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아나키즘] <국가처럼 보기> 발제(2부 3~4장): 국가를 위한 국가, 도시를 위한 도시 2020-04-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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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세미나: 국가처럼 보기 – pp. 143~320.>                                                                               2020.04.21


국가를 위한 국가, 도시를 위한 도시 


에레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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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와 불편함의 상관관계

위 사진들은 구글에서 ‘불만족스러운 이미지unsatisfying image’로 검색한 결과의 일부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물체가 정돈된 모습을 모은, ‘힐링되는 짤’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곤 한다. 그러니까 위의 사진들은 일부러 시각적 쾌감과 거리가 먼 것들을 묶은 것이다. 등분되지 않은 파이, 튀어나온 중앙선 블록, 굳이 중심에 세우지 않은 막대기는 우리 머리 속 ‘이상적인 질서 이미지’를 배반한다. 굳이 이런 인터넷 밈을 동원하지 않아도,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이미지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끌리기 마련’이라는 명제는 자명해 보인다.

‘예상 범위 내에 있는 것에 대한 선호’가 개인의 취향에서 그친다면 문제될 일은 없어 보인다. <국가처럼 보기> 책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표준 혹은 질서에서 벗어난 것을 교정하려는 대규모의 사업을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국가에서 이뤄지는 ‘틀린 그림 찾기’는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수월한 통치를 위해 고안된 것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03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 ─ 미리 적어 놓은 계획서에 짜맞추기

제임스 스콧은 질서화에 대한 국가적 열망에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이 모더니즘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사회p.145”─즉, 가독성이 높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여러 국가에서는 낡은 형태와 결별하려는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 목적에 힘을 실어준 것은 과학과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이었다. 책에서는 하이 모더니즘적 국가가 자신들의 청사진에 피지배층과 사회 전반을 끼워 맞추는 작업을 미리pre- 기술-scription하는 것(=‘처방prescription)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가독성과 단순화의 국가 프로젝트’에서 살펴보았던 지도에 받아 적는 ‘묘사description 작업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부차적인 이야기를 빼놓고 보면 하이 모더니즘은 국가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준다는 국가적 비전이 왜 문제시되는가? 이는 하이 모더니즘이 대개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역사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 시기의 프랑스, 레닌의 소련 등은 국가주의적인 방식으로 발전을 도모했다. 국가주의적 공권력을 동원하지 못하는 사회는 대규모 사업을 위한 공공기구나 특별 조직을 통해 하이 모더니즘의 열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국가처럼 보기>를 통해 통치자에게 가독성의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면, 하이 모더니즘에서 미래를 강조하는 태도 역시 가독성의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역시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에게는 가독성이 떨어지는(혹은 읽을 수 없는) 텍스트였다. 하이 모더니즘의 신봉자들은 과학과 기술의 힘을 빌린다면 미래 역시 장악할 수 있는 것이 되리라 믿었다.

20세기를 기점으로 상당수의 국가들이 상반된 이유로 하이 모더니즘을 표방하게 된다. 전시 동원, 전후재건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또는 혁명적 체제나 식민지 체제에서 통치 역량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하이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당시 하이 모더니즘은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추종자를 양산했다. 대립되는 정치 진영은 생산제일주의라는 하이 모더니즘의 실행 방법론에 이끌렸다. 우파와 중도파에게 생산제일주의에 경도되어 계급투쟁을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인식했다. 좌파의 생산제일주의는 자본가를 대체하는 문제, 노동 조직 내부의 문제에 위한 해결책으로 활용되었다.

하이 모더니즘 실행 과정에 방해 요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이 모더니즘형 국가가 권위주의적 면모를 드러낼 때마다 ‘사적 영역’이라는 요소는 개입할 수 없는 최후 보루처럼 작용했다. 또한 자유주의 정치 경제의 사적 부문이 발달하면서 국가 통제 모델로 포착할 수 없는 복잡한 요소들이 증가했다. 주민 대표 기구 역시 하이 모더니즘에 대항하는 주체로 성장했다.

04 하이 모더니즘 도시: 실험과 비평  어떤 건축가의 고귀한 열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 모더니즘의 야심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을 특정하자면 도시계획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제임스 스콧은 하이 모더니즘의 최전방에 있던 인물로 르코르뷔지에를 소개하고 있다. 그가 어떤 정치인이나 정책 입안자보다 먼저 소개되는 이유는 하이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열정이 정치 진영이나 국가의 위치와 무관하게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4장에서는 한 건축가의 열정이 얼마나 급진적인 형태로, 그리고 얼마나 일관적인 방식으로 도시 계획에 표출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시간 세미나에서 지적도를 살펴보며,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의도적으로 디테일을 무시하는지 살펴본 바 있다.pp. 83~88 르코르지뷔에는 이 단순화 작업을 실제 도시에 적용한 인물이었다.

르코르지뷔에의 도시 계획 철학은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대규모, 직선, 단절. 그의 손 끝에서 탄생한 도시의 모습은 하늘에서 바라 보아야만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또한 이 강박적인 건축가는 직선 디자인에 집착했으며, 도시의 역사적 맥락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책에서는 르코르지뷔에의 철학이 도입된 도시로 브라질리아와 찬디가르를 소개하고 있다. 누군가는 두 도시를 듣자 마자 브라질과 인도 특유의 정경을 완전히 제거한, 실패한 도시 계획 프로젝트라로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르코르지뷔에는 이런 평가를 오히려 찬사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도시를 계획하는 데에 있어 “결코 맥락을 드러내는 법이 없으며, 바로 그런 특색의 부재는 도시가 어디나 상관없이 들어서는 것을 가능하게p.171 만들었기 때문이다.

르코르지뷔에가 도시를 계획하는 데에 있어 직선만큼이나 집착한 것이 도시 구역의 기능 분화였다. 그는 행정, 교육, 거주 등의 요소가 혼재된 도시에 '기능별 재배치'를 감행했다. 슬럼 지역과 같은 ‘위험한’ 거주 공간은 도시의 외부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도시 계획 철학을 철저하게 따른 것이 브라질리아와 찬디가르이다. 르코르지뷔에와 그를 계승한 건축가들은 두 도시의 모습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을까? 그렇다면 그 지역에 살게 된 사람들도 자신의 지역이 발전한다는 느낌에 도취되었을까?

적어도 후자의 질문에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르코르지뷔에의 취향이 철저하게 반영된 브라질리아와 찬디가르의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생활을 위한 기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두 도시의 거주민들이 도시 형태의 합리성과 가독성에 대해 불편함을 느낀 것을 두고 오히려 르코르지뷔에는 만족스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하이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자도 존재했다. <국가처럼 보기>에서는 제인 제이콥스를 언급하고 있다. 제이콥스는 도시 계획 연구를 진행했던 사람이지만 르코르지뷔에와 달리 보행자, 거주민의 시각에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 제이콥스는 도시를 하늘에서 굽어보았던 기존 계획가들의 시선과 차이가 있었으며, 르코르지뷔에가 중시한 스펙타클이 실질적으로 거주에 불필요한 요소라는 점을 지적했다.

도시 계획의 시선이 눈높이로 하강하게 되면, 자연스레 거주민들의 생활 환경이 눈에 들어온다. 제이콥스는 도시 거주민들의 개별적인 관계가 도시가 제 기능을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제이콥스가 중요시한 미시사회학의 관점에서 도시의 치안은 이웃의 자발적인 감시를 통해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르코르지뷔에식 도시 기능 분화에도 반대했다. 제이콥스의 주장은 도시의 특정 지역에 다양한 기능이 혼재되어야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편의성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획일화된 요소로 구성된 지역은 경제 침체에도 더욱 취약할 수 있다.

제이콥스는 기존의 남성 도시 공학자들이 간과한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하지만 그녀가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에 없던 것을 발명한 것이 아니다. 제이콥스의 주장은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서 도시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을 위한p.223 도시 계획에 기초한다. (아마 르코르지뷔에는 자신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발명했다고 여겼을 것이다.) 르코르지뷔에는 상상력과 시적 영감을 활용해 도시를 계획 했노라고 평가했지만,p.180 그 결과물들은 하나같이 거주민들의 상상력이 틈입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하이 모더니즘의 열성 지지자들이 도시를 가독성 높은 텍스트로 바꿔가는 것에 지지를 표했다면, 제이콥스와 같은 인물들은 기존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중시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바로 인류사에서 지배 계층이 그토록 해체하고 싶어하던(=독해 가능한 텍스트로 바꾸고 했던) 지역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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