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2 차이나리터러시 발제_아라차
신조어와 번역어가 만들어내는 세계
‘항마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수의 신조어와 줄임말들이 오고 가는 대화의 흐름으로 얼추 파악이 되는 것과는 달리 ‘항마력’에 대해서는 어리둥절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물으며 ‘옛날 사람’임을 인증받고 가는 길에 다시 검색을 해 보았다. 원래는 악마를 항복하게 한다는 불교 용어이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마’에 대항할 수 있는 힘으로 사용되면서 유행했고, 또 변형을 거쳐 현재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나 사진, 영상 등을 보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나타내는 신조어’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한동안 나는 항마력의 마력에 빠져, ‘항마력 딸려’, ‘항마력 부족해’ 등의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을 냈다. 그러다 점차 시들해졌고, 지금은 항마력이 달리는 순간에도 이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고, ‘어우 닭살~’ 하면서 옛날 사람으로 살고 있다.
신조어와 줄임말의 사용은 이너써클이 보내는 유혹과도 같다. 서양의 학문이나 사상, 제도, 지식 체계 등을 모방하고 흡수하고자 했던 19세기 일본에서 번역어의 역할이 그랬던 것 같다. 하여 저자 야나부 아키라는 번역어의 성립 법칙으로 ‘카세트 효과’를 강조한다. 여러 번 등장하지만 또 한번 상기시켜 보자면, ‘카세트 효과’는 갓만들어진 번역어가 처음에는 내용이 빈약하고 생소해 보이지만, 생소하기에 오히려 사람들을 매혹함으로써 의미가 풍부해지며 적절한 번역어로서 정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유’, ‘사회’, ‘개인’과 같은 번역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가장 적절한 번역어라서가 아니라 카세트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반복되는 주장이다.
야나부 아키라는 총 열 개의 개념어(사회, 개인, 근대, 미, 연애, 존재, 자연, 권리, 그(그녀))를 대상으로 근대 일본 번역어의 역사를 추적했다. 이 책에는 생소한 개념어들과 전문 용어들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고군분투가 남겨져 있다. 그 중에는 본인이 쓰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겨둠으로써 번역의 문제가 지식인들에게도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난관은 번역하고자 하는 개념이나 현상 자체가 일본에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였다. 이런 상황에서 번역어는 주로 한자를 사용해 새로 만들어지거나 기존의 일본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권리’, ‘자유’, ‘그(그녀)’는 원래 일본어에서 일상어로 쓰이던 것이 나중에 번역어로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경우이다. 이처럼 이미 있는 일본어를 번역어로 사용한 경우에는 서로 다른 의미들이 혼재하게 되며, 게다가 서로 모순을 일으키기도 했음을 여러 용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말이라는 것은 일단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유통되면 독립적인 개체가 되어 독자적으로 활동한다. 처음에 쓴 사람, 단어를 만든 사람의 뜻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227p)
‘권리’는 right의 번역어로 사용됐지만 그 안에 힘의 의미가 있음을 사용하면서 차츰 이해하게 되었으며, ‘자유’는 나쁜 어감으로 번역어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지만 결국 정착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해당 문자의 의미로 가장 적절한 단어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며, 가장 번역어다운 말이 정착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번역어로서는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말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오랫동안 써온 모국어와는 성격이 다른 말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말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모국어와 잘 어울리지 않는 위화감이나 어긋남이 오히려 카세트 효과를 일으켜 새로운 단어가 되는 원리이다. 게다가 새로운 단어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야마 가카이는 일본어 문장에서 필요할 것 같으면서도 필요가 없는 이 말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이 말에 예전에는 없던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그彼’라는 말을 쓰자, 아마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가 펼쳐졌을 것이다.” (256p)
저자는 다야마 가타이가 ‘그彼’나 ‘그녀彼女’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고 말하면서 작가도 일본어 문맥상에서 주는 위화감을 충분히 알면서도 감수하고 썼다고 했다. 그彼’는 1인칭도 3인칭도 아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1인칭 같기도 하고 혹은 3인칭 같기도 한, 확정되지 않은 역할을 소설 무대에서 연출해 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 역할을 이 번역어가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번역어가 만든 세계는 원 단어를 사용하는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정확한지와는 별개로 사용자들이 멋을 내며 그 단어를 내뱉을 때 각각의 세계를 펼쳐지듯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많이도 어긋났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당신이 알고 있는 ‘자유’와 내가 알고 있는 ‘자유’가 왜 그토록 합의를 이루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가 어긋나 있는 채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셈이다. 무언가 더 정확하게 설명하려 할 때마다 의미가 더 퇴색해지는 묘한 상황이 펼쳐지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신비주의라는 망토를 쓰고 ‘사회’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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