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서양철학사] 무지와 오류의 가능성에서 시작하는 철학2021-01-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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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사11장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 2장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서양철학의 뿌리를 대체로 고대 그리스에서 찾는다. 이 책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서양철학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책들과 조금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히 철학자의 이름과 개념을 나열하는 일을 넘어 그들의 철학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쟁점화하는 스타일을 짚어나가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고대의 철학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당시의 통찰이 지금도 타당한지를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철학자들은 각자 사회적 맥락과 시대적 한계 안에서 세계와 인간을 통찰하려 했다. 그들의 통찰을 경전처럼 떠받들며 화석화시키거나 반대로 터무니없다고만 치부해서는 철학사를 생생하고 즐겁게 공부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방식대로 각자가 대화 속에서 자기성찰의 방식으로 철학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원전 400년경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소규모의 공동체 형태로 모든 자유민 남성들이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철학은 개인들 간에 조화와 질서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기능했다. 경제와 정치, 철학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귀족정이나 참주정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혈연으로 세습되는 귀족정이나 독재의 여지가 많은 참주정에 대한 불만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민주주의의 이면에는 식민지의 확장과 노예제도 등 사회 계층의 분화도 자리하고 있다.

 

- 1세대: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그리스의 식민지 확장은 그리스 문화를 여러 곳에 전파하는 역할도 했다. 특히 그리스의 식민지 밀레토스에서는 항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연철학이 싹트고 유행했다. 탈레스는 천문학과 기하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세계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세계가 변화하는 와중에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 다양성 속에 통일성을 이루는 원천, 즉 원소에 대한 물음이다. 탈레스는 이 원천이 물이라 답했지만, 곧 이를 논박하는 다른 원천에 대한 주장들이 쏟아져나왔다.

고대 그리스에서 과학과 철학에는 구분이 없었다. 근대적 학문 구분이 생기기 전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경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과학적 문제를 풀어나가려 시도했다. 달리 말하면 철학의 방식으로 관찰 가능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철학이 과학 탐구의 길을 열고, 경험과학적 탐구의 토대가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탈레스를 기점으로 인간의 사유는 신화적 사유에서 논리적 사유로 이행하였다. 탈레스는 서양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이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의 전제를 받아들이고 비판함으로써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원소가 규정되지 않으며, 시간과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메네스는 탈레스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물질의 변형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이 관심은 이행에 관한 물리학 이론으로 나아갔다.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모두 밀레토스의 자연철학자들이며, 1세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다.

 

- 2세대: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에페소스 출신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신의 주장을 모호하고 암시적인 은유적 표현의 글로 남겼고, 다른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다. 철학자들의 상호 논쟁과 논평이라는 새로운 전통이 여기서 성립된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함께 2세대 철학자에 속하는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와 불변이라는 1세대 철학자들의 전제에 의문을 제기했다. ‘변화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논의는 로고스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변화하는 사물의 배후에 로고스가 있음을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적으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이성과 감각 사이에 타협 불가능한 구분을 설정한다. 파르메니데스는 통찰의 대상에 대한 경험을 불신하며, 논리적 추론만으로 세계를 파악하려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 역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묘사한 역설을 통해 감각과 이성의 분리를 강하게 주장한다. 이들에게 실재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었다.

 

- 3세대: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

2세대 철학자들이 변화를 논쟁거리로 삼았다면, 3세대 철학자들은 변화와 정지의 상태를 모두 포괄하면서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 엠페도클레스는 4개의 불변적 원소와 함께 이들을 묶거나 나누는 변화의 힘을 가정한다. 이 가정 속에서는 세계의 변화와 불변하는 속성들이 모두 설명된다. 아낙사고라스는 셀 수 없이 많은 원소들과 변화를 불러오는 단 한 가지 힘을 가정한다. 이 변화의 힘은 정신이며, 정신은 어떤 목적을 위해 변화를 일으킨다. 여기서 자연은 목적론적으로 이해된다.

1세대와 2세대의 철학을 포괄하고 묶어낸 3세대의 철학은 플라톤과 동시대인인 데모크리토스로 이어진다. 플라톤은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르네상스 이후 고전물리학의 성립에 기여한 이는 플라톤이 아닌 데모크리토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를 상상해내어 우주를 단순하게 설명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우주는 목적이 없으며 기계적 방식으로 움직인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자는 상상의 영역에 있었고, 이는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우리는 사물을 어떻게 감각할 수 있는가? 대상들이 본질적으로 소유하는 속성들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감각이 대상에 부여하는 속성들 때문인가? 지금 우리에게 원자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에서는 이처럼 원자론이 흥미로운 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했다.

 

- 피타고라스학파

또 하나 중요한 학파로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식민도시에 살던 피타고라스학파를 들 수 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기본사상은 구조와 형식 혹은 수학적 관계들이다. 이들은 수학이 음악과 같은 비물질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에 동시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사물이 사라져도 수학적 개념은 사라지지 않으므로, 수학적 지식은 변하지 않는 확실한 지식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서는 신비성을 수학에 부여하기에 이른다. 이원론적 세계관을 정립한 합리적인 신비주의자로서 이들은 플라톤뿐 아니라 자연과학에도 영감을 주었다.

 

- 소피스트들: 고르기아스, 트라쉬마코스, 프로타고라스

기원전 600년에서 450년까지를 자연철학적 시기라고 부른다면, 그 이후는 인간중심적 시기라고 부를 수 있다. 자연에서 인간과 사유로 관심의 대상이 이동하여 소피스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식에 대한 회의적 비판과 지식 이론, 인간의 본성과 사유가 철학의 대상이 되며, 성찰(반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존재론이 인식론으로 나아가며, 윤리적-철학적 물음들도 제기된다. 그리스의 식민지 확장은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증폭시켰고,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삶과 태도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도구로 다져진 합리적 토론능력이 질문을 철학으로 심화시켰다.

아테네와 같은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교육수준이 높아야 하는데, 이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이 현명한 사람들이라 불리던 소피스트들이었다. 유급으로 사교육을 담당했던 소피스트는 교사와 저널리스트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해냈다. 소피스트들은 동질적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 활동했고, 인식론적 문제와 윤리적-정치적 문제들을 탐구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 절대적인 옳음은 없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했고, 도덕마저도 상대화해버린 이들이 사회를 해칠까 염려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절대적 진리를 불신하는 소피스트의 상대주의는 회의적 입장으로 연결되었다.

고르기아스는 참과 거짓의 구분에 관심이 없고, 수사학에 관심을 가지는 뛰어난 웅변가였다.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 고르기아스에게 중요한 지식은 수사학을 통한 설득과 논증의 기술이었다. 플라톤의 국가에 등장하는 트라쉬마코스는 옳음과 정의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견해를 가지며, 보편타당한 법질서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주장은 인식론적 관점주의라 부를 수 있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활동이나 상황에 의해 규정되며, 지식은 상황에 상대적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이런 입장은 개인들의 소통 실패를 예측하지만, 바로 이 실패 때문에 보편적인 사회규범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도출되는 사회규범은 다른 사회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만 유효하다.

 

- 소크라테스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는 보편적인 옳음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 옳음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이에 대항하여 보편적인 윤리적-정치적 질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 저술을 직접 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입장이 플라톤의 입장과 어떻게 명확하게 구분되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플라톤처럼 글을 쓰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방법론의 특징을 끌어낼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앎과 덕은 동등하다. 이 앎은 사실에 대한 지식인 동시에 규범적 통찰이고, 그 자체로 통찰에 대한 책임이다. 개인의 확고한 지식으로 나타나는 윤리적 규범을 보편적 선과 연결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신과 같은 신비적 존재를 염두에 두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대화는 철학적 성찰로 나아가는 중요한 방법이었고, 질문은 말하는 이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성찰하도록 만드는 도구였다. 소크라테스를 소피스트와 구분하는 특징은 수사에 의한 설득보다 이성에 의한 확신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 확신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과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고 행복할 수 있다. 이 확신을 점검하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무지를 깨닫게 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무지를 깨달으면서 앎은 시작된다. 보편타당한 답을 추구하기 위해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시작하는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이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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