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리터러시] 씹선비의 후예는 누가 되었나 - 유교 탈레반의 흔적을 찾아2022-04-2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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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무장 테러 단체쯤으로 알고 있지만 그 본래 뜻은 '학생들'이란다. 그러고 보면 '유교 탈레반'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영 틀린 표현은 아닌 셈이다. 저자는 제국 곁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독자적인 정치 구성체를 지켜나갈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그렇게 '의로운 민족'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때의 의로움이란 유교적 규범에 자리한 정의감이라 할 수 있다. 중화의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는,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꿈속에서도 주공과의 팬미팅을 한 공자로부터 전승되어 온 문화적 우월감이 그 뿌리를 이룬다. 이웃 나라가 오랑캐 판이 되었다는 것도 하나의 큰 이유였다. 소중화를 넘어 바로 중화가 여기에 있다는 본류 관념은 척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튼튼한 버팀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동이족의 후예가 진정한 공자의 후손'이라는 모순적 언사가 가능케 된다. 


저자는 3장에서 많은 부분을 북한에 대한 서술에 할애한다. 책을 읽으며 '한중관계'라는 주제에서 북한이 어느새 빠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질문, 과연 저자가 제시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근대 국가 성립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변모했는가?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처럼 반만년의 역사를 함께한 한 핏줄의 끈끈한 연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가?


서투르게 저자의 논의를 치환해보자. '제국'의 팽창에 '의로움'을 무기로 '민족'이 꼴을 갖추었다고 했을 때, 그 제국이 꼭 중국일 필요는 없을 테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항일 운동을 국가 서사의 토대로 삼을 수도 있고, 거기에 미제국주의의 폭압과 맞서 싸우는 모습이 더해진다면 어떨까? 남쪽의 동무들이 제국주의 압잡이에 절개를 잃고 허우적대는 동안 백두혈통의 정통성은 면면히 민족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의로움이란 규범적 가치를 실행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굴복하지 않음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대항서사로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는 수령님의 탁월한 영도력을 감탄할 수밖에 없을 터. 과연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체제는 언제 어떻게 무너질까. 아니, 설사 저 화려한 국호를 떼어낸다 하더라도 그 짙게 파고든 그 자국이 쉽게 지워질 수 있을까.


일견 저항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제국'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로서. 그러나 거꾸로 의로움의 계보를 추적하면 제국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이를 더 확장한 것은 아닌가. 따라서 그 저항이란 독자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되면 소수자적 감수성과는 영영 멀어지게 된다. 오히려 이 저항의 가치를 고수하는 규범적 사유는 소수자에 대한 공격, 배제, 무시로 이어진다.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매우 뻔한 서술이지만, 조선 후기 양란을 거치면서 강화된 성리학적 규범은 서자, 여성, 노비, 천인 등을 배척하는 역할을 했다. 요즘으로 치면 1등 시민의 세상, 양반들의 천국이라 하자. 결국 의로움이란 독자적인 고유성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부적으로 강력한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민족은 제국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붙잡아보면, 어찌하여 조선 제국이 없었는가에 대한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꼭 물리적인 영토적 팽창일 필요는 없는 거다. 내부로의 팽창, 권력의 확대, 폭력의 기술이라 하자. 내부로 팽창하는 제국도 있지 않을까. 내재적 식민지를 구축하는. 그래서 이 책에서 발견하는 '조선의 힘' 같은 것은 거꾸로 해체하고 되물어야 하는 질문이 되어야 한다.


주말 서점에 나갔더니 몇 개의 키워드가 눈에 밟힌다. '제국'을 제목으로 붙인 책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세계에 팽창하는 힘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중국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누구는 러시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혐중의 시대에 살면서도 중국은 여전히 아픈 곳을 들쑤시는 귀찮은 존재임에 분명하다. 


중국은 과연 제국인가? 책의 관점을 빌리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일대일로나 다양한 땡땡공정 시리즈는 제국의 혐의를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그러나 책에서 이야기하듯, 지난 몇 년 간 중국은 이론적으로 '중화민족'의 탄생을 위해 힘을 기울였다. 저들의 민족이 이 땅의 민족과 같은 것인지는 접어두자. 하튼 제국이 민족의 이름으로 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화민족을 위한 제국의 숨 고르기, 그 까닭에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고. 무릇 제국이란, 대국이란 감 놔라 배 놔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리에 플랫카드가 붙었다.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중국에 먹힌다는 거다. 군복 입은 할배들이 성조기를 들었다. 저런 사람들이 LA, 화려한 미국 문화의 중심부에 살면서도 모국어를 포기하지 못한다. 저들이 천륜을 어기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이들과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유교적 습속인지, 군사문화인지, 기독교의 천년왕국 운동인지... 멸공 천년왕국을 이야기하는 트럼프의 친구들이라는 이들을 보면 이 기묘한 혼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습속의 작동방식 아닐까.


서점에서는 여전히 다산이 인기다. 정조의 리더십이라는 책도 눈에 보인다. 다산이 주례를 바탕으로 한 유교적 이상체제를 구상했다는 점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경전의 내용을 진정으로 믿었던 순수한 유교 탈레반이었던 셈이다. 한반도에서 십이지파로 조직을 구성하는 진지함처럼, 다산도 <주례>를 근거로 <경세유표>를 구성한다. 호학 군주로서 정조의 이상은 유교적 성왕론에 근거하고 있다. 그 옆에는 예비 대통령의 얼굴이 가득하다. 의로운 민족의 의로운 임금. '공정과 정의'라는 구호가 '임금님 우리 임금님'이라는 찬양과 함께할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제국이 무엇이건, 이미 중국은 대중의 마음속에 제국이 되어 있다. 저들이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간다며. 그러나 내가 알기로 제국주의자는 처먹일 생각을 하지 빼았아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함께 나누어 먹는 미덕도, 너에게 김치를 먹이고야 말겠다는 권력 의지도, 두 유 노우 김치 같은 자본주의적 홍보정신도 없다. 그렇게 김치는 의로운 음식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 땅의 고집 센 인간들이 기어코 제뜻대로 살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한편 그 고집 센 이들이 얼마나 쉽게 정신의 고향을 바꿀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왜? 의로움 그것은 변하는 것이니까. 이씨 왕조가 Kimist가 되고, 마음속 대국이 천자의 나라가 천조국이 되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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