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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천의 고원』 강사인터뷰_최진석 :: 1011(수) 개강2017-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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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고원​ 강사인터뷰_최진석 :: 2017-1011(수) 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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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의 고원이라는 책 :: 삶을 낯설게 여기고 다르게 살게 하는 책-기계          

 

천의 고원​은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가 펠릭스 가타리가 함께 쓴 세 번째 책입니다. 1972년 첫 책 ​안티 오이디푸스​를 냈고, 1975년에는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하여​를 출간했죠. 천의 고원은 1980년에 나온 그들의 세 번째 저작입니다. 그들은 이 책이 하나의 기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유의 도구상자가 되어 당신들의 두뇌와, 신체와 접속하여 ‘작동’해야 한다고 잘라 말하죠. 책상에 앉아 눈으로 묵독하던 독서의 전통을 깨버린 겁니다. 내용적으로 이 책은 국가주의와 자본주의, 주체중심적 인간학, 도구론적 언어관과 심미적 예술론, 데카르트적 사유방식 등 모든 근대적 흐름과 단절하고 다르게 ‘조직’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식과 감각의 익숙한 ‘배치’를 낯설게 전환시키라고, (재)배치하라고 종용한다 할까요? 

 

하지만 내용을 넘어서, 지식 이상으로 이 책이 우리에게 무엇을 권유하고 강제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런 새로운 지식이 있으니 새로 공부하란 말은 계몽주의적이죠. 그보다는,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지식에 관해 고민하도록 압박하고 촉발하는 책이라 생각하면 더 좋겠군요. 책장을 덮으면 나와 무관한 책-사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낯설게 여기고 다르게 살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강제력을 행사하는 책-기계의 사상이 여기 있습니다. 

 

   ​ ​   『천의 고원의 저자 :: 들뢰즈, 가타리가 아니라 들뢰즈-가타리          

 

들뢰즈는 철학교수이고 대학에서 정통적인 철학사적 훈련과 연구를 진행하던 사람입니다. 흄이나 칸트, 스피노자, 니체 등에 대해 책을 내기도 했죠. 물론 ‘전공’에 충실하게만 연구하던 양반은 아닙니다만. 반면 가타리는 학생운동에 투신하기도 했고, 라캉에게 정신분석을 배우기도 하고 실제 임상의로도 활동한 적이 있습니다. 얌전한 들뢰즈에 비하면 훨씬 활동적이었고 사회적 명제를 직접 제기했던 사람이죠. 

 

겉보기엔 판이한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서 함께 저술활동에 나선 수많은 일화들이 있습니다. 한쪽이 번뜩이는 발상을, 다른 한쪽이 그걸 문자로 풀어내는 재능을 제공하고... 가타리가 번개처럼 번쩍 아이디어를 던지면 자신은 피뢰침이 되어 그걸 받아 적었다고도 하죠. 겸손했던 들뢰즈의 표현입니다만. 누가 더 재능있었고, 많이 썼나 하는 의구심은 별로 도움이 안 될 듯해요. 왜냐면 그들은 ‘저자’라는 이름으로 호명되는 개인마다의 저작권 개념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문제는 그들이 분리불가능하게 서로에게 섞여들어 만들어낸 결과물은 얼마나 낯설고 다른가, 들뢰즈나 가타리가 아니라 들뢰즈-가타리가 되어 나타난 『천의 고원』은 대체 어떤 기계냐를 캐묻는데 있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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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천의 고원의 독자 :: “한글로 쓰여졌다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자신과 함께 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누구에게든 권해주고 싶습니다. 단, 이 책이 그들의 도구상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작동하는 기계가 될지는 알 수 없죠. ​천의 고원은 어둡고 불안했던 삶을 한 순간에 확 밝혀주고 새 길을 열어주는 비법서가 아닙니다. 이 책을 읽는다고 남들보다 더 많은 지혜를 얻고, 일거에 국가나 자본을 깨뜨리는 인생을 열어갈 수도 없구요. 오히려 일반적인 독서의 틀을 다 깨버릴 걸 요구하기에 무척 어렵고도 지루하게 읽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 책이 한글로 쓰여졌다는 사실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는 보통 그걸 ‘어렵다’고 표현합니다. 맞아요. 어렵죠. 그런데 사는 방식을 바꾸는 건 더 어렵지 않나요? 삶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기 위해 취할 만한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책을 읽는 건 가장 쉬운 축에 속하죠. 진득하게, 꾸준히 읽어나가는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해 보여요. 그리고 의문을 품는 것. 들뢰즈와 가타리가 대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거기에 반항도 하고 답변도 해보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 아닐까 싶네요.  

 

   ​ ​   『천의 고원 읽기 :: 두 번째 독서를 위한 시간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만나고 여러 가지가 변화했습니다. 나름 얌전한 학생이고, 전공공부에 충실하던 사람이 공동체니 사유니 사회니 하며 정해진 세계 바깥에 눈을 돌리게 되었죠. 무엇보다도 어떤 공부든 그것이 삶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를 묻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냥 사후적으로 의미부여하는 공부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의미를 캐묻고, 그로써 삶의 방향진로를 돌리게 만드는 공부는 어떤 걸까 고민해 보기도 했고요. 천의 고원에 대해 진짜 매력을 느끼게 된 건 이 책 읽기를 거의 포기할 즈음이었어요. 한 학기 동안 수업도 듣고 열심히 읽기도 했는데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책이 사이비거나 내가 머리가 나쁘거나, 혹은 그냥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며 포기할 즈음부터 무언가 스멀스멀 머릿속을 기어오르는 느낌이더니 조금씩 생각과 감각이 바뀌는 걸 느끼게 되었어요. 무슨 신앙간증 같은 걸 하자는 게 아니라 (하하하) 그만큼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누구든 이 책을 읽는 분들도 살아온 이력이란 게 있는데 그게 순식간에 바뀌겠어요? 아마 처음 읽고선, 이번 강의를 듣고선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그냥 포기하자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두 번째 읽게 된다면 - 그 두 번째는 결코 희귀한 시간은 아니죠! - 그때는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겁니다. 한번 가 본 길이고 그게 어느새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자극하고 변화시켜 놓을 테니까요. 이번에 우리가 함께 읽는 건 그 두 번째 독서를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면 될 듯해요.

 

 

 들뢰즈-가타리의 천의 고원 읽기 :: 강사 최진석

 ▪​러시아 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문학평론가, 수유너머104 연구원 

 ▪​저서: 민중과 그로테스크의 문화정치학』 (그린비 2017), 국가를 생각하다 ​(북멘토 2015, 공저), 불온한 인문학 

 (휴머니스트 2012, 공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07, 공저), 코뮨주의 선언 ​(교양인 2007, 공저) 

 ▪​역서: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자음과모음, 2013), 러시아문화사 강의 ​(그린비 2011, 공역), 

 『해체와 파괴 ​(그린비 2009), 레닌과 미래의 혁명 (그린비 2008, 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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