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베일 –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세계》 4장 아인슈타인의 베일 우리는 기호를 사용한 수식으로 물리학 이론을 접한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과학자들은 실재를 복잡한 용어들로 표현하며, 수학은 자연을 기술하는 편리하고 유용한 방법이다. 기호로 표현된 물리학의 공식은 매우 정확하며, 엄밀한 방식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 검증이 가능하다는 말은 물리학 공식이 새로운 수학적 방법을 통해 언제든 반박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리학에서 수학을 이용하는 이유는 세계와 실재에 대한 정확한 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 이론이 세계와 실재를 정확하게 기술하려 한다면, 물리학 실험은 자연에 던지는 질문과 같다. 때로는 실험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세계의 진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광속이 우주 어디서나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실험을 통해 광속이 자연상수임을 알게 되었지만, 광속의 정확한 값을 이론적으로 도출하지는 못한다. 물리학 이론과 실험이 맺는 관계는 수학적 공식에 대한 이론물리학자의 해석을 통해 더 분명해진다. 이론이 실험으로 검증되려면 각각의 수학 기호에 특정한 물리량이 정확히 대응함을 명료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안톤 차일링거는 이 작업을 1차 해석이라고 부른다. 1차 해석을 통해 이론과 실험의 관계가 명확해진다. 이 관계를 넘어서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험으로 검증한 이론의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공식으로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철학적으로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는 해석은 2차 해석이 되겠다. 안톤 차일링거는 양자물리학을 이 1차 해석과 2차 해석으로 자세히 다루어보고자 한다. 먼저 이중 슬릿 실험에서 나타났던 간섭무늬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데, 이는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와 보른의 확률함수로 설명이 가능하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두 부분 파동함수의 중첩과 겹침을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파동은 현실의 파동이 아니다. 특정한 위치에서 입자를 발견할 확률은 보른의 확률함수를 통해 계산한다. 전자의 자기모멘트를 매우 정확하게 측정한 사례 등을 보면 양자 이론은 실험적으로 자주 입증되며 반박된 사례도 없었다. 안톤 차일링거는 이제 양자 이론에 대한 2차 해석, 양자 이론의 심층적 의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은 양자 이론의 발전 초기에 많은 기여를 했으나, 양자 이론의 결론을 절망적으로 보고 피하려 하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불만은 양자물리학에서 우연이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말고도 많은 이들이 양자 이론의 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예를 들면 중첩의 원리는 현실에서 세계관의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시에 죽은’ 고양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여야만 한다. 이 문제의식에도 여러 갈래의 답변이 존재한다. 에버레트는 다수세계 해석으로 각각의 가능성이 모두 실현되었다고 설명한다. 중첩이라는 문제를 해소시키는 관점이다. 양자포텐셜을 동원한 봄의 해석은 중첩이라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봄에게 입자는 입자일 뿐 파동이 아니며, 단지 양자포텐셜을 계산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다수세계 해석과 마찬가지로 봄의 해석도 검증이 불가능하다. 또 봄의 해석은 얽힌 입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두 가지 해석 모두와 갈라져 중첩의 존재를 받아들이지만, 미시적 영역으로만 제한하여 희석시키는 시도들도 존재한다. 거시적 영역에서 중첩을 관찰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부류에도 두 갈래가 있다. 먼저 거시적 중첩이 원리나 이론상으로 모두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이론적으로 거시적 중첩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거시적 중첩이 관찰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여러 변형된 이론들이 있으며, 안톤 차일링거는 이 변형된 이론들이 자연과 일치할 가능성(진실로 인정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말한다. 물론 안톤 차일링거가 더 중점을 두고 다루려는 입장은 따로 있다. 바로 코펜하겐 해석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덴마크 물리학자 보어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러 학자 간 토론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코펜하겐 해석이라 불린다. 이 입장을 살펴보는 데도 어려움은 따른다. 보어 자신도 여러 차례 입장을 바꾸었고, 안톤 차일링거가 미리 양해를 구했듯이 그가 설명하는 코펜하겐 해석에는 안톤 차일링거의 해석이 묻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코펜하겐 해석을 마주할 때 우리가 부딪히는 가장 큰 난관은 세계에 대한 어떤 전제이다. 우리는 세계를 관찰할 때 관찰 여부와 무관하게 대상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양자가설에서는 관찰이 대상을 교란한다. 관찰에서도 양자가 이용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찰(교란) 이후 계의 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 없으며, 양자역학적 계가 측정 이전에도 어떤 속성을 가졌으리라고 전제할 수 없다. 여기에 관찰로 인해 두 존재자의 속성이 얽혀버렸다는 시각도 등장한다. 하이젠베르크의 사고실험에서는,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 한 개의 광자만을 사용하기로 한다. 이 한 개의 광자로도 전자는 충격을 받아 위치가 변하는데, 광자가 발생시키는 교란의 정도는 알 수 없다. 전자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현미경의 해상도를 높이고 빛의 파장을 짧게 할수록 교란은 커지고 전자의 운동량은 불분명해진다. 반대로 운동량의 변화를 더 안다면 사각이 작아지고 빛의 파장이 길어져 전자의 위치가 분명하지 않게 된다. 안톤 차일링거는 코펜하겐 해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없는 속성들을 말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전자에게 일정한 속도,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 전자가 가졌으리라고 예상했던 속도를 부여할 수 없다. 구체적인 실험으로 측정할 수 없는 속성을 계에 부여해선 안 된다. 광자의 양자 상태는 특정한 경로를 택하지 않으며, 모든 가능한 경로들의 겹침으로 나타난다. 또 양자역학적 계에서는 관찰 대상과 수단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두 양 모두를 정확하게 아는 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어는 ‘상보성’이라고 개념화했다. 상보성으로 연결된 두 양을 측정하려면 전혀 다른 두 장치가 필요하고, 이 두 장치는 (해상도 높은 현미경과 해상도 낮은 현미경처럼) 서로를 배제하며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보어는 자연에 관한 기술에서 이 상보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개념이라고 여겼다. 한계를 명확하게 하면서 세계를 인식하려 했던 보어의 이런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보어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정신의 구성물로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구성물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방해한다. 우리는 마흐- 첸더 간섭계에서 발견되는 중첩을 파동함수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 파동함수의 ‘파동’을 말 그대로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이런 파동이나 특정 경로를 거치는 입자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 단지 실제로 관찰되는 현상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면 된다.
보어는 우리가 정신의 구성물을 상상하거나 언급하지 않을 때, 오히려 무지의 상태에 있을 때 질적으로 새로운 두 가능성의 중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모두 입자의 경로를 모른다. 우리는 근본적인 미결정, 혹은 근본적이고 원리적인 무지의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일을 이야기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관찰이 없다면, 현상도 없다. 이것이 보어와 안톤 차일링거가 양자물리학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