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파레지아] 에세이
소리
/ 201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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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주석 달기처럼 저도 주석을 많이 달아 글을 써 보았습니다.
웹의 한계상 주석은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이해하는데 있어 주석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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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핑크요금 - 너의 존재에 드는 비용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곳은 전쟁터다. 당신이 여성이든 남성이든, 전쟁이 없는 영토에 살고 있든 아니든, 이 사실을 인정하든 거부하든 간에,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거대한 힘들의 각축장, 전쟁터 한 복판에 우리 모두는 서 있다.
문화 통치
여성은 남성사회에 의해 식민화되어 있다. 이 식민화는 여성 실존의 방식까지도 식민화하여 착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의 양상은 자본주의와의 야합으로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이른바 남성 사회의 여성에 대한 문화통치인 것이다. 이 문화통치의 핵심은 여성에 의한 여성의 자기혐오이다. 남성 사회는 여성에게 정당한 자리를 주지 않음으로써 여성의 존재 자체를 혐오하게 만든다. 이제 남성사회 전체는 여성을 혐오한다. 여성은 권력이 없는 약자이므로, 사회가 부여한 여성에 대한 높은 가치기준에 따라 행동하려 더욱더 노력하며 자신을 검열한다. 모두가 노력하기 때문에 그 기준은 점점 더 올라가게 된다. 여성들은 스스로, 그리고 타인들에 의해 그 가치기준을 준수해야만 한다는 기준보다 더 높은 도덕율을 가지고 자신을 검열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 남성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한 높은 가치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이 가치기준은 상품화된 섹슈얼리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시대마다 남성사회가 요구하는 취향에 맞는 섹슈얼리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섹슈얼리티의 획득은 ‘상품의 소비’에 있다. 자본주의와 결합한 남성사회(이하 사회)의 문화통치 기술은 여성의 자기검열을 통한 상품의 소비로 대표된다. 그러나 이 ‘소비’는 단순히 섹슈얼리티의 획득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 생존의 상당 부분은 섹슈얼리티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핑크 요금
(안전, 옷, 화장, 상품-여성 그리고 소비할 수 없는 여성)
여성은 여성으로 존재하기 위해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이것을 핑크텍스(Pink tax)라고 부른다. 이 신조어는 2015년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제조사들이 ‘크기를 줄이고 핑크색으로 만들기만 해도’ 여성용은 남성용에 비해 더 적은 양에, 더 비싼 값이 매겨지는 것을 말한다. 면도기의 경우에도 여성용의 품질을 보장할 수 없지만 훨씬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보습용 화장품의 경우에도 같은 성분에도 불구하고 여성용이 훨씬 비싼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핑크텍스라고 부른다.
핑크텍스 혹은 핑크세금이라고 번역되는 이 용어의 용례는 좀 더 넓어져야 한다. 여성의 물건은 단순히 비싼 것만이 아니다. 여성은 여성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구입해야만 하며, 구입하도록 장려된다. 그래서 나는 핑크텍스 대신 핑크요금이라는 단어를 쓸 것이며, 핑크 텍스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이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안전
여성은 범죄에 훨씬 쉽게 노출된다. 구태여 여러 지표들을 참고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여성은 안전하게 생존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먼저 주거환경을 살펴보자. 여성이 집을 고를 때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돈과 집안 내부시설, 교통의 근접성 등등의 기본적인 것을 보는 것은 남자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추가적으로 안전에 대해 고려해야한다. 외부에서 침입이 1층보다는 어려운 2층 이상의 장소인지, 동네는 안전한지, 이웃과 너무 근접해 있지는 않은지, 잠금장치는 몇 개가 있는지 등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집은 대개 비싸다.
여성은 집에 혼자 안전하게 머물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한다.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를 더 설치해야한다. 새로 집 계약한 집의 현관문 자물쇠는 주인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경우가 많아서, 멀쩡한 잠금장치를 새로 교체해야한다는 공인중개사 아주머니의 조언을 듣기도 한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창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게 하는 장치를 설치하기도 하고, 창틀의 쇠창살을 추가로 더 설치하기도 한다.
낯선 이의 스토킹과 남자친구의 데이트 폭력과 이별 후 폭력으로 인해 이사를 하고, 핸드폰 번호를 바꾸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여성의 집이 남자친구에게 노출된 후 그들 사이의 불화나 이별이 있을 경우, 여성이 살해됨은 물론 가족까지 살해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일부 젊은 여성들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거주지를 밝히지 않는 연애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신변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남성의 신발이나 물건들을 현관에 놓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다. 이러한 물건을 구하기 힘든 여성은 쓰던 티가 나는 남성의 물건을 중고 마켓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열악한 청년들의 주거환경은 청년들을 정상적 주거공간이 아닌 고시원, 고시텔로 몰아냈다. 이웃 간의 간격이 더욱더 좁아진 주거공간은 여성들에 대한 더 쉬운 강간과 성폭력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여성전용 고시원, 여성 고시텔의 등장이다. 그러나 이런 곳은 일반 고시원보다 수가 적으며 그렇기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다.
여성에 대한 불안한 치안은 더 많은 상품의 발명과 관련 시장의 확대라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례로 시장에는 여성을 위한 여러 가지 호신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호루라기와 후추 스프레이부터, 너클, 쿠보탄과 3단 봉, 주머니 칼까지 말이다. 한국의 현행법 상, 가해자에게 상처나 혈흔이 생길만큼 반격을 하면 정당방위가 아니라 폭행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이것들의 소용이 무용할 때가 더 많다. 특히 너클이나 칼 같은 것의 존재는 상해의 의도가 있는 물건이므로(칼의 경우 합법 규격도 정해져있다.) 의도적 상해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이런 것들은 여성들의 두려움을 먹으며 호신용품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여성은 안전을 위해서 그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건, 되지 않건 간에 그것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옷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주거, 즉 안전에 대해 과도한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출해야하는 여성은 의복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여성의 의복은 더 비싸다. 같은 재질의 동일한 디자인임에도, 심지어 원단이 더 적게 들어도 더 비싸게 가격이 측정된다. 또한 여성의 옷은 과도하게 다양하다. 여성의 몸매를 강조하는, 소위 말하는 ‘라인’이 들어간 ‘핏’이 좋은 옷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된다. 비교적 단순하고 편안한 디자인이 대부분인 남성의 옷 종류와는 대조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행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유행에 맞춰 더 많고 다양한 상품들이, 여성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형태의 옷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옷은 인간의 개성과 지위를 나타내주는 사회적 기호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여성의 옷에는 개성의 자리에 여성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사회가 말하는 여성성은 ‘불편함’이다. 일례로 2017년 여름, 지금 ‘핫’하게 뜨고 있는 여성 아이템으로 오픈숄더가 있다. 그 옷은 단순히 지금 유행하는 예쁜 옷이 아니다. 팔을 올리기도 불편한 옷은 여성의 활발한 움직임을 제한하는 실용성 없는 옷으로, 편안하지도 않고 다른 옷보다 더 시원한 것도 아니다. 그 옷의 목표는 ‘여성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반박을 할 수 있다. ‘유행에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시장의 구매자로서 이런 옷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묻겠다. 여성들은 구매자로서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버락 오바마, 마크 저커버그, 스티븐 잡스, 조지오 아르마니, 마이클 코어스 등과 같은 남성 리더들은 비슷한 옷차림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매일 거의 비슷한 옷차림은 사회에서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카리스마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나는 먹는 것이나 입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다. 이것 말고도 결정을 내려야 할 사인이 너무 많다.(오바마 2012.10베니티 페어)”, “나는 내 삶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가능한 최소한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저커버그, 2015.03.05 바르셀로나 간담회)” 그러나 여성 리더인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인 재닛 옐런은 부의장 시절 공개 석상에서 같은 옷을 여러번 입고 나오자, 미 정치전문지 ‘롤 콜’에서 “누구 재닛 옐런에게 옷 좀 빌려줄 사람?(2013.11.14 Roll Call)”이라는 기사가 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늘 비슷한 스타일의 셔츠와 백팩을 맨 안철수의 옷은 그의 마스코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근혜는 같은 옷을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하자 곧바로 기사가 된다.
옷이 다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녀의 흠이다. 같은 옷을 같은 모임에 여러 번 입고 온다면 그것 또한 그녀의 흠이다. 같은 옷이라도 다양한 아이템으로 포인트를 주어 새로운 분위기라도 줘야 센스가 있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질리지 않는 스타일의 ‘기본템’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옷과 아이템들이 자신의 체형과 외모 혹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도 지적을 받는다. 여성의 외모는 끊임없이 타인의 평가에 놓여있으며, 그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연결된 문제이며 동시에 그녀의 센스, 즉 능력과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은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미적 센스’를 발휘할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성성이 부족한, 혹은 없는 ‘여자 같지 않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44, 55 사이즈로 한정되기 때문에 그 사이즈의 옷은 넘쳐나지만 66, 77, 88 사이즈의 숫자는 적다. 아니, 일반적으로 66 이상의 사이즈의 여성이 대부분이어서 그 이상의 사이즈는 너무도 빨리 팔린다. 그러나 44, 55사이즈의 신체의 여성은 적기 때문에 물량이 많이 남고, 따라서 더 싸게 팔린다. 66 사이즈 이상의 사이즈는 구하기도 어렵고, 물량도 적으며, 따라서 더 비싸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상품에 자신의 신체 사이즈를 맞추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옷은 본질적으로 개성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여성의 개성은 섹슈얼리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의 표현은 사회에서 그녀의 능력, 즉 존재가치와 연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의 표현 방식은 끊임없고 다양한 상품의 소비와 연결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섹슈얼리티의 표현으로 인해 인정받게 되고, 그 인정을 위해 상품화된 섹슈얼리티의 화신인 옷으로 끊임없이 소비되어야만 한다.
-화장
여성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또 다른 거대 시장이 있다. 바로 뷰티시장이다. 여성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여성의 ‘기호’를 획득해야 한다. 그 중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기호는 화장이다. 화장은 옷과 마찬가지로 개성의 표현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여성의 개성은 섹슈얼리티의 표현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화장으로 여성의 개성은 더 많고 세분화된 상품을 얼마나 잘 매치시키고, 기술을 발달시키느냐에 따라 외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성의 화장은 다양한 옷의 소비만큼이나 필수적이다. 그것은 생존에 필요한 직업을 얻는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아르바이트에서도 화장을 하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채용과 동시에 화장을 요구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은 예의”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이다. 이는 화장품이라는 상품을 구매해야하는, 소비를 해야만 하도록 하는 경제적 착취와 화장하지 않음은 ‘예의’가 없는 것이 되는 도덕적 착취까지 하고 있다. 화장품의 성분이 아무리 건강한 것이라고 광고 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피부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다. 건강과 경제적, 도덕적 착취라는 3중의 착취를 가하고 있다.
옷과 화장은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무척이나 악질적인 착취방식으로 변모하였다. 그것은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품화하며,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여성 자체를 상품화 했다. 그리고 여성 스스로 소비를 통해 ‘개성’, ‘자기관리’, ‘자기투자’라는 이름으로 자가 착취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같은 여성들로 하여금 소비 경쟁을 부추기도록 격려와 경쟁의 구도를 만들었다.
같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여성과 남성의 임금을 차별 없이 동일하게 지불하는 인간사회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더 다양하고 많은 돈을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데 써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을 구하는데 지장이 생기고, 애인을 비롯한 친구, 동료, 가족 등의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
- 상품-여성
여성의 필수품인 브라는 어떠한가? 실제로 여성의 가슴이 성적 대상화 되었기에 필요하게 된 물건으로써 여성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여성의 가슴은 성애화의 대상이며, 따라서 브라는 남성의 관음적 시선을 위해 여성 가슴의 성애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필요하다. 브라를 하지 않으면 여성은 성애화 된 신체 그 자체로 남성의 관음적 시선에 내던져진다. 여성의 가슴의 기능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 시선에 의해 여성의 가슴은 성애화 되기 때문에 날 것의 고기처럼 전시된다. 그것을 방지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브라이다. 그리고 동시에 여성 가슴의 성애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브라이다.
여성은 월경을 한다. ‘다달이 피 흘린다’는 사실적 뜻의 월경(月經)이란 단어가 부끄러워서 ‘인간의 생리현상이다’라는 뜻의 단어로 바꾼 생리는 ‘그날’, ‘매직’ 등등의 단어로 또 다시 은유로써 명명된다. 여성의 신체를 가진 이들도 입에 올리기 부끄러워하는 은유로써의 ‘그것’, 즉 생리는 여성 신체의 존재방식이다. 그러나 이 존재방식에도 돈이 든다. 상품을 사야한다. 생리대와 탐폰, 생리컵 등등의 돈이 든다. 예민한 신체를 가진 여성들은 더 많은 돈이 든다. 면생리대나 코튼 생리대와 같은 비싼 생리대를 다달이 사야한다. 그런데 이 가격은 무척이나 비싸다. 일부 한국 남자(이하 한남)들이 주장하는 “한 장당 50원~60원 하는 생리대”가 있다면 어디서 파는지 나도 알려주면 좋겠다. (추가로 한남만 알고 있는 300만원 하는 에르메스백이랑 100만원 하는 샤넬백도 어디서 파는지 공유했으면 좋겠다.) 내가 본 생리대는 하나같이 하나에 고작 15~16개 들었으면서 몇 천원 씩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노파심이 하는 말이지만, 여자들이 생리할 때 하루에 1장씩 쓰는거 아니다. 여성의 생리대는 최소 2~3시간에 1장씩 갈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양이 많으면 더 자주 갈아야 하기도 한다. 더 싼 비메이커도 있는데 그것은 사용하면 냄새가 심하며 피부에 안 좋다. 물론 메이커있는 그냥 생리대도 여성의 몸에 안 좋다.)
여성 신체의 당연한 존재방식인 생리도 큰 돈이 다달이 든다. 생리하면 같이 오는 생리통에 드는 약에도 돈이 든다. 그러나 사회는 더 다양하고 많은 상품으로 여성의 존재방식에 화답한다. 여성 신체의 존재에, 생존에 필요한 생리대는 소비를 통해서만 획득 할 수 있다.
한 상품의 ‘가치’는 다른 상품과의 교환을 통해서만 표현된다. 그리고 여성의 존재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여성으로서 실존하기 위한 방식은, 그 삶 자체는 이미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여성의 가치 또한 일정 상품과의 교환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이 없는 여성은 어떠한가? 소비할 수 있는 자본이 없는 여성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그들은 상품화된 신체로서 존재한다. 정확히는 상품화된 성으로, 상품화된 날 것의 신체 자체로 존재한다.
여성대출을 살펴보자. 주부를 위한 대출, 핑크대출(여기서도 핑크! 왜 여자는 죄다 핑크냐고.)과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은 대출이 쉽다. 제3금융이라고 모든 대출이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은 문턱이 더 낮다. 왜냐하면 여성 고객의 돈 회수율이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여성 고객 자체의 성실성만을 생각한다 하더라고 타산이 맞지 않는 호객행위이다. 여성의 임금이 더 낮기 때문에 회수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수율은 다른 의미의 회수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 자체는 상품이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수익이 많이 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유사 성행위 업소부터 성매매 업소까지 여성의 신체가 상품으로써 판매될 수 있는 곳은 다양하다.
존재 방식의 투쟁
핑크요금은 여성을 여성답게 만드는 페티쉬즘의 일종이다. 여성들이 핑크요금을 지불하며 얻는 상품과의 관계의 특성에 따라 여성은 비로써 여성이 된다. 인간이 아닌 여성으로 화하는 스펙타클한 순간은 바로 여성이 핑크요금을 지불하는 그 순간이다.
즉 여성에 대한 핑크요금은 여성이 한 사회 내의 여성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의 비용이며, 동시에 여성 신체에 값어치가 매겨지고 상품처럼 취급되는데 필요한 모든 요금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하면, 핑크요금은 결국 여성의 삶의 형식을 결정짓는 요금이며 여성을 인간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만드는 요금이기도 하다.
핑크요금에 대한 사유와 싸움은 여성 존재 방식에 대한 사유와 싸움이다. 남성사회는 여성을 상품화했고, 그 상품화를 유지시키는 기술로써 자본주의 소비방식을 채택했다. 여성의 존재방식을 상품에 대한 소비에 기대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여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존재가치는 끊임없이 다른 여성과 자신의 차이점을 만들기 위한 소비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남성사회의 여성지배의 문화통치 기술의 핵심이 드러난다. 문화통치의 원동력인 여성의 자기혐오를 통해, 여성들을 개인화 시키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혐오, 즉 자기혐오에 빠지는 이유는 바로 이 기술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은 상품을 소비하면서 한 사회의 여성이 되며, 동시에 상품이 된다. 그리고 자기혐오를 통해 자신을 고립시키고, 다른 여성과의 관계를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배타적 상관물로 위치시켜버린다. 그로인해 여성들은 관계 맺을 수 없게 되었고, 연대 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결탁한 남성사회 내에서 허용되는 그들의 관계와 소통이란 단지 여성성 구축을 위한 상품을 매개로 한 정보교환의 관계나, 결국은 여성성으로 귀환하는 각기 다른 개성을 비교하는 의미 없는 배타적 비교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또 다른 사각지대에 서 있는 여성을 보지 못했다. 그의 계급분석은 훌륭했지만 섹슈얼리티의 문제까지도 경제적인 문제로 여과하여 보았기 때문에 여성이 서 있는 물적 토대의 기반을 명확히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여성의 경제적 계급 문제를 인식할 때도 분열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유물론의 시선으로 존재들의 존재함을 통해 프롤레타리아의 삶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여성의 ‘존재’는 바라보지 못했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앎 또한 구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특별한 조명을 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조명을 통해 다르게 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비록 그 조명이 여성의 자리까지 비추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방식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이제 나는 그에게 배운 방식으로 여성을 본다. 맑스에게 배운 방식으로 나는 맑스에게 내 방식의 말을 한다.
당신의 조명이 닿지 않은 곳, 당신의 시선이 가 닿지 않은 곳. 나는 그 곳을 비춰 본다. 그 곳이 바로 내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배운 것으로 나는 그에게 돌려줄 것이다. 혁명이 있다면 바로 그 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맑스조차 보지 못한 그 곳에서, 최후까지 억압받는 계급에 의한 진정한 인간 해방이 시작될 것이다.
자본주의 기술에 의해 끊임없이 소비하고 낭비해야만 구축할 수 있는 여성성에 대한 투쟁은 해방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해방은 한 사회 내의 여성의 의미를 변화시킬 것이며, 이는 곧 여성의 존재방식 변화와 함께 갈 것이다. 이 지배기술을 걷어내야, 진정한 의미의 여성의 개성, 해방된 섹슈얼리티의 향유가 가능해질 것이며, 진정한 인간해방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