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루쉰을 얼마나 알까? 2024. 1. 11 걷는이
무엇 때문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루쉰을 읽다 보면 위화가 떠오르고, 위화를 읽다 보면 루쉰이 떠오르곤 한다. 작년에 제법 두꺼운 위화의 <원청>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내가 읽은 루쉰과 위화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위화는 어찌 저리 긴 글을 술술 잘 풀어 냈을까?...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작품을 적잖이 읽긴 했는데 인간 루쉰. 인간 위화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네... 뭐 이런저런 생각 끝에 갑자기 궁금해졌다. 루쉰은 왜 짧은 글만 썼던 걸까? 루쉰이 장편소설을 썼다면 어땠을까? 마스다 와타루는 의심이 많고 화를 잘 내는 루쉰의 기질이 그가 장편 작가가 되지 못한 이유일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런 기질이 개인적인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민족적, 역사적, 사회적 관계로까지 발전해 간 것이 루쉰적인 특성을 이루었고, 정치 비평적인 면에서 깊이 있고 통렬한 문장을 쓸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또한 저자는 당시 사회가 문학 작품보다는 정치적인 단평을 요구했기 때문에 루쉰이 만년에 이르러 잡감의 에세이를 썼을 것이라 덧붙인다. <아큐정전>의 작가였던 루쉰은 수필 잡감문을 신문이나 잡지에 투고했던 루쉰이기도 하다. 마스다 와타루가 가까이에서 본 루쉰은 세상을 향해 강조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확실하게 옳고 그름으로 구분했으며, 강조해야만 하는 것은 저돌적으로 외쳐 강조하고 거기에 반하는 것을 통렬히 공격했다. 그 옳고 그름이 나뉘는 지점은 중국의 오늘과 미래에 유익한지 아닌지의 차이에 있었다. 루쉰은 봉건제 사회에서 태어나 전통을 체득했고 혁명의 시대를 살았다. 당시 중국의 역사 자체가 과도기의 모순이 많고 혼란스러웠듯이 계몽가로서의 루쉰에게도 관념과 실생활이 통일되지 못한 모순이 드러나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루쉰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작가, 교육자, 아니면 근대 중국의 사상적 지도자. 그런데 <루쉰의 인상>을 읽으며 하나가 더 보태졌다. 중국에서 새로운 목판화를 제창하고 목판 예술을 발전시킨 공적과 더불어 동서양 회화에 대한 폭넓은 교양의 소유자. 저자의 말처럼 루쉰은 성실한 노력파인 동시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중국소설사략> 저자로서의 학자, 목각화 지도자, 단편소설 작가, 사회 비평적인 에세이스트. 한마디로 중국의 위대한 문화지도자라고나 할까! 루쉰에 관해 여러 각도에서 연구하고 평론한 글은 많다. 대개는 주관적인 이해에 의해 묘사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기억하는 루쉰은 그 무엇에도 굴복하지 않고 투쟁하는 거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대부분 그의 작품을 읽고 얻은 저마다의 ‘루쉰의 인상’을 갖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 유학생들 중에서 제일 먼저 변발을 잘라냈다는 루쉰, 가족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루쉰, 정치적 압박 속에서 조급해하는 루쉰, 노벨상 후보자 추천을 거부했다는 루쉰... 이런 여러 모습의 ‘사람 루쉰’이 혁명과 혼란의 시대에 그 엄청난 작품들을 써 내려간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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