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5장 우주의 커넥톰, 6장 1조 개의 세계를 가진 남자 한 드라마에서 뇌수술 도중 환자를 깨워 무언가를 묻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수술 도중 머리가 열린 상태로 환자를 마취에서 깨운 의사는 뇌의 각 부분을 건드려가며 질문을 한다. 환자의 대답을 통해서만 뇌의 각 영역이 담당하는 역할을 알아낼 수 있다. 신경외과 의사가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수술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뇌 안에 담긴 정보, 약 40억 권 분량의 책에 달한다는 그 정보를 되도록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정보를 뇌 안에 저장하기를 원하며, 그 정보가 사라지는 일을 두려워한다. 《코스모스》의 공동제작자인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은 세계가 계속해서 진보한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 뇌의 활동, 그러니까 방대한 양의 지식을 축적하는 활동을 찬양한다. 뇌는 발견과 창조의 통로이다. 우리 뇌의 생산물은 언제나 수집한 정보들의 단순한 합을 뛰어넘는다. 뇌의 활동은 뇌의 구성 물질이나 신경세포의 수 같은 것들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창발(創發, emergence)이라는 이름으로 이 설명할 수 없는 진화와 상호작용을 찬미할 뿐이다. 서구의 의학은 히포크라테스에서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다.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460년 경에 태어난 남자 혹은 의학자 집단이며, 처음으로 질병이 신의 노여움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부정했다. 의식이 깃든 장소를 뇌라고 처음 선언한 히포크라테스에게, 신성한 병은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병에 불과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주장은 19세기에 와서야 검증될 수 있었다. 1861년 프랑스에서 폴 브로카가 정신과 뇌의 연관성을 처음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뇌에서 언어와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있을지 모른다고 추측한 브로카는 언어능력을 잃은 환자를 부검하여 자신의 가설을 확인했다. 뇌의 활동이 밝혀지면서 꿈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안젤로 모소는, 머리뼈를 심하게 다쳐 두개골이 모두 회복되지 않은 한 소년의 잠든 뇌를 연구했다. 우리가 잠들었을 때도 뇌는 활동한다는 사실이 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1871년) 안젤로 모소는 노동자들의 ‘탈진’에 대해 연구하다가 혈류 측정 기계를 발명하고, 잠든 뇌를 연구하다가 신경 영상 기법을 발명하기도 했다. 한스 베르거처럼 텔레파시를 연구하다가 최초의 뇌전도 측정 장치를 만든 사람도 있었다.(1941년 자살) 인간의 신체인 뇌라는 물질이 의식으로 바뀌는 과정도 흥미롭다. 뇌가 없는 단세포생물에도 의식은 있다. 모든 생물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능력은 의식에서 기인한다. 미생물들의 군집이 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경세포가 진화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해 정보를 흐르게 하고 이 흐름 속에 의식은 각성된다. 단순하게 보이는 편형동물들도 신경세포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감각을 느끼며 학습을 한다. 우리 뇌는 이 진화의 과정들을 온전히 담고 있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에게 뇌는 곧 우주로 통하는 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덕에 그토록 원하던 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이 NASA의 보이저 1호와 2호에 부착할 메시지에 심장박동과 뇌파를 넣은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에게 뇌는 분명히 자랑거리였다. 작은 물질 단위들이 집단을 이루어 작동할 때 각각의 요소들을 단순히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무언가로 바뀌는 일, 창발이 그렇게 가능해졌다. 칼 세이건은 어린 시절인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성간여행을 통해 식민지를 건설하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을 가능하게 한 두 사람의 과학자가 있다. 칼 세이건은 두 사람의 제자였다. 제러드 피터 카이퍼는 분광기를 통해 접촉 쌍성계를 발견하고 명명했다. 접촉 쌍성계의 발견은 행성 자체를 다르게 보도록 만들었다. 카이퍼는 1949년 우리 태양계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고 선언하며, 모든 별의 절반 정도가 자신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라 말했다. 가능한 세계들은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천문학자들이 다른 행성의 조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을 자신의 일에 대한 침해로 여긴 화학자도 있었다. 해럴드 클레이턴 유리는 태초의 지구에 존재했던 화합물에서 생명의 기본단위인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했다. 1957년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처음 우주 궤도가 생겨났다. 미국은 이 사실에 경악하여 부랴부랴 우주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시작하여, 1958년 NASA(미국항공우주국)를 설립하였다. 지구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행성이 아닌, 하나의 행성일 뿐이었다. 카이퍼와 유리는 우주프로그램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으면서도 계속해서 싸웠다. 칼 세이건이 이들 사이를 오가며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이들은 달 탐사에 성공했으나, 최초의 외계 행성 관측을 본 이는 칼 세이건 뿐이었다. 항성계가 형성되려면 수백만 년이 걸리지만, 우리 은하에서는 한 달에 한 번은 그런 일이 벌어진다. 1조 개의 은하가 있다면, 1초에 1,000개의 새 항성계가 태어난다. 아주 작은 신경 전달 물질에서 진화한 뇌를 보유한 인간이 항성계의 탄생을 계산하고, 그 탄생을 묵상하며 경이로움을 느낀다.
앤 드루얀의 과학사는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간 이들의 이야기이다. 과학의 진보는 특정시대, 특정지역에서 살았던 특정 인물들의 이야기로만 증명된다. 인간의 뇌는 모두 같은 용도로 쓰이지도 않으며, 같은 역량을 발휘하지도 않는다. 무한에 가까울 만큼 가능해진 세계는 한편으로 우리를 왜소하게 만든다. 이 책의 중반에 이르러 묻게 된다. 왜 그토록 많은, ‘가능한 세계들’이 필요한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코스모스 탐사에 협력하는 모습을 상상했다던 칼 세이건에게 성간여행은 무엇이었을까? 지구 제패에 이은 우주 제패?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인간의 역량을 촉구하던 이 책 초반부의 질문이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