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히스토리쿠스] 1월 26일 강연의 과제 : 사도세자 사료 연습 +2
김태동
/ 2017-02-03
/ 조회 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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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자 : 오항녕 교수님
▣ 모든 사건은 구조, 의지, 우연의 요소를 포함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게 된 사건에 대해서도 구조, 의지, 우연의 요소를 통해 분석해보자.
사도세자 사건에 대한 분석은 ‘호모 히스토리쿠스’ 책의 1부에 나온다. 오항녕 교수님은 여기서 ‘왕정’이라는 정치체제가 구조로써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영조에게도 사건을 일으킨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나온다. 강의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영조가 사건을 일으켰다고만 단언하기도 어렵다.
영조는 당시에 재위중인 왕으로써 왕위를 물려받을 후임자를 잘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고, 후임자가 될 예정이었던 세자 이선(사도세자)은 영조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자는 책 읽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서도 당당했다. 즉, 세자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가정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흔히 발생하는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었겠지만, 이 사건은 ‘세습왕정’을 정치체제로 하는 조선의 왕실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함부로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세자역할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지, 세자 이선은 날이 갈수록 흉폭해졌다.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조정에서는 세자를 교체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왕실에는 세자뿐만 아니라, 세손(훗날 정조)까지 책봉이 되어있는 상황이었다. 세자를 교체하여 살려두면, 정통성 및 권력의 문제 때문에 왕실에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감히 세자에게 형벌을 집행하려는 자는 없었을 것이다. 오직 왕이자 부친인 영조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결국, 왕정이라는 구조가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무조건 왕정 때문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치부해버리면 강의 시간에 배운 것처럼 ‘환원론’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왕정의 체제가 사건에 구조적인 영향을 일정 부분 줬다는 것이다.
의지의 문제는 책에서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영조’의 의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영조는 왕위를 후임자에게 물려줘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세자에게 많은 공부를 요구하게 되었다. 또한, 세자 교체 얘기가 나오게 될 때부터는, 영조 본인이 일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작동했을 것이다.
이 사건에는 우연의 요소도 등장하며, ‘호모 히스토리쿠스’ 책에도 소개된다. 바로 사도세자의 우연적 세자 책봉이 그것이다. 사도세자에게는 형인 효장세자가 있었다. 하지만 효장세자가 일찍 죽었기에 사도세자가 그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왕비였던 정성왕후가 아들을 낳지 못했기에 사도세자는 세자의 자리에 계속 머물러야 했다. 말 그대로 우연이 겹쳐서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셈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사건도 구조, 의지, 우연의 3요소가 어우러져 발생하였다. 어느 한 요소에만 치중하게 되면 오류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를 잘 응용하면, 앞으로 더 다양한 사료 연습을 진행함에 있어 좀 더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
여하님의 댓글
여하히스테리쿠스? ㅋㅋㅋ .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서두.
김태동님의 댓글
김태동아 ㅋㅋㅋㅋ 잘못 썼네요,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