에 줄곧 침투한 세력으로 간주하고 태연하게 받아들인다. ‘나'는 과거의 무거운 부담 때문에 풀이 죽는다거나 세계의 냉담함에 굴복하지 않으며 죽음이 떠오른다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것들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반대로 나는 ‘절망에 반항’하면서 영원히 멈추지 않으며 실천과 항전에 임한다. 이를 통해 ‘나’의 ‘현재’에 더욱 선명한 의의를 부여한다. <절망에 반항하라>, 왕후이, 299쪽.
나는 루쉰의 글을 사랑한다. 길 없는 길을 가는 법을 가는 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절망을 절망하지 않는 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깊은 심연 속에서도 번뜩이는 눈을 잃지 않고,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펄떡이는 심장을 잃지 않는다. 예리하며 생동감 넘친다. 그래서 <제목에 부쳐>에서 말한 ‘가거라(去罢)’라는 말이 가슴을 울린다.
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잘 읽었습니다.
희망도 절망도 불신하면서 공허를 향해 육박해가는 필멸자의 단단함을 보여주는 루쉰이로군요.
어쩐지 들뢰즈를 떠올리게 하는 장자의 광언으로부터, 니체를 닮은 루쉰의 단호함까지 단숨에 이천년 거리를 주파해내는
그런 수요일 밤과 목요일 아침이로군요.
긴 호흡 한 번 하고, 마음의 찌꺼기들을 털어내면서 오늘의 실천과 항전에 임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항전이라... 장자와 루쉰에게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아자자~!!
wooboo님의 댓글
wooboo
등불 문답 - 창비전작시 만인보 24 (고은 作)
초저녁 등불을 켜자 / 등불 앞 유리창에 / 등불이 비쳤다
만공이 제자 혜민에게 물었다 / 이 등불이 옳으냐 / 저 등불이 옳으냐
혜민이 등불을 탁 껐다 / 두 등불이 없어졌다
스님 어찌하시렵니까
스님 만공이 일어나 / 불을 켰다
혜민이 다시 불을 껐다
스님 만공이 벌떡 일어났다
저 밖에 나가자꾸나
스승과 제자가 어둠속에서 / 흐아흐아흐아흐아 / 실컷 웃었다
음력 열이틀날 밤 달이 혼자 수근거렸다 / 원 싱거운 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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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를 듣겠다고 그 멀리서 그 더운데 달려가는 작자들
다 싱거운 작자들.
음력 열이틀날 달이 우리를 보고 수근 거릴 것 같다. 저 싱거운 작자들.
저 무용지물들!
기꺼이 밤을 준비하는 자들!
하이데거가 산에 오를 때 세가지가 좋다고 말했지요.
고통, 고독, 고견.
그런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만이 저 느낌에 동감하지요.
허당의 생각이었습니다.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시가 재미있습니다. ^^
육박하는 밤에 대해 장자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할지 다음 시간을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유택님의 댓글
유택
블랙홀 같은 글... 안 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ㅎㅎㅎ
눈이 핑핑 돌아가요. 힘들게! 잘 읽었어요. ^^;;;
책은 안 읽고 갔지만 어제 수업 <양생주><인간세> 열심히 들었답니다.
개인적으로 느낀점이 많았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드네요.
이 무더위속에 장자 열강, 언제나 늘 감사해요!
기픈옹달님의 댓글
기픈옹달
앗. 블랙홀이라... 이거 스포인데요.. ;;;
아직 블랙홀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를 먼저 내다보시다니...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 겠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