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SF 연대기] 한계 속에서 SF의 역사를 구성하기2022-06-0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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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SF 연대기 1, 2장_발제.hwp (83KB)

SF 연대기1SF의 정의, 2장 건스백 이전의 과학소설

 

SF를 과학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과학소설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과학이 무엇이고 소설이 무엇인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당연히 두 가지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SF를 범주화하려는 편집자나 이론가들은 모두 이 두 가지의 난관과 함께 작업했다. 그들은 이 책의 저자들과 우리를 불만족스럽게 만들고 SF가 가진 활력을 반감시켰다는 비난에 직면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했던 작업을 돌아보는 일에서 SF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SF라는 고정된 범주 대신 어떤 텍스트를 SF로 생산·유통하고 소비하는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방식들이 존재할 뿐이라고 여긴다. 그러니까 SF의 역사를 쓸 때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선택과 집중, 차별과 배제에 동참하게 된다. 장르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이 먼저인지, 이 장르에 어떤 텍스트들을 포함해야 할지 분명히 하기 위해 장르를 이론화하는 일이 먼저인지도 문제가 된다. 이런 논쟁은 텍스트와 이론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과학소설이라는 용어는 1851년 윌리엄 윌슨이 처음으로 사용했다. 이후 휴고 건스백이 과학적 소설이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자리 잡게 했다. 나중에 건스백은 경쟁잡지의 소설을 과학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건스백은 SF라는 장르가 인식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1장은 건스백이 SF 장르를 구성하면서 중요하게 언급한 세 명의 작가인 포와 베른, 웰스를 설명하는 데 주로 할애된다.

 

건스백은 SF와 기술적 진보를 결합했다. 또 잡지 편집자로서 자신이 주목하는 세 명의 작가가 가진 영향력과 지적인 통찰, 교육적 측면, 도덕적 훌륭함을 강조했다. 물론 세 작가의 공통점으로 그런 면모를 찾기는 쉽지 않다. 고심 끝에 이 책의 저자들은 여러 철학자가 언급한 숭고라는 개념으로 세 작가를 묶어내려 한다. ‘숭고는 감각의 압도, 공포, 경외감을 표현하며, 미학적인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개념이다.

 

숭고를 가장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는 에드거 앨런 포이다. 일반적으로 SF는 우주에 대한 신비와 숭고를 표현하다가도 지식과 사실에 특권을 부여하면서 숭고를 반감시킨다. 포는 공포나 신비, 환상을 통해 숭고의 힘을 잃지 않으려 한다. 동시에 숭고를 묘사하는 새로운 관점을 창조한다. 포에게는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여 핍진성을 얻는 일도 중요했다. 과학적 용어의 효과와 권위에 의존하면서도 숭고를 끈질기게 끌고 가는 점이 포의 큰 특징이다.

 

조잡한 번역과 재편집으로 망가진 상태에서 만났지만, 건스백은 쥘 베른의 텍스트에서도 SF의 장르적 특성을 발견했다. 과학적 데이터와 정교한 서사, 당대 학문에 대한 풍부한 지식 활용이 베른의 특징이었다. 전문지식을 소유한 권위자와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을 내세우는 베른의 소설은 계몽적이며, 인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베른의 숭고는 과학적 사실과 언어의 권위를 통해 표현되고 제한되며, 포에 비하면 안전하고 아름다운 세계로 귀환한다.

 

베른과 비교하면 H. G. 웰스는 과학적 방식으로 숭고를 환기하고 대우한다. 기술적 변화보다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많았던 웰스는 과학적·기술적 진보의 사회적 함의를 다룬다. 진화론에 심취한 베른은 인간보다 진화된 외계 존재를 다루면서 식민주의와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한다. 웰스는 우주의 광대함과 비교되는 인간의 하찮음을 숭고로 표현한다. 베른은 웰스의 소설에서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지만, 웰스에게도 과학 담론은 중요한 요소이다.

 

페이퍼백이라는 저렴한 매체의 생산자로서 건스백이 과학을 통해 SF를 고급상품처럼 포장하려 했다면, 맑스주의 이론가 수빈은 SF가 가진 단절의 힘과 전복적 성격에 주목한다. 수빈은 SF를 텍스트의 특징이나 내용이 아닌 사회와의 관계로 정의하려 했다. 수빈은 사회에 비판적이며 사회적 변화를 촉진하는 SF, 브레히트의 개념을 빌려와 인지적 소격의 문학으로 정의한다. 역설적으로 범주에 대한 엄격한 규정은 다시 혼종의 생산으로 이어진다.

 

SF라는 장르를 설명하기 위해 건스백이 주목하지 않은 초기 텍스트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유토피아 소설과 디스토피아 소설이 등장한다. 이들은 다른 세계를 상상하며 현실을 비판하고, 지구 너머 세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들은 현실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했으나, 젠더·인종·계급 부분 성찰에서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차이를 균질화하거나 악마화하면서 타자성의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

 

식민지 모험소설은 제국주의와 폭력을 정당화하며, 백인 여행자들이 이방인의 땅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서사를 그렸다. 흥미롭게도 이방인의 땅에서 발견되는 힘은 고대 그리스의 힘이고, 백인들의 지식만이 가치를 지닌다. 아프리카와 같은 이방인의 땅은 모험소설의 배경으로만 등장하며, 원주민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폭력의 가해자로서 백인 작가들은 자신들을 방어하는 서사를 만들고, 서구 문화와 과학·진보를 이데올로기로 연결했다.

 

식민지 모험소설은 강력한 적에게서 조국을 방어하는 미래 전쟁소설을 낳았다. 미래 전쟁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식민주의를 아주 단순한 형태로만 이해했다. 자신들이 피식민지를 착취한다고 보는 대신 피식민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과 노력을 안타까워하면서, 자신들의 정부와 금융이 자국민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서사들은 세계정세에 대한 무지와 혐오를 드러내면서 백인위주의 정치적 입장을 펴는 데 이용되었다.

 

아포칼립스 소설도 역사가 매우 길지만, SF로 편입되기에는 여정이 험난했다. 아포칼립스 소설에서는 파괴와 대혼란으로 인한 종말이 사회 재조직을 위한 구실로 이용된다. 메리 셸리가 쓴 프랑켄슈타인을 최초의 SF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지만, 같은 작가가 쓴 아포칼립스 소설 최후의 인간은 오랫동안 SF에 편입되는 데 실패했다. 영웅적 투쟁보다 사회적 변화에 초점을 맞췄던 초기 아포칼립스 소설들이 그리는 인류의 패배에 거부감이 컸던 탓이다.

 

선사시대 모험담과 진화 판타지도 한 축을 차지한다. 선사시대 모험담과 진화 판타지에는 사회 비판과 진화론적 접근, 오리엔탈리즘적 판타지와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상상이 한데 섞일 때가 많았다. 이런 소설들은 때로 보수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을 드러내는가 하면, 과학에 대한 우호적 태도나 낙관주의 역시 드러냈다. SF 자체가 과학기술과 떼놓을 수 없는 장르였으므로 기술혁신에 대한 여러 입장의 전망이 쏟아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초기 SF 역사에서는 SF라는 명칭 자체보다는 SF의 중심 요소라고 부를 만한 특성들이 널리 유통되고 있었다. 다만 누구도 이를 개념화하여 SF라고 부르지 못했을 뿐이다. 명명과 동시에 어떤 텍스트들이 사후적으로 SF 전통 속으로 편입되거나 배제되었다. 명명의 시기에도 변화의 폭은 컸고, 여러 행위자의 관점과 입장이 변화를 주도하며 경쟁했다. 명명을 통한 범주화는 다시 혼종을 형성하면서, 서로를 확장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SF의 역사를 설명하는 일에서 누구도 배타적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SF의 의미에 대한 협상과 편입·배제의 과정에는 수많은 행위자가 참여하며, 텍스트를 구성하는 어떤 요소도 SF 역사에서 중요도를 결정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덧붙여 초기 SF가 보수적 한계 속에서도 섹슈얼리티를 포함한 젠더·인종·계급의 문제와 비인간 타자의 문제에 관해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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