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 에세이 계획서 + 마지막 과제 +1
유택
/ 2017-05-25
/ 조회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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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계획서 / 유택
우선 자본1권을 다 읽을 수 있게 해 준 언제나 감사한 고샘과 미워할 수 없는 물심양면의 울 반장, 그리고 파레지아 학우들께 진정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 오늘 부랴부랴 마지막 과제물 작성하면서 자본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데 왜 이렇게 속이 다 시원한지요 날아갈 것만 같더라고요. ㅎㅎㅎ ‘끝이다~! 야호~!’ 그런데 에세이가 남았네요.
최근에 회사원인 친구랑 일하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이해한 범위 내에서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두서없이 친구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니가 뭘 안다고 따따부따냐 퉁을 주더니 나중에는 진지하게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렇게 얼렁뚱땅 잘난 체 하려고만 들지 말고, 진짜로 따박따박 자기도 읽고 좀 수긍이 가게끔 그리고 단편적으로나마 마르크스 자본론이 뭔지 숙지할 수 있게끔 쉬운 말로 정리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전 에세이 주제가 딱히 뭐가 있는 건 아니고.. 고샘의 강의록(총 12개)을 (작년 스피노자때 입에 침이 마르도록 너스레 떨며 강의록 스프링 제본까지 해 놓고 안 읽었던 기억이…!) 차분히 그리고 천천히 전부 정독을 한 이후에 A4 용지로 3~4장 분량으로 친구에게 읽힐 요량의 요약문(+후기 살짝 추가)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도 실험실에 못 갈 것 같아요. 고향집에 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수요일 강의 있는 다음주 수요일에 서울 올라오거든요. 그래서 마지막 과제도 지금 같이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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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11-마지막> (p977~끝)
2017-05-31(수)
제8편 이른바 시초축적
제 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primitive accumulation),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해야 한다. 화폐와 상품 그 자체가 결코 처음부터 자본이 아니듯이, 생산수단과 생활수단도 결코 처음부터 자본은 아니다. 자본주의체제를 창조하는 과정은 노동자를 자기가 소유하던 노동조건으로부터 분리하는 과정-한편으로는 사회적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 생산자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는 과정- 이외의 어떤 다른 것일 수가 없다. 따라서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시초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것이 자본의 이전 역사단계, 그리고 자본에 대응하는 생산양식의 이전 역사단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시초축적의 역사에서는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이 생존수단에서 분리되어 무일푼의 자유롭고 ‘의지할 곳 없는’ 프롤레타리아들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제 27장 농민들로부터 토지를 빼앗음
자기 손으로 자기 자신의 밭을 경작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즐긴 소토지 소유자들은…당시에는 지금보다 인민 중 훨씬 더 큰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를 놓은 변혁의 서곡은 15세기 마지막 1/3과 16세기 첫 십년에 연주되었다. ‘곳곳마다 쓸모없이 저택과 성에 가득차 있던’ 봉건적 가신집단이 해체됨으로써, 대량의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들이 노동시장에 투입되었다. 따라서 경작지를 목양지로 바꾸는 것이 그들의 구호가 되었다. 엔크로저enclosure[울타리 치기] 1759년경에 이르면 자영농민층은 사라졌고, 18세기의 마지막 십년에 이르면 농업노동자의 공유지는 흔적초자 없어졌다. 19세기에는 농업노동자와 공유지 사이의 관련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졌다. 농촌주민으로부터 토지를 빼앗은 최후의 대규모 수탈과정은 이른바 ‘사유지 청소’[즉 사유지로부터 인간을 청소하여 내쫓는 것]이었다. 무자비한 폭력 아래에서 수행된 교회재산의 약탈, 국유지의 사기적 양도, 공유지의 횡령, 봉건적/씨족적 소유의 약탈과 그것의 근대적 사적 소유로 전환-이것들은 모두 시초축적의 목가적 방법이었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적 농업을 위한 무대를 마련했으며, 토지를 자본에 결합시켰으며, 도시의 산업을 위해 그것에 필요한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라이트를 공급하게 되었다.
제 28장 15세기 말 이후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에 대해 잔인한 법률을 제정. 임금을 인하하는 법령들
봉건적 가신집단들의 해체와 폭력적 토지수탈에 의해 추방된 사람들이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이 세상에 나타난 것과 동일하게 빠른 속도로 신흥 매뉴팩처에 흡수될 수는 도저히 없었다. 또한 그들의 관습으로 된 생활궤도에서 갑자기 내몰린 사람들이 그만큼 갑자기 새로운 환경의 규율에 순응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대규모로 거지/도둑/부랑자가 되었는데, 그 중 일부는 자기의 성향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따라서 15세기 말과 16세기 전체 기간을 통해 서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부랑자에 대한 잔인한 입법이 실시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생성기에 신흥 부르주아지는 임금을 ‘규제’하기 위해, 임금을 이윤획득에 적합한 범위 안으로 억압하기 위해, 또 노동일을 연장하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 자신을 정상적인 정도로 자본에 종속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을 필요로 하며 또한 그것을 이용한다. 이것이 이른바 시초축적의 하나의 본질적 측면이다. 노동자들의 단결은 14세기부터 [단결금지법이 폐지된] 1825년에 이르기까지 무거운 죄로 취급되었다. 1349년의 노동자법령과 그 뒤에 제정된 모든 법령의 정신은 국가가 임금의 최고한도는 제정하지만 결코 그 최저한도는 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제 29장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capitalistic farmer의 탄생
잉글랜드에서는 차지농업가의 최초 형태는 그 자신이 농노였던 베일리프였다. 차지농업가의 처지는 소농peasant의 처지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급속히 진정한 차지농업가-그는 임금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본을 증식시키며, 잉여생산물의 일부를 화폐 또는 현물로 지주에게 지대로 지불한다-에 자리를 양보한다.
제 30장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형성
끊임없이 반복된 농촌주민의 수탈과 추방은 전적으로 길드 밖에 있어 길드의 속박을 받지 않는 다수의 프롤레타리아를 도시공업에 공급했다. 독립적인 자영농민의 희박은 공업프롤레타리아트의 응축과 직접적으로 대응했다. 농촌 주민의 일부가 ‘풀려남set free’과 동시에 그들의 이전의 생존수단도 또한 풀려난다. 사실상 소농을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키며 그들의 생활수단과 노동수단을 자본의 물질적 요소로 전환시킨 사건들은 동시에 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을 만들어내었다. 대규모 공업만이 기계의 형태로 자본주의적 농업에 확고한 토대를 제공하고, 농촌주민의 압도적 대다수를 근본적으로 수탈하며, 농촌 가내공업의 기본인 방적업과 직조업을 파괴함으로써 농업과 농촌가내공업 사이의 분리를 완성한다. 따라서 또 대규모 공업만이 산업자본을 위해 전체 국내시장을 비로소 정복한다.
제 31장 산업자본가의 탄생
산업자본가의 탄생은 차지농업가의 탄생처럼 그렇게 점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의심할 바 없이 길드의 장인들과 그보다 더 많은 자립적 소규모 수공업자들 또는 임금노동자들까지도 작은 자본가로 전환하고, 그리고 임금노동의 착취를 더욱 확대해 자본의 축적을 강화함으로써 본격적인 자본가로 전환했다.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노예화/광산에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가 사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따위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이런 목가적인 과정들은 시초축적의 주요한 계기들이다. 그 뒤를 이어 일어난 것은 지구를 무대로 하는 유럽 국민들의 무역전쟁이었다. 이런 방법들은 부분적으로는 잔인한 폭력에 의존하는 것인데, 예컨대 식민제도가 그러하다. 식민제도는 무역과 항해를 급격히 육성시켰다. ‘독점회사’는 자본집적의 강력한 지렛대였다. 식민지는 싹트는 매뉴팩처에 판매시장을 보장해 주었으며, 이 시장의 독점은 축적을 더욱 한층 강화했다. 유럽 밖에서 직접적 약탈, 토착민의 노예화, 살인 강도로 획득한 재물은 본국으로 흘러 들어와 거기에서 자본으로 전환되었다. 공채는 시초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하나가 된다. 국채와 더불어 국제신용제도가 생겼는데, 이것은 이러저러한 국민의 시초축적의 은폐된 원천의 하나였다. 식민제도/국채/무거운 세금/보호무역제도/무역전쟁 따위는 진정한 매뉴팩처 시기에는 새싹에 불과했지만 대규모 공업의 유년기에는 거대하게 번창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영원한 자연법칙’이 자유롭게 작용하도록 하고, 노동자와 노동수단 사이의 분리를 완성하며, 한쪽 끝에서는 사회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다른 쪽 끝에서는 인민대중을 임금노동자로, 즉 자유로운 ‘노동빈민’[이것은 근대사의 인위적인 산물이다]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모든 수고가 필요했다.” 만약 화폐가, 오지에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한쪽 볼에 핏자국을 띠고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면,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제 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인가? 그것이 노예와 농노를 임금노동자로 직접 전환시키는 것, 즉 단순한 형태변화가 아닌 이상, 그것은 오직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즉 자기 자신의 노동에 토대를 두는 사적 소유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생산수단이 사회적으로 집중된 생산수단으로 전환되는 것, 광범한 인민대중으로부터 토지와 생활수단 및 노동도구를 수탈하는 것, 이 처참하고 가혹한 인민대중의 수탈이 자본의 역사의 전주곡을 이룬다. 자신의 노동으로 획득한 사적 소유, 말하자면 고립된 독립적으로 노동하는 개인과, 자기의 노동을 위한 조건들 사이의 융합에 토대를 두는 사적 소유는, 타인들의 형식상으로는 자유로운 노동, 즉 임금노동의 착취에 토대를 두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 축출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생기는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낳는다.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기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생산자에게 사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협업, 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점유-를 바탕으로 개인적 소유[개인들이 연합한 사회의 소유]를 재건한다.
제 33장 근대적 식민이론
정치경제학은 원칙상 전혀 다른 두 종류의 사적 소유를 혼동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생산자 자신의 노동에 기반을 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타인 노동의 착취에 기반을 두는 것이다. 보호무역제도가 원래 본국에서 인위적으로 자본가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웨이크필드의 식민이론은 식민지에서 임금노동자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조직적 식민’이라고 부른다. 자유식민지의 본질은, 대량의 토지가 아직 공공의 소유이며, 따라서 이주자마다 그 일부를 자기의 사적 소유와 자기의 개인적 생산수단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그러고도 뒤에 오는 이주자들이 자기와 동일하게 행동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식민지에서는 임금노동자의 종속관계와 종속감정이 없다고 웨이크필드가 개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면 식민지의 반자본주의적 암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정부로 하여금 처녀지에 수요공급의 법칙과는 상관없는 인위적 가격-이주민이 토지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비교적 장기간 임금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가격-을 붙이게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임금노동자에게 매우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판매함으로써 형성되는 기금[신성한 수요공급의 법칙을 짓밟아 버리고 노동자의 임금에서 짜내는 이 화폐기금]을 사용해 유럽에서 식민지로 빈민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본가를 위해 임금노동시장을 포화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조직적 식민’의 큰 비밀이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축적방식, 또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 자신의 노동에 토대를 두는 사적 소유의 철폐, 다시 말해 노동자로부터 노동조건을 빼앗는 것을 기본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댓글목록
케로로님의 댓글
케로로
속 시원함, 얼른 저도 느껴야겠어요.^^ 추려주신 내용을 보니 끝까지 맘이 무거워질 듯한데, 그건 그거고, 다 읽었다는 기쁨을 누려야겠죠. 그리고, 앞에 앉아서 에세이 계획서 발표하셔야 하는데! 발표자리에 앉은 모습 보고 싶은데!(담주 수요일에 특별시간 마련?)
저랑 에세이 주제가 상통하는 면이 있네요,(역시 만화 주인공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난의 길로ㅋㅋT.T) 함께 고통과 비법을 나눠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