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지아3기_맑스] 강사인터뷰 - 고병권 :: 누가 《자본 Das Kapital》을 읽는가
우리실험실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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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자본》 :: 강사인터뷰 – 고병권 누가 《자본 Das Kapital》을 읽는가
칼 맑스 :: 자본주의를 사유한 사상가
사람들은 맑스의 이름을 들으면 흔히 사회주의를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사유한 사상가이다. 더 자세히는 ‘자본’ 개념을 명확하게 하는 데 기여한 사상가이다. 자본은 그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맑스는 이 자본의 개념을 부나 재산 등과 구분하여 정의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세기부터이다. 오히려 사회주의 개념이 먼저 사용되었고, 이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본주의가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맑스를 사회주의 사상가라기보다 자본주의 명명가 혹은 자본주의를 사유한 사상가로 보아야 한다.
자본 :: 자기증식하는 가치
《자본》의 부제는 정치경제학비판이다. 맑스는 《자본》을 통해 기존 정치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비판한다.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애덤 스미스는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노동이며, 노동이 가치의 척도라고 주장한다. 리카르도는 노동가치설을 더 정교하게 이론화하면서, 노동만이 가치의 원천이라고 엄격하게 주장한다. 이처럼 기존 정치경제학자들의 관심이 ‘가치의 원천’에 있었다면, 맑스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의 증식’이었다. 그래서 맑스에게는 ‘잉여가치’ 개념이 중요했다. 맑스는 잉여가치가 자기증식하는 가치로서 자본, 즉 착취에서 온다고 보았다. 자식을 낳아야 부모가 되는 것처럼, 잉여가치를 낳아야 자본이 된다. 자본이라는 개념은 곧바로 노동력의 상품화와 연결된다. 여기서 자본은 단순히 재물과는 다른 무엇, 역사적인 어떤 것이 된다. 이때 개념의 인격화도 일어난다. 자본이 자본가로, 노동은 노동자로, 개념이 인격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축적은 빈곤의 축적
옛날에 화폐소유자였던 사람은 자본가가 되어 앞장을 서고 있고, 노동력의 소유자는 자본가의 노동자로서 그의 뒤를 따라간다. 전자는 의미심장하게 웃음을 띠면서 바쁘게 가고, 후자는 머뭇머뭇 마지못해서 마치 자기의 가죽을 팔아버리고 이제 무두질당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처럼 뒤따라간다. _《자본》 |
맑스의 《자본》에 등장하는 유명한 장면이다. 맑스 이전의 정치경제학자들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거래를 자유로운 교환, 평등한 교환, 공리적 교환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맑스는 이 교환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본다. 경제법칙의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만남에서 발견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만남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노동자는 특정한 자본가를 피할 수 있지만, 전체로서의 자본가는 피할 수 없다. 이것이 계급이고, 계급은 재생산된다. 계급이 왜 재생산되는지는 ‘자유로운 교환’이라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맑스는 여기서 왜 ‘자본의 축적’이 ‘빈곤의 축적’이 되는지를 주목한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와 체제에 있다.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옳음Right과 옳음Right의 싸움
자본 축적에 대한 맑스의 입장은 과학 이전, 법칙 이전의 어떤 것을 대변하고 있다. 바로 계급투쟁의 요소이다. 자본가의 권리Right와 노동자의 권리Right의 대립이라는 것은, 옳은Right 것과 옳은Right 것의 싸움과 같다. 맑스는 “동등한 권리와 권리 사이에서는 힘이 사태를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이제 노동력 판매자와 노동력 구매자의 권리는 과학적 이론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힘의 영역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맑스가 강조하는 것은 체제의 전복이 아니라, 실제 노동조건의 변화이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선언보다는 구체적인 쟁취가 중요하다.
맑스의 시선 :: 자본주의 가치의 초감각적 특징을 이해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자본을 이해하는 일은 중요하다. 자본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 우리는 맑스에게 빚지고 있다. 맑스에게 ‘비판한다는 것’은 ‘이해하는 일’과 같아서, 자본을 비판하는 일은 이해하는 일이 된다. 그 비판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맑스의 ‘특별한 눈’을 만날 수 있다. 맑스는 ‘가치’라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다른 학자들에게 상품교환과 가치증식은 주어진 전제였지만, 맑스의 연구는 거기서 시작되었다. 그는 법칙의 이해 이전에,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눈을 가지는 일은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다. 맑스의 특별한 눈은 자본주의적 가치가 가진 초감각적 특징들을 이해하는 눈이다.
맑스의 매력 :: 더 이상 부르주아지에게 원하는 게 없음을 말하는
맑스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동지와 적을 가진 사상가이다. 옳고 그름 이전에 맑스가 제기한 문제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이다. 나는 한때 맑스에 열광했었고, 심지어 맑스를 읽기 전에도 그랬다. 왜 그토록 나를 사로잡았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계속해서 맑스를 공부하고 있다. 맑스가 가진 혁명에 대한 이미지 속에는 프롤레타리아의 고귀함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들어있다. 동시에 부르주아지를 경멸하고, 더 이상 부르주아지에게 원하는 게 없음을 경쾌한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맑스의 매력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겪는다’는 것과 같다
이런 불리한 점에 대하여, 나로서는 진리를 탐구하려는 독자들에게 미리 이 점을 알리고 각오를 다지게끔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하는 데에는 평탄한 길이 없으며, 가파른 험한 길을 힘들여 기어올라가는 노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가망이 있습니다. _《자본》 프랑스어판 서문 |
《자본》의 프랑스어판 서문에 등장하는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먼저 《자본》은 분명한 독자를 겨냥하고 있는 책이고, 그 독자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므로 위의 말은 학자들이 아닌 노동자들에게 한 말이다. 맑스는 이 책을 읽을 노동자들을 계몽하기보다, 고려하고 배려하려고 했다. 또한《자본》은 적도 있지만, 그전에 동료를 가진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말은 맑스가 자신의 동지에게, 친구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배움이 변형이라고 믿는다. 책을 ‘읽는다’는 건 ‘겪는다’는 것과 같다. 《자본》을 읽는 일은 맑스의 눈을 읽고 체험하는 일이다. 그 변형을 통해 맑스가 문제를 다루는 시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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