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푸코/권력] 무엇이 정신의학에 힘을 부여했는가 ('정신의학의 권력' 11, 12강 발제)2024-05-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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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권력11. 12

 

이 강의의 초반부터 푸코는 근대 정신의학이 의학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음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정신의학이 권위를 추구하는 방식은 의학과 유사하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신의학과 의학의 가장 큰 차이점을 푸코는 진단의 방식에서 찾는다. 근대의학은 병리해부학의 출현과 함께 진단의 문제를 강조했고, 질병을 감별하는 방식에 집중했다. 반면 정신의학은 질병의 분류보다 광기의 유무, 즉 광기인가 아닌가의 문제에 집중했다.

 

푸코는 근대의학의 진단이 감별진단 모델이라면, 정신의학의 진단 방식은 절대진단 모델이라고 분류한다. 정신의학 입장에서 의학이 가진 권위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려면 이 문제를 돌파할 필요가 생긴다. 신체성의 부재 문제도 마찬가지다. 규율권력이 신체에 작동한다는 점에서 신체성의 부재는 정신의학의 힘을 약화하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환자의 초권력은 항상 의사의 초권력과 함께 작동하며, 의사의 권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다.

 

병을 현실화하는 시련은 정신과 의사를 의사의 지위로 확립한다. 이때 심문, 마약, 최면이라는 세 기술이 행정적 요청을 징후로 기능하게 한다. 심문은 네 가지 방식과 절차를 통해 광기를 현실화한다. 먼저 심문은 유전의 문제를 끄집어내 광기를 신체에 연결한다. 또 병의 전조를 통해 개별 맥락 속에 비정상성의 지평을 구성한다. 이어서 책임과 주체성의 교차를 조직하며, 광기의 고백과 소멸을 연결하여 환자의 고백을 통해 의사의 힘을 끌어낸다.

 

한편 19세기 의사들에게 마약은 광기를 재현할 가능성을 부여했다. 의사들이 자기 몸에 약물을 실험하면서 광기는 동일한 계열로 이해되는 것은 물론, 의사가 광기와 직접 소통할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다. 과거에 정신요양원에서 이루어지던 관계가 정상인 정신과 의사와 비정상인 광인의 관계였다면, 마약을 통해 의사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광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정상성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비정상성의 경험이 여기서 가능해진다.

 

마약을 통한 광기 이해 가능성은 꿈에 관한 연구로도 이어진다. 꿈은 정상의 개인에게서 광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원리 역할을 한다. 이제 마약 중독처럼 광기는 신경계의 특수한 상태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꿈은 정상적 삶과 병리적 삶에 공통되는 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꿈을 이해하면서 광기에 자신의 법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각성과 광기 사이에 꿈을 놓은 모로 드 투르는 정신의학과 정신분석학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최면을 이야기하기 위해 푸코는 자기요법이라는 오래된 치료법을 소환한다. 치료사 신체의 자기를 활용해 치료한다는 자기요법의 일종인 메스머리즘은 1830년대에 폐기되지만, 브레이드의 최면요법은 이후 1860년대 정신의학의 실천 내에 수용된다. 두 요법의 차이는 환자에게 부여하는 역할의 차이에서 부각된다. 메스머리즘이 환자에게 진실을 말할 기회를 준다면, 브레이드의 최면은 모든 효과를 의사의 의지와 권력 안에 둔다.

 

최면은 환자의 신체를 무력화시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준다. 이제 환자의 신체는 규율 수준뿐 아니라 근육이나 신경, 기본적 기능 수준에서도 신체에 개입할 수 있다. 이 개입은 환자의 신체를 신경학적 신체로 재발견하게 하며, 신체에 대한 새로운 규정으로 나타난다. 결국 심문, 마약, 최면을 통해 정신의학은 새로운 신체를 발견하면서 광기를 일반의학의 징후학에 편입하려 한다. 푸코는 이 시도를 샤르코와 히스테리 환자의 대결에서 엿본다.

 

신경학적 신체의 발견을 통해 신경학의 구축과 진보, 완성까지 자축하던 샤르코는 예상치 않게 히스테리 환자들과 대결하게 된다. 신경학은 유사한 징후에서 심리적 문제와 신체적 문제를 별도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따라 주체의 태도나 의식, 의지를 신체 내부에서 포획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규율권력의 적용 대상인 신체에서 의지를 포획하게 되면서 개인을 의지 수준에서 포획하는 일 역시 가능해졌다.

 

신경학이 유사한 징후에서 다른 원인을 지목하는 일을 가능하게 해주면서 정신의학에도 감별진단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 정신의학은 단지 광기인가, 아닌가를 묻는 일을 넘어 광기를 징후로 보면서 어떤 질병인지를 감별한다. 히스테리 역시 하나의 병이 되어 의학적 방식으로 취급할 수 있게 된다. 푸코는 히스테리의 역사보다 이 지점을 중요하게 보려 한다. 바로 샤르코가 히스테리를 감별진단 의학의 영역에 집어넣은 지점이다.

 

샤르코가 히스테리 환자에게서 얻으려던 이익은 반대로 히스테리 환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했다. 의사가 히스테리 환자의 징후에 의존한다면, 환자는 과잉의 징후 혹은 의사가 원치 않는 불규칙한 징후를 제공하면서 대항한다. 이 싸움은 정신의학의 영역을 확장하고 새롭게 구축하는 싸움이기도 했다. 독특하게도 푸코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보험체계를 이 싸움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꼽는다.

 

한 가지 더 푸코의 분석에서 독특한 점은 히스테리 환자와 성의 관계를 다르게 이해한다는 점이다. 샤르코는 히스테리 환자와 성적인 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히스테리 환자와 성 문제를 연결하여 다루지 않으며, 이 문제를 일부러 무시하려고 애쓴다. 프로이트는 이 점을 의아해하면서도 자신의 연구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푸코는 여기서 샤르코가 무언가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으리라 예상한다.

 

바로 히스테리 환자의 성현상이 의사에 대항하는 불행한 여성들의 술책이자 승리의 외침이라는 사실이다. 히스테리 환자가 보여주는 징후를 이용해야 하는 샤르코의 입장에서는 이 징후를 따라가면서도 성현상을 해독 불가능한 무엇처럼 대하며 가능한 무시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이 성현상은 이후에도 정신의학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로 남는다. 정신분석학이 주로 떠맡은 이 문제 덕에 의학이 성현상을 다룰 실마리가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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