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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월 강좌] 후기:: “내가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면” +6
준민 / 2018-06-19 / 조회 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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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멋진 강의를 해주신 허경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오픈 강좌로 인해 선생님의 강의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더 타올랐습니다. 강의는 힘바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시작됐습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부분은 힘바족이 색을 구분하는 실험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힘바족은 같은 녹색 계열 중 미세하게 다른 녹색을 쉽게 찾아냈지만, 녹색과 파란색은 빠르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녹색 계열 중 다른 녹색은 색의 RGB 값을 봐야만 알 정도의 미세한 차이인데요. 힘바족은 이를 쉽게 찾아냅니다. 우리는 녹색과 파란색을 다른 색이라고 정의해놓고 오랫동안 그 차이에 익숙해있지만, 힘바족은 녹색 계열들 간의 차이를 구분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만큼 정의라는 건 사회적 특성들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겠죠.

 

이 영상을 보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와닿았습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하나도 당연한 게 아니듯, 녹색과 파란색도 당연히 다른 색이라고 할 순 없지요. 철학자들을 공부하며 그들의 전제가 당연히 맞는 게 아니며, 우리는 그들을 부정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선생님이 강의를 듣던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청자들”이라고 말씀하시고서는 “그러니 쉽게 얘기하겠다"라고 하신 것이 저에게는 약간의 퍼포먼스같이 느껴졌는데요. 선생님 스스로 “이 학생들은 수준 높을 거야.”라는 생각을 깨며 하시는 말 같았습니다. 그 뒤에 아무런 연관 없는 연도들을 나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나온 제 생각은 선생님보다 저를 더 보여줍니다. 아직 저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생긴 제 생각을 정의하기 위해 고민 중입니다.

푸코는 저명한 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아버지(Dr. Paul Foucault)는 말로,논리로 푸코를 제압하고,억압했습니다. 그래서 푸코는 논리로 억압을 벗어나는 방식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아버지와의 타협?)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조종하는지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물이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과 같은 저서들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지요.

 

푸코는 에이즈에 감염된 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그의 지적 유언장 격인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내놓습니다. 200년 전 칸트가 내놓은 글과 같은 제목이지요. 푸코의 이 책은 칸트의 글을 니체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선생님은 푸코의 마지막 책이 니체주의로 회귀한 걸 두고 푸코가 1세계 오리엔탈리스트로 남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하셨죠. 푸코는 그 책에서 평생 동안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면서, 3개의 영역(지식-권력-윤리)을 2개의 방법론(고고학-계보학)으로 연구했다고 밝힙니다. 이 3개의 영역은 푸코가 맺고 있었던 관계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지식은 나와 세계의 관계, 권력은 나와 타인의 관계, 윤리는 나와 나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나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혹은 세계에서 나로 돌아오는 그의 성찰을 이 3개의 영역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신과 인간의 계약인 줄만 알았던 법이 사실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었다고 밝힙니다. 따라서 왕의 법은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냥 왕의 법이 진리가 되는 것이지요. 제도의 특성은 예를 들어 법원, 학교, 병원과 같은 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권위적인 기관에서는 그것이 진리인 양 폭력을 휘두르고, 폭력을 피할 방도는 없어 보입니다. 푸코의 적은 진리, 보편 또는 본질입니다. 이 세상엔 ‘정상’들로만 가득 차있어서 비정상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 다시 정상이 되어 기존의 것을 대체합니다. 이러한 대체의 동력이 철학이 가져야 할 원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이 대체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비정상성을 일상에 투여할 것인가, 이 비정상성은 언제 정상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또 어떻게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강의 후에 나왔던 질문들은 모두 이런 맥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떻게 보편적인 것과 보편적이지 않은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출 것인가. 그 길을 선생님과의 강의에서 찾아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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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삼월님의 댓글

삼월

잘 정리된 강의 후기, 감사합니다.
강의를 열심히 들은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나 싶은 것도 있네요. ㅎㅎ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나 봅니다. 준민님의 후기를 통해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질서와 무질서가 대립하는 게 아니다. '질서들'이 존재할 뿐이다.
준민님의 질서와 관점으로 이루어진 후기, 잘 읽었어요.
나로부터 시작하는 철학 이야기는 늘 흥미로운 것 같아요.

준민님의 댓글

준민 댓글의 댓글

빠트린 게 많은 것 같아 아쉽네요. ㅜㅜ 푸코 1도 안읽어봤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라차님의 댓글

아라차

준민님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강의 들으면서 보편과 객관과 정상이라는 틀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이상하게 만들고 있는지
또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강의 끝나고도 몇번씩 되뇌이고 있는
푸코식 또는 허경식의 명언들이 많았지요.
강독강좌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랄까,
암튼 7월에 강좌에서 모두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준민님의 댓글

준민 댓글의 댓글

'강독'강좌를 처음 들어봐서 무섭기도 합니다. 많이 도와주세요!

라라님의 댓글

라라

후기를 읽어보니 강좌 신청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푸코 오픈 강좌에서 저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 왜 공부를 하는지 학문이란 무엇인지..
공부 안 할 능력을 상실해서 공부한다는 말에 저는 빵 터졌습니다. 제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생각나서요.
"학문이란 내가 배우는 것과 일상생활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라는 말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뭘 모른는지 알기 위해서 그리고 버리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또 "어떤 누구도 코끼리를 보지 못했기에 균형잡힌 진실은 없다","해석에 대한 독점이 권력을 정당화한다"라는 말도 푸코 철학에 문을 두드리고 싶네요:D

연두님의 댓글

연두

오픈강좌에 늦어서 후반부 잠시 현장에서 듣고, 허경샘이 보내주신 강좌녹음파일을 들었죠.
'미래를 규정하지 말고, 되어지는 대로 되어라'라는 말이 재밌어서 놓친 강의가 궁금해졌더랍니다..

선생님이 하신 공부에 대한 이야기, 저도 재밌었습니다.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공부란 내가 공부하고 배우는 것과 나의 일상생활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정립하는 것이라는 것.
공부는 넘어서기 위해서, 버리기 위해서도 하는 것이라는 것.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나, 한여름 속에서 보편성/본질주의와 대적하는 푸코를 허경샘을 통해서 만나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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