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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의 질서] 6강 후기 +4
Jina / 2018-08-25 / 조회 2,360 

본문

 

 

 진실한 사람이 되고싶었다. '에이, 세상에 진실 따윈 없지~'를 외치는 와중에도 따뜻하고 순수한 사람이 되길 내심 바랐다. 태초에 악의라고는 없는 것 같은 사람을 발견하면 가슴이 아팠다.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에 '순수'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얄팍한 알리바이가 생겼다. 난 적어도 진정성을 바라기라도 하지 않았나. 그 정도면 양반이지 않을까?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생산했고, 순수하진 않지만 존재하지도 않을 순수를 추구할 정도의 순진함은 있다고 생각했다. 희박해진 자기혐오는 일상을 편안하게 만들었고 이렇게 어른이 되는구나 했다. 정말이지 십년감수한 부분이다. 그렇게 꼰대가 될 예정이었다.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   

 푸코를 빌미로 한 허경 선생님의 생각을 배우며 딜레마가 생겨버렸다. 나는 또다시 나를 혐오해야 하게 생겼다. 수십년간 쌓아온 경험이 만들어줬다고 믿었던 균형은 비뚤어진 운동장의 논리였고 그것을 고수하는 괴물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그러자니 다시 나를 검열하고 채찍질해야만 했다. 그것조차 자기애의 발현임이 분명했다. 내가 괴물이 되면 안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나는 '진실과 순수를 포기할 수 있는 진정성'을추구하고 있다. 구제불능이다. 그렇다고 '맞아, 난 사실 불순해!' 해버린다면 그건 '자신의 순수함을 거부하고 불순함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타인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게 담론효과다. '불순함을 인정하는 게 멋진 거다.'라는 말을 이미 들어버렸기에 나는 영원히 내 힘으로 불순함을 인정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당연한 과정이다. 늘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동시에 새로운 무언가에 예속된다. 더이상 진정성을 추구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것은 세상에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애초에 푸코가, 그것을 허경 선생님이 알려줘서 알게 됐을 뿐이다. 내가 위선으로부터 독립하고 해방된다 한들 또다른 버전의 예속된 주체 생산에 불과하다. 이쯤되니 만사가 피곤해져서 나를 놓는 게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지금의 나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방심한 사이 틈새를 비집는 자기애의 망령처럼 찾아온다. 진실하고 따뜻한 세상을 바라면서 사는 게 제일 편했다.

 

 담론을 소유하는 개인들에게 일련의 규칙들이 강조되고 외부인들을 배척하고, 말하는 주체를 희소화 시킬수록 담론에 의한 통제는 강력해진다. 나는 통제받고 있었다. 더 보수적인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단 덜 통제받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종교적 정치적 교의같은 노골적 담론보다 작가가 자신의 담론에 부여하는 자동사적 성질, 독창성 같은 것들로 형성된 담론이 나에게는 훨씬 집요했다. 세속이라는 이단을 배척하고 싶어하면서 (물론, 배척하지 못했다.) 순수를 추구하기 위해 세속을 필요로 했다. 범인은 자본주의나 가부장제라고 늘 생각했다. 그것들과 싸우면 주체적인 존재일 줄 알았다. 시스템과 분리된 개별적 나를 설정하고 더 열심히 싸우면서 살고자 했던 부분이 지금 생각하면 나의 가장 순수했던 부분이다. 바람직한 사회인이 아니라는 지점에서 자유롭다고 믿었기에 통제는 더 효과적으로 내면화됐다.

 성공한 적도 없이 나를 열심히 관리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몹시 불편해진 상태로 이번에는 '무질서'라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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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허경 선생님의 이야기를 완전히 정리하고 전달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푸코'에 대한 '허경'선생님의 강의에 대한 '제'이야기,, 수업을 통해 얻은 것들과

내가 얼마나 불편해졌는지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허접한 후기가 불편하시다면..  삶에는 불편함이 필요하다는 허경 선생님의 말을 방패로 삼겠습니다!!

      

댓글목록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망했죠 ㅎㅎㅎㅎ... 숭산 스님의 "오직 모를 뿐"이라는 법문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아무것도 추구할 수 없는 상태(추구하지 않는 상태)가 과연 가능할까요?
행복과 평화(여러 지향점들)를 추구하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라고 하는데(<하마터면 깨달을 뻔>에 등장하는 말)
욕망없는 상태가 과연 가능할까, 지향없는 상태가 가능할까...?!!?
지나님 후기를 읽으면서는 이런 의문부호들이 이어지네요ㅎㅎ

소중한 후기 넘 감사합니다.
지나님이 빠진 트랩에 많이 공감하는 중^^*

라라님의 댓글

라라

후기 잘 읽었어요. 저도 고민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저는 거기서  jina(님) 처음 만났을 때 진실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요즘 느끼는 것은 사람이든  일이든 축적된 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져요~

연두님의 댓글

연두

이토록 재치있는 후기라니!
지나님 글을 따라가며 나도 함께 그 함정들에 함께 빠져들고 있었다는.

'불순함을 인정하는 게 멋진 거다.'라는 말을 이미 들어버렸기에
나는 영원히 내 힘으로 불순함을 인정할 수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요기 읽으면서 완전 빵 터짐.

망했다, 나도!

삼월님의 댓글

삼월

여전히 우리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불순함은 순수함의 반대편에 있고, 예속은 자유의 반대편에 있다는 이분법 말이예요.
순수함이 없다면 불순함도 없고, 자유가 없다면 예속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 자신이 있는 겁니다. 남들보다 더 멋있지도 않고, 더 초라하지도 않은 그저 우리 자신.
자아와 초자아가 분리되지 않는 것처럼, 랑그와 파롤이 따로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주체와 담론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 불가능성들 속에서 우리가 사건에 부딪혀 어떤 행위를 할 때마다 주체는 구성되고, 자기만의 진실 또한 생산됩니다.
어떤 객관성도, 호의도 보장받지 못할 수 있지만, 저는 지나님의 그 진실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철학 공부는 하면 할수록 참 사람을 (스스로) 멋없게 여기도록 만드는 거라는 생각을,
지나님의 후기를 읽으며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그러니 멋없는 제 댓글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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