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깨주의의 탄생》 11부 진보진영에서도 짱깨주의는 유통된다 12부 한국 진보진영의 중국담론 저자는 이 책의 11장에서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짱깨주의를 다루고 나아가 12장에서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보이는 중국담론의 문제점을 다룬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짱깨주의가 우리나라 보수진영의 기획이라고 밝혔는데, 11장과 12장에서는 진보진영에서도 보수의 담론을 따라 짱깨주의가 팽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패권에 대한 인정과 자유, 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담론의 무분별한 수용 탓에 진보진영에서도 짱깨주의가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 저자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비판하는 중국 내의 소수민족 자치나 인권 문제, 민주주의 논란 등을 자세히 언급한다. 한겨레 같은 우리나라 진보언론조차 중국 관련 기사에서는 미국식 어젠다와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하여 보도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내부 상황과 사건의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기에 사건의 맥락을 알게 되면 중국에 대한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믿음도 저자에게서 보인다. 저자의 믿음과 노력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중국 내부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문제가 미국의 주장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논리로 짱깨주의를 타파하려는 의견은 더 피하기 힘든 덫으로 빠지게 만든다. 바꿔 말해 만약 중국 내부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짱깨주의 같은 혐오 현상도 정당한 근거를 가진 비난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책의 전반부에서 짱깨주의를 민족주의적 유사인종주의로 바라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종주의적 혐오가 뒤섞인 이런 문제에서는 한 국가의 정부 형태나 정치 상황의 문제를 국가 자체 혹은 그 국가에 소속된 국민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논리로 바라보는 일이 정당한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 정부나 정치 지도자가 어떤 큰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그 잘못이 중국인에 대한 유사인종주의적 혐오를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저자는 어느 순간 인종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모순적 태도 안에서 짱깨주의라는 인종주의의 한 갈래는 그 자체로 해소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중미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주도권 싸움 정도로 축소된다. 저자의 말대로 인권이 무분별하게 수용된 식민주의적 보편담론에 불과하다면, 저자가 공격하려는 짱깨주의를 포함하는 인종주의 역시 보편담론의 대상이 아닌 사상적 주도권 싸움의 결과가 되어버린다. 이런 논리를 따르면 어떤 국가의 국민이 별다른 잘못 없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인종주의적 태도인 짱깨주의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저자는 짱깨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이 미국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중국과 공동전선을 형성하여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한국의 진보진영이 반중하는 보수진영과 달리 적극적인 친중으로 돌아서서 짱깨주의와 싸우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434쪽)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진보진영의 중국담론 문제는 ‘중국도 문제다’라는 식의 양비론과 ‘지식의 지정학’을 한국이 아닌 중국에 놓고 말한다는 점이다. 이 두 문제를 통해 한국의 중국 전문가와 진보 지식인들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말만을 늘어놓는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이들에게 ‘지식의 지정학’은 한국이 아닌 중국이며, 이 ‘중국’은 현실의 중국의 아니라 일종의 초월적 시공간이다. 결국 저자가 그토록 공격하는 짱깨주의의 진짜 문제는 한국이 중국과 연합하여 미국에 대항하는 권력의 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었다. 이 거대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한국의 진보진영은 중국의 문제를 함부로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 인권이나 민주주의의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고, 그런 사소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심기를 거스르면 공동의 전선을 만들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보니,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를 줍는다고 혼내던 그 양반, 진보 정치인의 성 추문을 두둔하던 누군가. 저자는 소설가 김영하의 예를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를 이상적으로 바라보던 과거 운동권 세대를 꼬집는다. 중국을 함부로 오해하고 마음대로 실망해버린 이들 역시 또 다른 짱깨주의자들이라고.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오해를 푼다면서 이토록 중국에 대해 말하기 어렵게 만들어버린 저자는 과연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중국도 문제다’라는 프레임은 제국과 제국적 요소를 가진 국가의 모든 것과 싸움을 전개하면서 급진성과 실천성을 상실한다. 싸움의 대상은 불투명해지고, 전선이 추상화되고, 진영은 다변화된다.”(457쪽) 이 책의 저자가 꼽은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문제이다.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긋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내가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 가장 낙관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해일보다 중요한 일이 조개 줍기다. 휩쓸려 죽을 때 죽더라도 조개는 주워야지. 진보라면 중국과 전선을 형성하여 우리나라에 무어가 이익이고를 따지기 전에, 할 말을 다 하고 조개를 주워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