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H₂O인가?》 2장 전기분해: 혼란의 더미와 양극의 당김 2.2 굴하지 않은 전기화학 화학혁명은 라봐지에와 그 지지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라봐지에주의의 승리는 곧 합성주의의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의 저자 장하석은 강조한다. 화학의 합성주의는 새로운 시대와 잘 들어맞는 듯 보였지만, 전기의 발견과 함께 곧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당시 유행하던 전기분해 실험은 라봐지에 이론을 공고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오히려 분해 결과 나타난 산소와 수소의 거리 문제가 물이 화합물이라는 견해를 위협했다. 당시에는 전기분해라는 용어도 없었지만, 물에 대한 전기분해 실험은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라는 전제 아래서 이루어졌다. 분해의 결과 산소와 수소가 멀리 떨어져 나타나자, ‘분해’ 자체에 의심을 가진 이들이 나타났다. 리터 같은 이들은 ‘물이 원소’라고 주장했다. 물이 H₂O라고 배우며 자란 우리에게 리터의 주장은 터무니없이 들린다. 마치 지난 장에서 읽은 플로지스톤주의자들의 주장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저자는 리터가 ‘물은 원소다’라고 주장하던 당시로 돌아가 리터의 주장이 제거될 이유가 충분했으며, 리터에 반대한 이들의 주장은 과연 타당했는가를 짚어본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당시 통용되던 과학계의 사실이나 가설들을 어느 정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전기의 작용을 명확히 몰랐기에, 리터는 전기가 물질을 분해하는지 합성하는지부터가 궁금했다. 리터는 전기가 물질의 결합을 도우며, 물과 전기가 만나 화합물을 형성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물은 원소다’라는 가설에 이은 가설과 예측으로 충분히 가능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많은 이들에게 배척당했다. 배척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리터의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수정해야 할 화학 시스템이 너무 많았다는 점, 화학계 내부의 피로감이 컸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실제로 리터의 견해는 구체적인 반박 논증도 없이 너무 쉽고 빠르게 사라졌다. 나아가 저자는 리터의 견해보다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못한 과학계의 문제를 지적한다. 풍부한 상상력과 모험정신은 때로 사변과 신비주의로 이해된다. 주류과학은 물의 전기분해에 관한 리터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기보다, 과감한 상상력과 실험을 내세우는 과학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라봐지에와 대립하며 ‘물이 원소’라고 주장했던 플로지스톤도 리터와 손을 잡지 않았다. 리터의 견해뿐 아니라 과학 안에서 자연철학의 영역 전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시작되어 배척당하기에 이르렀다. 전기분해 결과 산소와 수소의 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가시적 운반 가설’과 ‘분자 사슬 가설’들은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반복되었지만, 모두 결정적인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물이 화합물이라는 견해의 정합성은 훼손되지 않았으며, 리터의 견해도 부활하지 못했다. 산소와 수소의 거리 문제는 결국 해결되는 대신 해소되었다. 이 해소과정에서 물 분자의 분해는 사라지고 ‘자유이온으로의 해리’가 새롭게 등장했다. 저자가 보기에 19세기 초반 주류 전기화학은 전제 차원에서 이미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전제에도 불구하고 전기화학은 이후 생산적으로 성장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전기화학 특유의 실천 시스템과 정합성 감각에서 찾는다. 패러데이는 초기 전기화학 분야에서 과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렸던 상황이 탐구를 부추겼던 원인이라고 꼽는데, 저자 역시 패러데이의 이런 의견에 동조한다. 패러데이는 ‘전기분해’라는 용어를 도입하며 전기화학 분야에 일종의 선입견을 심어준다. 일련의 과정에서 리터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그렇다고 주류의 전기화학이 도그마에만 의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기화학 분야 해석의 안정화는 정합적 발전을 통해 이루어졌고, 전기화학은 ‘물이 화합물’이라는 초기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전제를 수정하고 개선했다. 물론 이 정합성은 현재 사실로 확정된 내용과는 다르다. 저자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여러 번 강조하듯 과학의 역사에는 토머스 쿤이 설명하는 패러다임처럼 지배적 이론이 존재하기 어렵다. 지배적 이론이 반드시 정상과학 연구의 기반이 되지도 않는다. 토머스 쿤과 달리 저자는 과학자들 간 견해의 불일치와 생산적 토론에 주목한다. 쿤이 균열을 발견한 곳에서 장하석은 연속성을 본다. 견해의 불일치와 생산적 토론은 균열이 아닌 공통 기반 위에 존재한다.
저자는 19세기 전기화학 분야의 이론적 상황이 다원주의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난립한 주장들 속에서 과학자들 간 견해의 불일치와 생산적 토론은 다른 연구를 부추기는 자극이나 토대로 활용되었다. 저자는 아무리 우월한 시스템이라도 섣부른 합의를 강제한다면 과학의 발전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초기부터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채 시작된 전기화학의 역사가 생산적 발전으로 나아간 뜻밖의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