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의 질서] 3강 후기 (0721) +2
전수
/ 201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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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말했듯이,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삶에 내던져진 이후 ‘끝(죽음)’을 향해 가며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에 있어, 우리는 어떠한 정답 즉 ‘진실’ 혹은 ‘진리(truth)’가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푸코(Michel Foucault)는 이러한 ‘진리’는 플라톤(Plato)로부터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역사적으로 구축된 분할”이라고 보는 듯하다. 요컨대 그는 ‘진실-진리’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며, 이것 역시 이미 ‘순수’하다고 보기 어렵기에 우리가 흔히 ‘보편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속에 정치적 권력 담론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코는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별하고, 조직화하고, 나아가 재분배하는 일련의 과정들”로 세 가지를 언급하고, 그 중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말해온” ‘진실과 거짓의 대립(the division between true and false)’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명제의 수준, 특정 담론의 내부에 위치한다면, 진실과 거짓의 분할은 자의적이지도, 변경 가능하지도, 제도적이지도, 폭력적이지도 않을 것이다”(필자강조)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내부’가 곧 어떠한 ‘규칙’ 또는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담론에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역시 결국은 자의적이라는 것이며, 이러한 ‘진리’라는 허상의 추구는 ‘정상인’과 ‘광인’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용하였으며, ‘타자’를 생산하였고, 이는 말 그대로 “배제를 낳는 놀라운 기계장치로서의 진실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푸코, 또한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들뢰즈(Gilles Deleuze) 등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가 ‘일회성(singularity)’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오로지 ‘하나’의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푸코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 역시, 그것이 종교적 절대자이기 이전에 어떤 ‘보편자’를 상징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불확실한(uncertain)’ 포스트모던(postmodern)사회에서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서 기인한 ‘이성중심주의(egocentrism)’은 더 이상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료타르(Jean Francois Lyotard)가 말한 ‘거대서사(grand narrative)’ 역시 무너져 내리게 되고, ‘진리’로 여겨지던 역사 역시 허천(Linda Hutcheon)이 말한 ‘역사 편찬적 메타픽션(historiographic metafiction)’로 대체되어 버리는 것이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한 단락으로 이렇게 정리해주시다니, 교과서 삼아야 될 것 같아요^^
아, 교과서 삼는 버릇 버려야 되겠죠?
저도 진리가 너무 질려서 참 일찍도 버렸어요.
'진리'의 바깥은 자유인 것 같아요.
자유라는 의미도 singularity로 봐야겠지만요.
후기 감사합니다 전수님!
완전 복습됐어요 ㅎㅎ
삼월님의 댓글
삼월
니체나 푸코를 읽으면서,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권력의 문제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이 권력의 문제를 '순수'로 포장하는 이들만큼 괴물인 자들이 있을까요?
괴물은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비뚤어진 자가 아니라,
청순한 얼굴로 자신이 순수하고 금욕적이며 정의롭다고 말하는 자가 아닐까요?
21세기에도 여전히 '진리'와 '정의'가 숭배받는 모습을 볼 때, 이론처럼 쉽게 대체되지 않는 신앙심을 삼키면서.
이 후기의 마지막 문장을 거듭해서 세 번이나 읽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