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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총균쇠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 우리실험자들

후기

제목[리딩R&D] 총균쇠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2022-05-18 12: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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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총균쇠> 0518 발제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식량을 채집하던 인류는 야생동식물을 가축화·작물화하여 식량을 생산하게 된다. 식량 생산은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인류의 여러 유행병은 가축화·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종이 많은 지역에서 진화했다. 농작물과 가축을 확보함으로써 유행병이 만연할 수 있는 조밀한 사회가 형성되었고, 가축화된 동물의 병원균에서 그와 같은 질병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동물을 가축화한 사람들은 새로 진화한 병원균에 먼저 희생되었지만 곧 새로운 질병에 상당한 저항력을 진화시켰다. 그렇게 면역성을 지닌 사람들이 그 병원균에 노축된 적이 없었던 사람들과 접촉하면 당장 유행병이 돌기 시작했다. 심한 경우 전체 인구의 99%까지 몰살되기도 했다. 


왜 수렵 채집민은 식량 생산을 시작했을까?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수렵 채집민 생활이 명백히 불리해 보이지만 한때는 지상의 모든 사람이 수렵 채집민이었을 때가 있었다. 오늘날 식량 생산이 곧 육체노동 감소, 안락 증대,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평균 수명 증가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1세계 사람들 뿐이다. 전 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농경민과 목축민은 수렵 채집민보다 잘산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루 노동 시간도 오히려 수렵 채집민보다 길다. 최초의 농경민들은 수렵 채집민보다 체격도 작고 영양상태도 좋지 않았다. 심각한 질병을 더 많이 앓았고 평균적으로 더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한동안 식량 생산과 수렵 채집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이었다. 인류는 결국 농경민이 되긴 했지만 아주 오랫동안 수렵 채집민을 고집했고 비로소 농경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수렵채집보다 식량 생산의 경쟁력이 더 커지게 만든 제일 요인은 야생 먹거리의 감소였다. 기후 변화 때문이든 인간 사냥꾼들의 기술이 발달했든 홍적세 말기에 대형 포유류가 대부분 멸종했고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일부가 멸종했다. 반면에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 식물이 증가하면서 작물화에 따른 보상이 많아졌다. 식량 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이 차곡차곡 만들어졌고, 인구도 많아졌다. 어느 것이 기원이고 결과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식량 생산을 선호하게 되었다. 


초기 농경민은 어떻게 각종 야생식물을 작물화할 수 있었을까? 초기 농경민들은 열매의 크기, 쓴맛, 과육의 양, 기름, 섬유의 길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바람직한 특징들을 많이 갖춘 개체를 수확함으로써 고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작물화의 기반을 닦았다. 유용한 야생식물들은 이미 고대인이 거의 빠짐없이 살펴보았고 그중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조리 작물화했다. 그러나 비옥한 지역임에도 농업이 독립적으로 시작되지 못한 곳도 있다. 농업이 독립적으로 시작한 지역 중에서도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더 늦게 농업이 시작됐다. 지역의 기반 식물군과 환경의 영향이 모두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비옥한 초승한 지대는 현대 세계의 주요 농작물 몇 가지와 주요 가축 대부분이 발원한 지역이다. 도시, 문자, 제국 그리고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발전이 가장 먼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지중해성 기후대이다. 겨울은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길고 덥고 건조하다.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식물의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중해성 기후대 중에서도 서유라시아는 계절별·연도별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지역이다. 식물종이 다양해지고 한해살이식물이 많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다. 또 짧은 거리 안에서도 고도와 지형 변동이 심하다. 고도 변동이 심하면 환경도 다양해져 농작물의 잠재적 조상인 야생식물도 다양해진다. 고도차가 심하다는 것은 수확기가 제각각이 된다는 의미다. 재배나 수확시기가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야생 식물들 뿐 아니라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 조상도 풍부했다. 대형 포유류인 염소, 양, 돼지, 소가 매일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 개를 제외한다면 이 4종은 세계를 통틀어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들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적당한 야생 포유류와 야생 식물이 있었기 때문에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옛사람들은 집약적인 식량 생산을 위한 우수하고 균형 잡힌 생물 조합을 금방 구성할 수 있었다. 


뉴기니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좋은 대조를 보인다. 뉴기니에는 가축화·작물화할 수 있는 곡류, 콩류, 동물 등이 없었다. 뉴기니의 토착적인 식량 생산이 한계가 있었던 것은 뉴기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은 뉴기니의 생물상과 환경 때문이다. 미국 동부의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주변 야생종들 중 작물이 될 만한 것들은 빠뜨리지 않고 살펴보았을 것이다. 멕시코산 3대 작물이 도착하자 그들은 주변 작물을 포기하거나 그 비중을 중이는 선택을 했다. 좋은 식물을 보면 높이 평가할 줄 알았다는 증거다. 이처럼 토착적 식량 생산이 취약했던 것은 원주민들의 후진성 때문이 아니라 생물상과 환경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가축화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야생 후보종을 가축화하지 못한 것은 고대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후보종들의 단점 때문이었다. 동물의 식성, 성장 속도, 짝짓기 습성, 성격, 겁먹는 버릇 그리고 사회조직의 여러 가지 뚜렷한 특징들이 가축화하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유라시아인에게는 다른 대륙 사람들에 비해 가축화할 만한 대형 야생 초식성 포유류가 훨씬 더 많았다. 이는 유럽 사회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는 기본 조건이 되었다. 


농작물과 가축, 문자와 바퀴 등의 발명품들은 각 대륙의 모양과 방향에 따라 전파 속도가 달랐다. 식량 생산이 가장 신속하게 전파된 경우는 동서 축 방향이다. 가장 느리게 전파된 것은 남북 축 방향이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일치하는 정도는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수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군계 등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동식물들은 위도와 관련된 기후 특성에 적응한다. 유라시아에서 동서 확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던 조건이다. 하지만 남북 축은 다르다. 열대성 기후에 적응을 못했고 사막에 막혔다. 축의 방향은 식량 생산의 확산 뿐 아니라 기술이나 발명품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 축들을 중심으로 회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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