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끝에 달린 마음 에레혼
“너의
검술은 성숙하지만 아직 마음道心이 견고하지 못하다.” (영화 《자객
섭은낭》의 대사) 《수호전》을 읽으며 새삼스레 깨달은 게 있다.
어릴 때부터 내가 무협에 관심을 둔 적이 없다는 사실. 무협지가 아니라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 받는 김용 소설도 끈기 있게 붙들고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최근에 무협 장르를 필수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상황이 겹쳐서 찾아왔다. 《수호전》을 세미나에서 공부할 책으로 고른 것 이외에도, 학교 수업 과제로 《자객 섭은낭》이라는 영화를 본 것이다.
《수호전》이 무협 소설인가, 하고
누가 물어본다면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도 꽤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무협의 전형적 구도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아니, 거꾸로 이야기해서
《수호전》은 무협 장르의 모범을 보여준 소설이다. 《자객 섭은낭》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무협
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예전부터 감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왔다. 한 작품은 지나치게 날 것의 느낌이라서 소화하기 버겁다는 인상을 받았고, 다른
한 작품은 정적이다 못해 멈춰있는 듯 한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볼 때마다 졸음이 몰려왔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감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비슷한 시기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게 되었다.
번진할거 VS 태평성대 《수호전》은 세미나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
《자객 섭은낭》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당나라 말기를 시대 배경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 시기는 변방에 있는 무장 세력의 힘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외곽의 군대 주둔지를 번진藩鎭이라고 불렀다. 중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혹은 중국 무협지를 읽다보면 “번진들이 할거하여 조정을 위협하고”하는 식의 문구가 자주 등장한다. 이런 상투적 문장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당나라 말기, 그리고
춘추전국보다 어지러웠다는 5대 10국 시기, 그리고 송나라 초기를 시대 배경으로 다룬다. 번진은 세력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 자객을 보내기도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섭은낭 역시 위박魏博이라는
곳으로 투입되는 자객이다. 물론 이런 설정은 익숙하다 못해 상투적이다. 최근
중국 무협 장르는 아예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별개로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한다. 무협에 관심이 없어 정확하지
않지만,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지고, 역병이 사방을 휩쓸며, 도적떼가 약탈을 일삼는……” 식의 문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런데, 《수호전》은 후대 무협 소설에
상당부분 아이디어를 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투적 상황설정에서 자유로운 듯 보인다. <설자>를 살펴보면, 홍 태위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36천강성과 72지살성의 봉인을 ‘필연적으로’ 풀어버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한바탕 큰 일이 일어날 법도 한데, <설자>는 용호산 장천사가 역병을 없애고, 홍신은 일을 저지르고도 상을
받는다. 독자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쯤 작가는 서둘러 덧붙인다.
“당시는 천하가 태평하여 사방이 무사했다. /
잠깐! 만일 정말로 태평무사하다면 지금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독자 여러분! 당황하지 마십시오.
지금 이 글은 《수호전》을 시작하기 위해 끼워 넣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100쪽)
작가는 끼워 넣었다고 격하시키고 있지만, <설자>는 《수호전》 작가의 이야기 설계 능력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송
인종 시기는 실제로 북송대의 태평성대였다. 하지만 그 시기로부터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휘종 통치기까지는
불과 30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북송 사람들이
누리고 있었던 안온한 사회 분위기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협객, 자객, 도적들의 활동이 반드시 사회적 혼란을 근원으로 하지는 않는다는, 《수호전》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섭은낭 VS 노지심 《수호전》은 수호전 최고 인기 캐릭터인 노지심으로 초점을 옮겨 간다. 옮겨 간다고 표현을 한 것은 <노지심전>이라고 해서 노지심이 바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호전》은 제멋대로 써내려간 것이 아니다.
17회가 되어서야 송강이 출현하는 것을 보면 작자가 이야기 전개를 수백 번 고민했음을 알 수 있다.”(55-56쪽)라는 김성탄의 극찬을 떠올려보자. 저자는 <노지심전>에서
등장 순서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한 번 더 비튼다. <노지심전>에서
노지심보다 먼저 나오는 인물은 서브 주인공도 아닌, 악역 고구이다. 고구에서
노지심까지 이어지는 인물 간 바통 터치는, 노지심이 등장할 때까지 독자들이 책을 덮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면 취하기 어려운 서술 방식이다.
2회가 되어서야 등장하는, 《수호전》
최고의 인기스타 노지심. 노지심의 행동을 보면 그가 왜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인지 짐작을 할 수 있다. 감정에 치우쳐서 행동하지만,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폭력들은 불의에
대한 반작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모는 우악스럽게 생겼을지라도, 아마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작품 팬들에게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캐릭터일 확률이 높다. (물론
이 인물도 정 대관인을 죽이고 쫓기는 신세가 되기에 덮어놓고 옹호할 수는 없겠지만, 《수호전》에서 이
정도의 살인은 살인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듯하다.) 다시 이야기를 《자객 섭은낭》으로 돌려본다. 영화의
주인공 섭은낭은 여러 모로 정적인 인물이다. 감독은 영화를 동양화처럼 그리고 싶어했는데, 이 자객도 그 수묵화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묘사된다. 표정도 잘 보이지
않고 한없이 냉정한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섭은낭은 암살 대상을 제거하는 데에 번번이 실패한다. 첫 번째 제거 대상은 아이를 안고 있었기에, 두 번째 제거 대상은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지만) 예전의 정혼자이기에 섭은낭은 암살을
망설이고 타이밍을 놓친다. 은낭의 스승은 첫 번째 암살 실패 이후 그가 마음―중국어로는 ‘도심道心’이라고 나온다―이 아직 견고하지 못해 실패하는 것이라며, 은낭을
‘ex-정혼자 제거 미션’에 투입하는 초강수(?)를 둔다. 두 번째 암살 실패 이후 스승이 은낭에게 건내는 말은 더욱 현학적이다. “검은 감정이 없어서, 성인聖人이 남과
함께 걱정하는 경지와는 다르다. 너의 검술은 성숙하지만, 인륜의
정을 끊어버리지는 못하는구나.”
영화를 보고 나서 감정에 흔들려 암살에 실패한 섭은낭을 보고 답답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드물지 않을까. 무협 장르 속 인들은 사사로운 감정을 담지 않아야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무기를 휘두르고 폭력을 사용하는 무림의 캐릭터 가운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냉혈한 유형’은 그리 자주 보이지 않는다. 《수호전》
독자들이 노지심을 좋아하는 이유도 상대에게 칼을 겨눌 때 감정을 한가득 담았기 때문은 아닐까. 앞으로
등장하는 이런 감정 과잉 인물들의 향연은 우리를 과몰입하게 만들지, 혹은 거리를 두게 만들지―양산박 패거리의
칼 끝을 주목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