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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포스트휴먼] 더불어-되기를 통해 앎에서 벗어나기2021-06-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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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반려자들의 대화(도나 해러웨이) 발제문.hwp (95.5KB)

<반려자들의 대화> 도나 해러웨이, 캐리 울프

 

우리는 언제나 문제가 많은 표현이다. 많은 문제를 감수해야 함에도 나는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우리는 단순히 문장의 주어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우리라는 주어로 시작된 글은 마지막 부분에서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가 과연 누구였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가상의 주어, 가상의 우리는 잠정적 결론에 합의하는 임시적 주체가 된다. ‘우리가 누구이기 이전에 왜 홀로 있지 않고 우리로 묶여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우리가 되었을까? ‘우리는 왜 다른 무엇이 아닌 우리로 불리는가?

 

도나 해러웨이의 두 선언문 역시 이 우리에 대한 해명의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특히 <반려종 선언>은 둘 이상이 함께하는 복수의 주어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사이보그 선언>이 사이버네틱스 시스템과 유기체의 결합을 말한다면, 이는 한 개체 안에서 나타나는 변화라 할 수 있다. 모두가 겪는 변화일 수 있지만, 혼자 겪어도 무리는 없다. 한 유기체와 사이버네틱스의 결합은 를 여신이 아닌 사이보그로 만든다. 반면에 <반려종 선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공-진화하고, -구성된다.

 

도나 해러웨이에게 혼자 하는 되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불어-되기만이 가능하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의료행위와 국가의 제도적 장치 등을 통해 생명정치의 그물망에 포섭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생명정치의 권력이 벌거벗은 신체에 작용함을 보여주었다. 마이크로칩이 이식된 동물과 국가가 발급한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는 생명을 가졌다는 점에서 동등하게 생명정치의 대상이다. 생명정치의 대상은 인격이나 자격을 통해 형성되지 않는다. 생명체가 가지고 태어난 살, 이 살이 바로 생명정치의 대상이다.

 

생명정치의 권력은 우리를 살게 하고 마음대로 죽지 못하게 만드는 권력이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해서 때로는 죽음의 권리마저 박탈하고, 어떤 대상이 어떻게 살다가 언제 죽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권력이다. 의료시스템 안에서 인간과 반려동물은 생명정치에 포섭되며, 축산업의 대상이 된 동물은 특정 시점이 될 때까지만 살아야 한다. 야생동물은 이 시스템 안에서 때로는 보호되고, 때로는 공격받는다. 살을 가진 생명이 어김없이 생명정치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나와 반려동물과 밥상에 오르는 동물의 차이를 지워버린다.

 

지워진 차이는 생태계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나 해러웨이는 어떤 생명체도 생태계 밖에 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어쩌면 인류세는 인간의 역량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표현이다. 인간 역시 생태계 밖에 있지 않다. 절멸시키려 골몰했던 바이러스의 역습으로 인류의 삶이 변형(메타플라즘)된 지금 우리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존재라 여겼던 이들과 반려자가 됨으로써 변형되고 생존한다. ‘우리를 재구성하면서 우리는 기존의 앎에서 벗어난다. ‘더불어-되기를 통해 변형되면서, 기존의 앎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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