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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히스토리쿠스] 사도세자 숙제 +1
점보 / 2017-02-02 / 조회 2,108 

본문

구조: 우선 일반 사대부나 평민 집안이 아니라 왕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사도세자는 이미 세자책봉을 받은 경우였다. 선조의 임해군 경우처럼 자질이 부족해서 혼군이 될 조짐이 드러날 지라도 세자가 아니기에 책봉을 안 하면 그만인 경우와는 다르다. 세자 책봉이란 왕조에서 정식적으로 승인을 받은 정통성을 가진 후계자로서 오직 세자보다 위에 있는 존재인 임금만이 바꿀 수 있었다. 그것도 세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이 명백할 때만 가능했다. 세자 이선이 세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은 명백했다. 정신병적 증상이 확연하게 드러났고 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으며, 스승을 공격하고 자신의 후궁을 죽이고, 생모마저 죽이려 했다.

 

그런데 영조는 꼭 사도세자를 죽여야만 했는가? 만약 세손 정조가 있지 않았고,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다른 왕자가 있었다면 태종이 양녕대군을 죽이지는 않았던 경우처럼 이선을 폐세자하고 다른 왕자를 세자로 선택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도세자를 살려둔 채 아들인 정조를 영조의 후계자로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정조가 영조를 이어 왕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사도세자는 형이 아니라 왕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적 왕조국가에서 사도세자를 단순히 폐세자 시키는 것만으로는 위계질서의 확립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세자에게 감히 사약을 누가 바치려고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성종과 폐비윤씨의 선례에서 볼 수 있듯이 후폭풍은 실로 누구나 두려워할만한 것이다. 결국 영조가 직접 나서서 죽여야만 했던 것이다.

 

의지: 신하로 하여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전달하게 한 성종처럼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죽인 영조의 의지. 왕조국가에서 왕이 신하에게 세자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명할 수도 있었다. 왕조국가에서 아무리 훗날이 두려운 명일지라도 어명인 이상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조는 자신이 직접 죽이기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아들을 죽인 매정한 아비로 만들었다.

 

우연: 만약 정조도 안 태어났으며 자신 말고 뛰어난 남동생이 있었다면? 만약 그랬다면 양녕처럼 폐세자만 되었을 뿐 뒤주에 죽는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만약 효장세자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크게 관심을 주지 않거나 꾸짖더라도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꾸짖지는 않지 않았을까? 만약 영조가 싫어했던 사도세자의 무인기질 대신에 세손 정조처럼 영조가 좋아하는 공부 등을 사도세자도 좋아하는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또는 영조가 그렇게 오래 살지 않고 사도세자를 타박하고 괴롭히기 전에 죽어서 그 대신에 사도세자를 사랑해주고 아껴준 대비 품에서만 성장했다면? 그랬다면 왕조국가 특성상 자신 말고 형제가 없었으며 단종과는 달리 든든한 후원자가 왕실에 있던 사도세자는 무난하게 왕위에 즉위해서 정신병 없이 재위했을 것이다. 그저 다른 평범한 왕자들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사냥이나 무예연습이나 하면서 살다 가지는 않았을지. 

댓글목록

여하님의 댓글

여하

'사도'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아니면 1762년 임오년, 그 일이 일어나던 해 전후를 실록에서 읽어보는 것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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