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음’은 ‘승리 없음’이 아니다. 구름 1783년 즈음까지는 라봐지에의 이론이 전반적으로 우월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1783년 이후 대다수의 화학자가 신속하게 산소 이론으로 갈아탄 이유는 라봐지에 이론의 ‘단순성’이었다. 금속이 녹스는 과정에서 무게가 증가하는 것을 설명하려면 금속이 플로지스톤을 잃으면서 다른 무언가(물이나 공기)와 결합함을 인정해야 했다. 이에 파일은 산소이론이 연료, 산소 기, 칼로릭이라는 세 개의 물질로 연소를 설명하는 단순함(?)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플로지스톤은 필요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플로지스톤이 과연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서 플로지스톤주의자들조차 결코 합의할 수가 없었다. 1800년에 이르면 과거의 플로지스톤 이론은 죽은 상태였다. 여러 논쟁 속에서 ‘단순성’이 라봐지에의 손을 들어주는 요인이 되었다. 라봐지에의 이론은 연소를 세 개의 물질들을 통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단순하다고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산(酸)에 관한 이론이나 칼로릭의 입자 여부에 대해서 산소주의자들의 의견이 갈렸고 이들도 많은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화학혁명 시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택하게 한 중요 원인들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 길먼 매캔의 결론에 따르면 ‘나이와 국적’이다. 젊은 화학자들이 라봐지에게 동조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인들이 자국인인 라봐지에의 프랑스 화학을 받아들일 개연성은 더 높았다. 게다가 라봐지에의 새로운 화학은 온갖 제도적 수사학적 수단을 동원하여(특히 매우 의식적이고 잘 조직된 캠페인을 통해) 학계의 정치에서 떠오르는 샛별이 되었다. 플로지스톤을 죽인 것이 라봐지에와 그의 친구들이지만 플로지스톤의 죽음을 존속시킨 더 큰 힘은 ‘합성주의’라는 당대의 시류였고 그것은 플로지스톤의 복귀를 막게 된다. 저자는 플로지스톤의 요절이 오늘날 과학의 발전을 지체시켰다고 주장한다. 상상을 통해 플로지스톤 화학의 전통을 육성했다면 오늘날의 화학은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발전했을지를 그려본다. 또한 역사 연구를 통해 이미 플로지스톤을 되살리는 작업이 실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고 플로지스톤 개념의 중요한 측면들이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나서 힘겹게 19세기를 헤쳐가는 라봐지에주의-합성주의 화학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플로지스톤이 이미 우리 곁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전기분해와 그 불만 화학혁명 시기에 제시된 물의 전기분해는 물이 화합물이라는 결정적 증거로, 물의 전기분해를 제시했다. 하지만 전기의 작용으로 물이 산소 입자와 수소 입자로 분해될 때, 거시적인 거리만큼 서로 떨어진 두 개의 전극에서 각각 산소 기체와 수소 기체가 발생하는 거리 문제는 라봐지에주의 화학을 심각하게 벗어난 사례로 탈바꿈시킨다. 리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전기분해가 원소인 물이 양전기 및 음전기와 결합하여 산소와 수소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터와 맞선 사람들은 거리 문제에 대해 수많은 해결책을 제안했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설득할 수 없었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물속에서 떠다니지만 탐지되지 않는 자유이온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리터에 따르면, 전기가 물속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일은 분해가 아니라 합성이었다. 전지의 양극에서 양전기가 물과 결합하여 산소가 생성되고 음극에서는 음전기와 물이 결합하여 수소가 생성되는 것이었다. 물은 다시 원소로, 산소와 수소는 화합물로 간주되었다. 리터의 견해는 라봐지에 시스템에 반발한 사람들에게는 꽤 매력적이었다. 플로지스톤을 음전기와 동일시하면 리터와 캐븐디시의 구상은 거의 일치했다.(192쪽 표2.1) 플로지스톤 이론은 거리 문제와 상관없이 물의 전기분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프리스틀리는 음전기와 플로지스톤이 연결되어 있고 양전기와 산소가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저자 역시 플로지스톤과 음전기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플로지스톤과 전자의 동일시가 더욱 매력적임을 언급한다. 19세기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은 전기분해의 불확실성과 의견의 불일치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전기분해를 발전시켰다. 불확실성 속에서 전개된 전기분해와 관련된 모든 실험들은 그것이 당시 채택 받지 못한 이론이든, 주류의 과학 패러다임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론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과학사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불확실성은 삶에서 제거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지식 시스템들은 서로 경쟁하고 발전하고 번성하여 제각각 서로를 자극하고 풍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19세기의 전기화학이 역사적으로 균형 잡힌 느낌조차 없다고 이야기한다. 종결에 대한 집착 때문에 정상과학(?)연구를 위한 독점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라봐지에주의를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가설들, 리터의 합성 견해를 비롯한 여러 이론들을 살펴보며 19세기 초반 전기화학의 발전 역시 무수히 흔들리며 성장해 왔음을 막연히 이해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