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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4장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부수며 – 우리실험자들

후기

제목[페미니즘] 4장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부수며2022-01-24 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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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철학입문 0126 4장 발제_아라차


여성성이라는 신화를 부수며


여성성이라는 신화. 여성은 여성스러워야 한다, 모성애가 있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돈과 권력이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원래부터 엄마로 가정주부로 살기 위해 태어났다 등. 여성을 둘러싼 거의 모든 말들이 다 신화다. 신화는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만들어진 이야기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당위처럼 작용하기 때문에 뭐가 잘못된 건지 인지하지 못한다. 여성은 신화에 못 미치거나 범위에서 벗어나면 스스로 뭔가 잘못한 양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는 ‘행복한 가정주부’라는 신화가 만들어지기 좋은 조건이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남자들에게 일할 곳을 주기 위해 일터에 있던 여성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전쟁영웅들은 차례차례 대통령이 되었고, 사회는 전쟁 이전의 평화로운 시대를 염원하며 보수주의를 내세웠다. 보수정권, 가부장제의 남성성이 득세할 때 여성의 자리는 편안한(?) 집이 되었다. 부유해져가는 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정의 수호자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도 빨리 결혼해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대학은 남성 엘리트들과의 대화에 낄 정도의 교양만 갖추게 해 주는 곳이라 여겼다.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로 가정주부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베티 프리단은 처음부터 페미니스트가 아니었다. 두 번의 출산으로 해고를 당한 후 가정주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다 모교의 졸업생 동문 조사를 맡게 되면서 여성들의 실상을 파악하게 된다. 자신과 함께 대학을 졸업한 여성들이 15년 후에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자신처럼 대부분 가정주부로 살고 있었다. 안락한 집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다정한 남편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팔자 편한 여자의 이미지로 그려졌던 중산층 여성들. 그러나  베티 프리단이 만난 이 여성들은 모두 불행했다. 베티 프리단은 이 내용을 르포 기사로 쓰고 싶었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여성성의 신화>라는 책으로 출간하게 된다. 1960년대 미국 중산층 여성들의 현실이다. 우울함을 기본으로 탑재한 이들에게 남편이 선심쓰듯 제안하는 쇼핑이 해결책이 아님을 베티 프리단은 간파했다.


문제는 사회가 “행복한 중산층 가정주부”를 여성들이 가장 염원하는 이상형이라고 주입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자본주의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하던 미국의 소비주의 노선도 한 몫 했다. 미디어는 가정주부들이 집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가전제품들에 대한 광고를 쏟아냈다. 앞치마를 두른 아름다운 여성들이 행복한 미소를 띄우며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가정주부라서 행복해요, 여자라서 행복해요 류의 광고였다. 가전제품들이 이렇게 쏟아진 것은 전쟁 장비를 만들던 군수품 회사들이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만들게 되면서 가정주부들의 소비를 부추겨야 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조작된 미국 주부들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정체성과 목표를 찾고, 창조력을 느끼며, 자아를 실현한다고 느낀다고 한다. 심지어 부족한 성적 희열까지 느끼기도 한다.”(여성성의 신화, 377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들이 “수많은 상품의 희생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베티 프리단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여성성에 대한 조작된 이야기가 통용되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비판했다. 여성은 페니스가 없는 자신을 싫어하고 페니스를 가진 남자를 시기하고 질투하게 된다는 무식이 풀 뜯어먹는 이야기. 프리단은 페니스가 권력이고, 여성들은 더 좋은 페니스를 획득한 여자들을 미워하고 질투할 수밖에 없다는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빅토리아 시대 백인 남성의 한가한 사변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프로이트 아내 얘기 진짜... 상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또한 20세기 중반의 미국에 적용할 수 없는 옛날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프로이트 개인의 경험을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으로 치부하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다. 


마거릿 미드는 프로이트 이론을 발판삼아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가 젠더 역할과 행위의 준거점이 된다고 주장했다. 여성성의 신화를 인류학적 근거를 들어 강화해버린 것이다. 이런 사람이 대중매체에 전문가로 등장해 떠들어대니 신화는 더욱 굳건해져 버렸다. 프리단은 마거렛 미드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게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여성인데다 교육을 받고 직업 전선에서 인정받는 경력을 가진 학자가 티비에 나와 “대학을 나와서 학자가 되거나 직업을 갖지 않고 결혼하려는 여성들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마거릿 미드는 여성성이라는 신화가 굴러가는 구조를 보지 못했고, 그 구조를 작동시키는 정신분석학을 인류학 이론으로 만들어 대학에서 가르치기까지 한 것이다. 


여성성이 신화라는 베티 프리단의 선언은 “가정은 안락한 포로수용소”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 버린다. 여성들이 왜 여성성의 신화를 이의없이 받아들이고 납득하고 적응하게 되는지, 그 형태가 마치 포로수용소에 갇힌 수용자들 같다는 것이다. 미디어가 안락한 미국 중산층 가정이라는 이상적 이미지로 포장했지만 결국은 수용소라는 것. 여성들은 갇힌 죄수들처럼 자기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자유를 박탈당하고 개성도 포기한 채, 원초적이고 육체적인 욕구만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 능력을 기를 시간도 여력도 없었기에 집 안에서 가부장에게 어린아이처럼 의지해야 하고 집을 벗어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어대니 집 밖의 세상을 터부시하며 스스로를 가둬놓는다. 그러니, 삶이 재미가 있겠냐고요. 우울하고 권태로운 사모님의 서사에는 이런 구조와 배경이 있다. 


베티 프리단은 1950~60년대 아이들의 정서장애가 증가하는 현상과 포로수용소에 갇힌 주부들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어린이가 여성성의 신화에 의해 무기력해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상호 파괴적인 공생으로 나아가고, 이는 다시 여성성의 신화를 통해 악순환으로 구축된다. 여성들이 가정이나 아이에게 완전히 헌신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여성성의 신화가 지닌 역설을 직시해야 한다. 여성들이 더 여성적이 되도록 촉구하는 것도 멈춰야 한다. 남편이나 자식을 통해 삶의 목적을 이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성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 문제이고, 여성만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적 징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베티 프리단은 “여성 개인들의 선택만으로 여성들이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사회의 구조, 가부장제라는 구조가 부서져야 된다”고 강조한다. 


베티 프리단의 이런 논의들이 주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말하는 제2물결 페미니즘에서 다뤄진다. 한국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불렸다. ‘래디컬’이라는 말은 ‘근본적’이라는 뜻이다. 뿌리, 구조를 건드린다는 것은 현재의 질서에 도전한다는 의미다. 신화처럼 몰래 숨어든 이야기, 인간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모든 규준에 도전하는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인간 조건의 기초라고 믿어온 견해를 흔들고, 특히 근대 인간의 정상성이라는 것부터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제1물결 페미니즘이 동일성, ‘여성도 같은 인간이다’를 외쳤다면, 제2물결 페미니즘은 남성이 말하지 않는 여성성에 대해 여성인 내가 이야기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남성이 규정했던 그 여성성이 치밀하게 만들어진 신화라는 걸 밝히고 그 신화를 깨부시자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받고 19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주부이자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 베티 프리단은 <여성성의 신화>의 화자이자 당사자였다. 프리단은 자기의 삶으로부터 문제를 발견했고, 그 문제가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의 문제임을 밝혀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제2물결, 페미니즘 대중화에 불을 지폈다. 한계는 분명히 있다. 백인 이성애자 여성을 일반 여성인 것처럼 사유한 부분, 가족이나 결혼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다는 부분 등 시대의 한계를 동반한다. 그럼에도 머물러 있는 그 자리에서 겪는 자신의 문제가 다른 여성에게도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었고, 자신의 정체성은 자신이 직접 규정해야 사는 재미(?)가 있다는 점도 알게 해 준다. 나도 모르게 주입된 통념들을 실천하면서도 내가 원해서 했다는 착각으로 홀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우울해 하지 말고 당장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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