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난민] '국가'라는 폭력과 '국민'이라는 배제2024-09-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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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난민화되는 삶2부 난민과 난민화되는 삶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 그녀들의 귀향의 거부 혹은 실패 | 이지은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마음: ‘난민화의 메커니즘을 비추는 병역거부와 이행을 다시 생각하며 | 심아정

 

오늘 이야기할 두 편의 글에 등장하는 일본군 위안부와 병역거부는 우리에게 낯선 소재가 아니다. 오히려 이와 관련하여 아주 비슷한 말들이 수없이 반복되었기에 더 이상 이 문제에서 논의할 여지가 없는 듯 보일 정도이다. 과연 우리는 이 두 사안을 충분히 탐구하고 공개적으로 논의하였을까? 아마도 두 편의 글은 이 두 사안이 전혀 새롭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큰 충격과 의문, 새로운 고민거리를 제공하리라 예상한다.

 

먼저 첫 번째 글은 종전 이후 귀향을 거부했거나 실패한 조선인 위안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와 태국에 살던 노수복, 베트남 난민으로 한국에 돌아왔으나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배옥수, 세 여성이 그들이다. 이 글의 저자 이지은은 이들을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증언자들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은 국내의 위안부피해자들보다 일찍 피해를 고백했으나, 한국 사회는 그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매체는 그들의 현재 삶보다는 과거의 위안부경험에만 관심을 보였고, 그 경험을 상업적 성애화로 소비하면서 민족주의 서사와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피해 경험이나 불발된 귀향은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여성혐오 서사로 수렴되었다. (주로) 남성 화자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생산된 순결을 잃은 가련한 피해자들이나 민족의 아픔을 몸으로 겪은 여성들의 이미지는 이들을 더욱 타자화하고 배제했다.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된 이후 무국적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귀향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소식이 닿은 그의 언니 역시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고, 두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했다. 태국에서 한국어를 거의 잊은 채 살고 있었던 노수복은 귀향보다 태국의 가족과 현재의 일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서울에서 베트남 난민들과 함께 자신 역시 베트남 난민 신분으로 거주하던 배옥수는, 한국인들보다 베트남인들과 더 유대가 깊었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에 태어난 이들에게 귀향은 한국에 입국하는 일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감을 뜻했다. 그들의 삶은 애초에 국민국가 바깥에서 시작되었고, 피해 증언이나 현재의 삶 역시 한국과는 무관했다. 매우 가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난 이들은 어릴 때부터 굶주림과 노동, 가족의 냉대에 시달렸고, 결혼한 이후에도 불행은 계속되었다. ‘위안부피해에만 집중하면 20세기 아시아 여성들의 삶 전반을 관통하는 고통은 비가시화된다.

 

할머니라는 명칭으로 그들을 동질한 집단처럼 상상하거나 약한 피해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일도 그들의 증언을 제대로 듣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이 일본의 만행보다 전쟁범죄를 고발하려 했다거나, ‘아시아 연대를 말하려 했다는 사실은 증언을 선택적으로 청취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강한 여성의 면모를 그들에게서 발견했다.

 

두 번째 글이 다루는 병역거부 문제도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이지만, ‘병역거부병역기피를 한데 묶어서 다루려 한다는 점에서 고정관념을 벗어난다. 병역은 시민권의 문제인 동시에 젠더의 문제이다. 젠더 또한 시민권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행하는 폭력의 일종이다. 한국 사회는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관공서의 문서에는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만이 사용 가능하다. 3의 성은 병역에서 복잡한 문제를 초래한다.

 

병역은 국가의 이름으로 자국 국민에게 행하는 폭력이며. 미래에 국민국가 경계 밖에 있는 이들에게도 난민화의 위험을 초래하는 폭력이 된다. ‘병역거부병역기피는 다르지 않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 일상이 파괴되는 두려움은 병역의 안팎에서 상존한다. 이 글의 저자 심아정이 언급하듯 여성을 비롯한 비남성들이 병역에 관심을 가지고 병역거부 선언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병역은 국민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폭력의 다른 이름이라면, ‘국민은 배제의 다른 이름이다. ‘국가에는 언제나 국경의 바깥이 존재하고, 누군가가 국민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비국민이 존재해야 한다. ‘국가가 들려주는 승리의 서사에 심취하고,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개인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이 폭력과 배제를 공고히 할 뿐이다. 20세기의 조선인 (여성) ‘위안부와 현재의 (남성) ‘병역거부자들은 이 폭력과 배제의 사슬로 연결된다.

 

조선인 위안부들이 귀향하지 못한 채 타국에서 살아가듯 병역거부 성소수자들은 외국에서 난민지위를 얻으려 한다. ‘난민은 국가와 멀어질 때조차 국가와 깊이 연관된다. ‘난민을 어떤 국가에서 살 수 없게 된 자, 혹은 어떤 국가에서 난민지위를 얻으려는 자로 보는 입장은 난민을 국가 서사에 가두는 일이 아닐까? 단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못한) 난민이나 국가와 무관하게 살아가려는 난민을 상상하는 일은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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