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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양철학사] 비판과 변혁의 철학 (헤겔과 맑스)2021-04-0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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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 2》 제17장 헤겔, 제18장 맑스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 유럽은 온통 변화의 공간이었다. 헤겔과 맑스는 모두 이 변화에 주목했던 철학자이다. 두 사람 모두 철학은 세계의 변화와 밀접하다고 여겼고, 특히 맑스는 세계를 해석하는 일을 넘어 변혁시키고자 했던 철학자이다. 맑스의 변혁은 헤겔의 변증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변증법은 세계의 결점에 대한 비판과 변화를 기본으로 가정한다. 이 가정에는 19세기 유럽에 만연하던 계몽과 진보의 분위기가 짙게 깔려있다. 헤겔과 맑스는 계몽과 진보를 지지하는 일을 넘어 적극적으로 세계의 변화를 탐구하고 모색했다.

 

헤겔이 진보적인가, 보수적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이 책의 저자들은 헤겔 철학의 역동성에 집중하면서 ‘좌파 헤겔주의’를 채택한다. 우선 헤겔은 칸트의 선험적 전제들(시간·공간·인과성)을 비판했다. 우리 사유에 선험적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이 전제는 더 폭넓고 변형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헤겔은 변화 가능하면서 서로 다른 세계관들이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과정들에 관심을 가졌다. 이 구성의 과정이 역사이며, 역사에서 구성된 것이 바로 우리의 선험적 전제 조건들이다.

 

칸트가 이원론적 대립의 방법으로 사유했다면, 헤겔의 방식은 변증법적 종합이다. 헤겔에게 비판과 대립은 존재들 간의 역동적 긴장이며, 비판과 대립의 원인이 되는 결함이 바로 변화를 추동한다. 정신은 역사를 통해 발전한다. 비판적-역사적 통찰이 다양한 선험적 전제 조건들의 결점을 지각하며 변화하기 때문이다. 헤겔의 철학은 ‘비판적 프로젝트’에 가깝고, 부정성의 힘이 드러내는 변증법적 긴장을 통해 인간의 사유와 지식은 변화한다. 성찰은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일종의 정치적 수단이다.

 

헤겔이 이야기하는 해방은 전통과 사회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사회의 비합리성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인간은 역사를 통한 자기 인식과 성찰을 통해 진보한다. 헤겔은 경험을 강조하지만, 경험주의자들의 탈역사적 태도와는 거리를 유지한다. 헤겔의 경험은 인식론적 문제라기보다 일상의 경험에 가깝다. 변증법 역시 이론을 넘어 구체적 역사 과정에 적용된다. 변증법적 사유는 무엇보다 구체적 사실 및 상황과 관련된 사유이다. 사실과 상황 그 자체의 결함에 대한 성찰이 우리를 보다 참된 입장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헤겔의 철학은 사유의 발전을 상정하며, 총제적 진리를 추구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참에 가까워진다는 논리이다. 진리는 부분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연관된 총체성의 문제이다. 성찰은 세계에서 결함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결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충동을 창출한다. 헤겔은 변증법적 지양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지양은 부정적 폐기가 아닌 비판적 보존을 의미한다. 역사는 모든 가능한 선험적 전제 조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변증법적 지양을 계속한다.

 

헤겔 철학의 역동성은 주인과 노예에 대한 이론에서 잘 드러난다. 주인과 노예는 인정투쟁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결정한다. 노예가 해방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관계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노예는 자신이 주인에게 복종했기 때문에 노예임을 깨달아야 하고, 주인에게 자신이 노예가 아님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이중의 해방 과정을 거쳐 해방될 수 있다. 주인과 노예 이론은 헤겔 철학의 정치적 구체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의 페미니즘과 젠더 이론, 탈식민 이론에서도 헤겔의 통찰은 여전히 중요하게 작동한다.

 

주인과 노예 이론에서 보듯 헤겔이 말하는 개인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개인이다. 우리는 타자에게 인정받는 방식으로 존재하며, 공통된 이해지평 안에서 사유하며 살아간다. 어떤 창조적 행위도 이 전통적인 이해지평 안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헤겔이 말하는 자유도 국가로부터 강제 받지 않을 자유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자기를 실현하는 자유이다. 헤겔에게 국가는 윤리적 공동체이므로, 인간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 소유와 불평등을 인정하는 헤겔은 자본주의가 자기파괴적 제제임을 파악했지만, 혁명에 의한 전복은 믿지 않았다.

 

좌파 헤겔주의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맑스는 세계를 변혁시키고자 노력했다. 유럽 각국에서 탄압을 받거나 추방되었고, 여러 도시를 떠돌며 혁명을 조직했다. 엥겔스와 함께 공산주의자동맹을 만들고 행동강령을 만들었다. 맑스는 세계의 역사가 하나의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헤겔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이 과정에서 근본적인 것은 ‘물질적 생활의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경제결정론으로 해석하면, 맑스가 말한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맑스가 중요하게 바라본 물질적 요인은 경제와 역사의 문제였고, 경제는 노동에 기초한 문제였다.

 

맑스는 포이어바흐의 소외 개념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소외로 이해했다. 포이어바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을 인간이 자기 외부의 존재로 봄으로써,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보는 소외를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생산물에 의해 억압받는데, 맑스는 노동을 통해 소외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기 생산물의 소유권을 잃고, 경제발전 과정에서도 결정권을 잃어버린다.

 

맑스가 이런 소외의 굴욕적 상황을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가 겪는다고 한 점은 흥미롭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는 모두 자신을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로 실현할 수 없다. 사물화된 인간은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사물로 바라본다. 맑스가 보는 소외는 헤겔의 변증법에서 안티테제가 차지하는 역할과 비슷하다. 안티테제는 혁명이라는 종합적 변화의 상황을 추동한다. 소외는 혁명을 통해 철폐되며, 인간은 경제를 통제하면서 자신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이 혁명은 자본주의적 생산능력 역시 한 단계 고양시킬 것이다.

 

맑스는 헤겔의 역사 인식을 확장하여 역사가 노동에 의해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경제의 역사, 노동의 역사로 바라볼 때, 노동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맑스는 소비의 크기가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와 계급을 연결했다. 노동을 통해 증식한 가치의 일부를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주지 않고 잉여가치로 축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와 사용 문제가 더 복잡해진 현대에 맑스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맑스의 저술에는 이론적 논증과 주장, 예측들이 뒤섞여 있으며, 이미 몇 가지 예측은 빗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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