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옹달 #5 - 칭다오편 丙 : 중국 사람도 한남을 아는 거야?
기픈옹달
/ 2018-11-09
/ 조회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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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보는 것이 보기 더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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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 아직은 현금이 최고
카카오 페이가 편하다는 사람이 주변에 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그와 비슷한 시스템이 활성화된 지 오래. 어디서나 위챗 페이(微信支付)로 결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이용하기에는 장벽이 많다. 중국 통신사를 이용해야 하며, 중국은행을 사용해야 하는 등 해결해야 하라 문제가 많다. 그 밖의 전자 결제도 마찬가지. 경비를 잘 계산해서 적당히 현금으로 환전하여 이용하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Tip 2. 비상금은 체크카드로
그러나 완벽하게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한 법. 현지에서 급하게 돈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중국 현지에서 원화(우리나라 화폐)를 환전하려면 매우 수고롭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체크카드를 마련하면 좋다. UnionPay 카드를 만들도록 하자. 현금 인출은 물론 결제도 가능하다. 다만 남용하진 말자. 환율이 좋지 않을뿐더러 수수료도 붙는다.
[위챗 페이] QR코드로 결제하는 모습이 이제 우리에게도 더 익숙해지겠지.
명동 환전소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순서를 기다리며 주섬주섬 환전할 돈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몸에 지니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소비 패턴이 단순하다 보니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다. 현찰을 만져본 것이 얼마만인지. 게다가 잃어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 명동엔 소매치기가 많다며?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두리번두리번, 내 손엔 현금이 없소라고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누가 쇼핑백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쇼핑백에는 붉은 인민폐 무더기가 가득하다. 대체 얼마일까? 헤아려보기도 까마득한데 봉투 하나 분량의 지폐 뭉치에도 노심초사하는 내가 부끄럽다.
한 10년이 되었을까? 롯데백화점 본점에 중국어 간판이 걸린 것이. 얼마 전부턴 남산에 올라가면 마치 중국에 온 것만 같다. 한국어보다는 중국어가 귀에 꽝꽝 울려대니. 서울역 롯데마트도 마찬가지. 찬거리 몇 개를 사는 내가 낯설다. 중국인들은 언제나 나보다 훨씬 많은 물건을 왕창왕창 구입한다.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만나는 단편적인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 여행객, 요우커游客의 발길이 끊기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명확히 알겠다. 돈 쓰러 이 나라를 방문하는 중국인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중국에 대한 경험을 나누다 보면 대부분 듣는 것이 무례하다, 지저분하다, 시끄럽다 등등 부정적인 말 뿐이다. 중국을 오가며 만난 중국인이 적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별로 그런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내가 너그럽기 때문인 걸까? 따져보니 십억을 넘는 저 인간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가 중요하다 싶다. 이웃나라에 여행 와서 돈을 펑펑 쓸 정도라면 대관절 그는 어떤 사람일까? 중국인의 무엇이라 특칭 할 수 있는 덕목을 만난 게 아니라 ‘갑질’이라는 유서 깊은 태도를 만난 건 아닐까?
10억이 넘는 중국인을 '민족성' 등의 단어로 축약해버리는 건 쉽지 않아보인다.
루쉰공원에서 해수욕장까지 걸었다. 바닷바람이 좋다. 물이 생각보다 차지 않다. 9월인데도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지난 4월, 찬 바다에 몸을 담근 사람도 여럿 있더니. 일행 가운데 한 명은 수영복을 챙겨 왔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정말 수영이 하고 싶다면 영 불가능하지는 않다. 바로 옆에서 수영복을 내걸고 팔고 있다. 허나 진짜로 수영하겠다고 나섰으면 가이드가 ‘버럭!’했을 테다. 중국까지 와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봐야 하는데 수영이나 하겠냐고.
본디 가이드의 계획에는 캉유웨이 고거, 즉 캉유웨이의 옛 집을 보러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20세기 초 중국의 변화를 주도했던 선도적인 지식인이었다. 나중에는 황제 체제의 부활을 기도했다는 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중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그를 빼먹을 수는 없는 법. 허나 이미 많이 걸어 다리는 아프고, 아침 일찍부터 꽉 찬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다. 결국 5.4광장 주변에서 저녁을 먹고 차후 일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칭다오 해변] 구름이 많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햇볕까지 더 했다면 꽤 힘들었겠다.
일단 주변에 까르푸가 있으니 그곳으로. 한국에서는 까르푸가 철수한 지 오래지만 중국에는 여전히 있다. 家乐福, 중국어로 읽으면 ‘지아러푸’ 정도가 되려나. 집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뜻을 보면 ‘까르푸’라는 발음을 빌려 잘도 이름을 지었다는 생각이다. 찾아보니 프랑스어로는 ‘교차로’라는 뜻이다. 풀이만 두고 이야기하면 중국식 이름이 더 좋다 싶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기사가 어느 사람이냐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칭다오에도 한국인 여행객이 많이 온다고. 헌데 한국인 아저씨들은 영 못마땅하단다. 그렇게도 행패를 부린단다. 무례한데다 성질도 부리고 화도 잘 낸다며 손사래를 친다. 반대로 한국 여성들은 좋더라는. 뒷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던 일행의 말. ‘중국 사람도 한남을 아는 거야?’ 웃으며 맞장구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라고 성차별의 문제가 없겠냐만 한국에 비할 바는 못된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겉으로 만나는 사회의 분위기는 훨씬 평등에 가깝다. 주변을 살펴보면 성별의 차이에도, 나이의 차이에도 동일한 노동을 수행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중국에서도 ‘어디 여자가...’라는 말이나 ‘나이도 어린것이...’라는 말이 있는지. 기왕 이야기를 덧붙이면, 번역할 수 있다고 똑같은 말이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십 수년 전 같이 밥을 먹던 중국 여성은 이렇게 일갈하기도 했다. 한국 여성을 Jiefang, 해방解放해야 한다고.
[칭다오 까르푸] 붉은 색은 어디가나 많다.
본디 계획은 카르푸 주변에서 밥을 먹고 신시가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행은 이미 하루에 쓸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고 아우성이다.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을 소화하려면 어서 들어가 쉬어야 할 판이다. 아침 기차를 놓치면 이후 일정을 소화하는 데 복잡하다. 헌데 일단 마트에 발을 들여놓으니 제법 발이 가는 곳이 많다. 이웃 나라의 마트에서는 무얼 파는지, 대관절 이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사는지 보는 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한참이나 카르푸에서 시간을 보냈다. 관심이 있으면 없던 힘도 생기는 법! 지친 발에 힘이 붙고, 피곤한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암, 어디나 마트는 즐거운 곳이지.
밖에 나오니 컴컴하다. 중국의 대도시라 하더라도 아직은 밤거리가 컴컴하다. 5.4광장에 가서 야경을 보자고 했더니 일행 왈. 힘든데 뭘 또 보냐고. 어서 가서 쉬자고… 5.4광장에는 칭다오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있다. 커다란 횃불 모양의 이 조형물은 칭다오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5.4광장은 1919년 5.4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중국 근현대사의 분기점이 된 이 운동은 그 해 3월에 일어난 3.1운동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5.4 운동은 신문화운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새로운 문화를 제창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백화문을 주장했던 루쉰도 있었다. 또한 이 횃불 모양은… 운운. 가이드는 썰을 풀어댈 말이 많았으나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호텔로 가는 택시를 타고 칭다오의 밤거리를 달렸다. 첫째 날 일정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또 가이드는 알지 못했다. 다음이라는 건 기약할 수 없음을. 나중에 사겠다며 까르푸에 점찍어둔 물건이 있었는데. 결론만 이야기하면 까르푸에는 다시 가지 못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여행이란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법이다. 제약된 시간과 인연 속에 만나는 것이니. 하지만 거꾸로 더 먼 다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짧은 여정 가운데, ‘다음에 또 오자’는 말을 수 없이 많이 했다. 아쉬운 만큼 좋은 법.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 까르푸에서 사지 못했던 누빔 옷이 계속 눈앞에 선선하다. 아… 아쉬워라.
[5.4 광장] 곧 100주년이다. 지난 100년 중국의 변화는 눈부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