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4강 후기 :: 한나 아렌트의 근대 및 자본주의 비판 +3
샤프
/ 2018-01-31
/ 조회 2,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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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 같은 20세기의 과학 철학자는 과학적 인식에 도달하려면 감각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인식, 지구적 조건 속에서 체험하는 “지식의 최초형태”가 일종의 인식론적 장애물을 경유한 것임을 깨닫고서, 그 지식과 조건으로부터 인식론적으로 단절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바슐라르의 제자인 알튀세르는 이러한 태도를 역사 과학, 인간 과학의 영역에서까지 활용하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아렌트는 인간사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인식 하려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그러한 이유로는 과학적 인식은 결국 지구적 조건을 넘어서는 ‘지구 소외’를 전제로 하며 어떠한 ‘과정’으로 작동하는지를 수학적 추론 과정과 일치되는 것으로 밝혀야하는데 인간사와 역사의 영역자체가 우연적이고 수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확실성도 보증해주지 못하므로 정치나 역사 영역에 대한 과학적 연구 역시 그 재료를 ‘계산 가능한 실재’로 환원시켜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사나 역사에 대한 탐구는 더 이상 인간들 사이 안에서 벌어지는 우연적 사건들을 바라보거나. 그 사건들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할 만한 것들’을 기억하는 것이 되어 버릴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현실에 대한 사유가 아니라, 전제로서의 법칙에 대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서 세계의 모든 것이 읽혀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인간사를 사회과학적으로 예측하고, 활용하는 학문이 힘을 발휘하여 인간사를 함부로 재단해 버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렌트는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지구로부터의 소외에 대한 입장을 경제적인 것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로써 인간 대다수가 단순히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해 버린 시대적 조건에 자본주의적인 흐름과 함께 등장한 사회에서 ‘공적 영역’ 과 ‘사적 영역’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 어려워짐으로써 ‘사적 영역’ 의 ‘소유 영역’ 이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자본의 증식 공간에 함몰되며 인간 삶에서 ‘소유’를 앗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모든 소유는 이제 부를 가진 자들, 근대 형태의 부르주아 및 지주들이 독점한 전유 및 사유의 형태가 되어 버리고, 그것 역시 이윤 창출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대중 사회는 공적 영역을 파괴시킬 뿐만 아니라, 사적인 영역도 파괴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의 세계 내 장소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사적인 집마저도 박탈당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자본주의적 조건이 형성되기 이전에 소유 영역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안정된 사적인 장소를 마련해 줌으로써, 공적 공간의 밝음으로부터 감추어진 인간의 측면들을 보호해 주는 공간이었고 한편으로 이 공간은 공적 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아렌트는 온전한 의미의 ‘현실성’, ‘세계성’이란 타인들과 공유하고 있는 ‘사이-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공적 세계에서 나타나는 ‘현실적 현상’이란 결코 그 영역을 초월해 있는 어떠한 과학 법칙처럼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인간들이 공통 감각을 통해 함께 공유하는 동일한 현상들을 현실로서 마련해 줄 뿐입니다. 공통 감각이란 우리의 사적 감각들을 공적인 영역에도 적합하게 만들어 주는 감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근대기에 이르면 이 영역에 대한 염려 자체가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즉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계로부터 거리가 발생하게 되거나 아예 그 영역을 상실해 버리는 세계 소외 현상이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아렌트의 시각에서 볼 때에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엄밀한 구분의 틀 자체가 뒤흔들리게 된 것, 더 나아가서는 자본의 증식 과정이나 노동력의 재생산 과정에 모두가 함몰되어 버리게 된 실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계소외는 이미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매일같이 겪어낼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멀어 보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발걸음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생합니다. 아렌트가 언급했듯이‘사람들이 모이기만 한다면 공적 공간은 어디서나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네가 가는 곳이 어디건 그곳은 폴리스가 된다”고 그리스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특정 신념을 가지고서 세계를 변혁하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따르는 신념이나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실성을 당장 마주하게될 것입니다. 세계의 어떤 한 부분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동지들과 함께 새로운 ‘현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운동은 단지 굳건히 손잡은 동지들 사이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형성한 작은 공적 공간은 더 많은 이들과 만남으로써 더 큰 자유의 공간을 열어낼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유의 공간은 자신의 신념에서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이번 4강 후기를 쓰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텍스트 들을 한번 에 축약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시간에 비해서 너무 모자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개념들이나 사용하신 단어들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러나 텍스들을 추리면서 다시 읽게 되는 계기였습니다만...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에서 아리송함을 떨쳐 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 아리송한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이 아리송함을 찾아내서 풀기위해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하고 있는것은 순응주의와 지구소외, 세계소외 중간 어딘가 적절한 답이있지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이상입니다.
댓글목록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
제 산만한 강의를 정말 잘 정리해 주셨네요. 스스로 잘 이해를 못하신 것 같다 하시는데, 전체 맥락을 잘 이해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요~ 감사합니다.
제가 바슐라르, 알튀세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잘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고 과학적 인식론 계통과 현상학적 휴머니즘 계통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그 얘길 꺼냈는데, 오히려 이해에 혼선을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ㅠ
아렌트 철학을 더 쉽게 강의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제 무능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사실 이 수업은 일반적인 아렌트 개론 수업의 수준을 넘어서 있습니다.
애초에 매우 복잡하게 사유를 하는 아렌트의 철학을 단순히 도식화시켜 버리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어서 제가 일부러 택한 방식입니다. 저는 아렌트 철학에 대한 그러한 단순화가 그에 대한 지나친 오해를 낳아 오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더 그러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쉽게 하려고 노력중인데 잘되고 있는건지 걱정입니다.
다만 이번 후기에서 다루어주신 부분 중 일부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길에 들어선 샤프님께서 곧 맞부딪히게 될 문제임을 확신합니다. 열심히 이해하시려고 노력하신만큼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ㅎㅎ 어디에서부터 질문주셔야 할지 모르시겠다 했는데 기본적인 물음도 언제든 환영입니다. 개념들 자체의 가장 기본적 의미를 이해하는게 언제나 중요하니까요~
정창조님의 댓글
정창조아참 그리고 5강은 녹음파일로라도 꼭 들어보세요~악의 평범성에 대해 이미 공부를 해보신만큼, 쉽게 정리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샤프님 화이팅!
소리님의 댓글
소리
쉽지 았았던 그날의 강의를 늦게라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족한 후기라고 하셨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화해서 쓰는 글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그런 진짜 나의 공부가 얼마나 힘이 드는 과정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모름을 더 알게되면서 계속 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샤프님이 정리해주신 후기를 통해 그날의 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