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점균처럼 생각하기>
엄청나게 멀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너에게*
글쎄,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사람들은 나를 황색망사점균이라고 하지. 아마도 먼 훗날 너는 나를 ‘쏠’이라고 부르게 될 거야. 나는 어둡고 따뜻하고 습한 곳을 좋아해. 마치 덩굴처럼 스스로 퍼져 나가며 시속 1센티미터 속도로 움직이지. 사람들은 내가 하나의 거대한 세포막 안에 수백만 개의 핵을 가지고 있다더라. 핵 안의 염색체를 통해 스스로 분열하고 복제하는 과정을 통해 확장해나간대. 아무튼 내가 움직이는 이유는 식량을 찾아가지 위해서야. 박테리아, 곰팡이, 부패하는 유기물을 발견하면 내 안에서 맥동이 리드미컬하게 뛰는 것이 느껴져. 아마도 네가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두고 군침을 흘리며 설레는 것과 마찬가지일거야. 물론 나는 생식을 하기도 해. 생식기에 접어들면 밝은 곳으로 이동하지. 그리고는 포자가 널리 퍼지도록 포자형성체를 만들어. 건조한 곳에서 포자는 아메바가 되고 물이 있는 곳에서는 빈 원형 빨대 꼬리로 채찍처럼 물을 휘저으며 나아가. 환경에 따라 포자를 퍼뜨리는 방식이 달라지지만 유전적 차이는 없어. 생식과정을 거친 나’ 아닌 또 다른 ‘나’들은 다시 먹잇감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나가지. 나는 길을 헤매는 법이 없어. 아무리 복잡한 미로라도 잘 빠져나가지. 미로의 모든 통로에 덩굴손을 보내고 점액 흔적을 남기는데, 그것이 내가 길을 찾는 정보야. 말하자면 네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검색 엔진을 작동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지. 이 과정에서 미로를 통과하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낼 수 있어. 글쎄,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그걸 설명하기는 어려워. 어쩌면 그것은 네가 기억하고 인지하고 먹고 숨 쉬는 모든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이 모든 것이 사실 생물학적 현상이며 생존의 요건이니까 말이야. 아마도 너는 나를 먼 미래에 만나게 될 거야. 네가 감각하는 시간을 나는 내 방식대로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먹잇감을 발견할 때 맥동이 작동한다고 했잖아. 그 때 내 안에서는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한 감각과 함께 어떤 리듬감이 느껴져. 그것이 반복되면 과거의 기억을 통해 미리 행동하기도 하지. 그것을 파블로프의 개 실험이랑 비슷하다고 하더라. 나에게도 내적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야. 어쩌면 나는 너를 만나게 되는 순간에 맥동을 느끼게 될 지도 몰라. 그 순간, 너는 내가 만들어낸 리듬이 음악처럼 네 안에서 울려 퍼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거야. 네 안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게 되는 거지. 그것이 우리의 미래야. 어쩌면 이미 네 안에, 그리고 내게 이미 와 있는 지금의 그 어떤 것일지도. 사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중심 세계는 어디에도 없어. 나를 이루는 각각의 조각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고 때로는 맥동이 뛰는 쪽으로 맥락 없이 움직이기도 해. 말하자면 내 속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내가 너무도 많다고 할 수 있지. 나는 사전에 계획을 세우는 법도 없어. 습관화된 패턴도, 어떤 계산도 하지 않지. 나는 단지 환경에 따라 정보를 입력하는 동시에 의사를 결정해. 그리고 분산해서 움직이지. 내 모든 움직임을 사람들은 수학적이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나는 행동파에 가까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냥 움직이는 거야. 결과가 훌륭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너처럼 느끼고, 고민하고 결단해. 하지만 행동파인 탓에 미끼의 유혹에 곧잘 흔들려. 그래서 원래 가려고 했던 길에서 벗어날 때가 있어. 너도 가끔 그럴 때가 있잖아, 그치? 하지만 그게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어떻게든 나는 나아가고 미끼의 유혹이 때로는 생존에 필요한 경험과 지혜를 갖게 하니까 말이야. 너라는 미끼에 내가 유혹되어 내 스스로 네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처럼 말이야. 나는 너보다는 훨씬 단순하고 느릴지도 몰라. 사실 나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겠어. 어둡고 불확실한 세계가 내 안에 가득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나게 될 거고 나는 너의 일부가 될 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 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할 거야.**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다려야 해. 기다리는 줄도 모른 채 숨 쉬듯 어딘가로 이끌려 가며, 때로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말이야. 태린. 그때 까지 네가 있는 곳에서 부디 안녕하길 바라. 어쩌면 다시 이 모든 것을 잊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게 될지 모르지만 말이야.
2024년 1월. 너의 쏠로부터.
*김초엽 <파견자들>에 나오는 범람체와 황색망사점균의 유사성에 착안해 소설의 프리퀄 방식으로 작성 **김초엽의 소설 <파견자들>의 문장(태린이 서랍에 숨겨 놓은 쪽지의 내용 중에서)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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