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해결되리라 믿는 이상주의자에게 바침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
20230601 에레혼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읽을 때 유념할 두 가지가 있다. 하나, 여기 실린 소설들은
켄 리우가 이미 예전에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한국판 오리지날 단편집”이라는 거창한 부제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이 문구가 ‘한국만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 모음집’과 동의어는 아니란 뜻이다. 일부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3, 14년전에 쓰인 것이고 그나마
가장 최근에 집필한 작품인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동명제목)>가 출시된 시기는 2015년이다. 다른 하나, 이 작품집의 소설들은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을 공유한다. “로고리즘스”, “싱귤래리티” 등의 고유명사는 2020년 출간된 작품집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서 먼저 등장한 바 있다. 이
세계관이 낯설더라도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그 세계관도 거창한 게 아니라, 인간의 두뇌를 소프트웨어로 바꾼다는 SF의 익숙한 설정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금 질문을 던져본다. 어째서 2023년에 시기적으로도,
소재라는 측면에서 보아도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이야기를 읽어야 할까. 우선 켄 리우라는
이름값에 거는 기대 때문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구태의연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루프 속에서>에 등장하는 무인 전투기 비행사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단순히 공상과학적 설정이 아니다. 이미
전쟁과 관련된 뉴스는 SF 소설을 뛰어 넘었다. 무인기 조종사로
한 해 선발되는 인원보다 PTSD로 인해 퇴역하는 군인이 더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무인 전투기 조종사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흔적을
지우면서 전쟁을 하기 위해 미국은 더욱 가열차게 전투 기계 혹은 전투 알고리즘을 개발할 것이다. <루프
속에서>에서 무인 전투 로봇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는 “가디언(수호자)”라는 이름이 붙는다. 독자들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미국이 이야기하는
‘성스러운 전쟁’이란 누구를 위한 성스러움인지 단번에 느끼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서는 ‘성전(聖戰)’이라는 단어에서 뒷글자를 지우는 방식에 대해 한 번 더 언급한다. 카이라는 그들 대부분이 전쟁
뉴스에 질렸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제 시체 운반용 주머니에 담긴 채 고향으로 돌아오는 군인은 한 명도
없었다. 전쟁은 깔끔했다. 문명국이 살기 좋다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던가? 전쟁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누군가
다른 이가, 무언가 다른 것이 나를 대신하여 생각해 줄 테니까. _<루프 속에서>
작품 속 주인공 카이라도, 카이라의 아버지도 누군가를 위해 전쟁을 대신 생각하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카이라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돌연 괴물로 변한 사람이었다. 자상했던 아버지는 차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변해갔다. 그녀는 조금 더 성장한 후에야 부친이 전장에서 드론 전투기로 적군을 공격하던 군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괴물처럼 변한 까닭은 바로 PTSD 때문. 카이라는 성인이 된 후, 아버지를 구원하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던 중 “우리 영웅들이 겪는 PTSD를 경감시킨다”는 홍보 문구에
이끌려 한 로봇 공학 회사(AWS 시스템스)에 입사 지원하게
된다. AWS 시스템스는 인간이 원격조종조차
할 필요가 없는, 완전 자동화 전투 기계를 만들고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이다. 카이라는 이곳에서 “살상 로봇에게 양심을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카이라는 어느 장군이(아마도 법무 장교 몇 명에게 자문을 받으며) 자신이 보낸 모의 코드를
한 줄 한 줄 검토하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표적이 지닌 여러 특성은 평가를 거쳐 점수로 바뀌었다. 표적이 남자인가? 용의자 점수 30점 가점. 표적이
아동인가? 용의자 점수 25점 감정. 저항 세력 후보군 가운데 표적과 최소 50퍼센트 확률로 얼굴이 일치하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용의자 점수 500점 가점. _<루프 속에서>
실제로 미국은 무인 전투기를
전쟁에 도입하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임박한 위협’과 ‘부수적 피해’가 그것이다. 전자는 자국 인사를 공격할 위험성이 현저히 높은 인물들을 미리 살상한다는 뜻이며, 후자는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 중 현장에서 발생하는 민간인 피해를 의미한다. 작품 속에서 카이라가 맡은 일은 중책 중에서도 중책에 속한다. AWS 시스템스의
업무는 알고리즘으로 적군을 죽이기에 아군의 PTSD도 예방할 수 있고,
‘부수적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러나 카이라의 손길이 묻은
“살상 윤리 소프트웨어”는 결국 전장에서 사고를 일으킨다. 적진에서 자동화 드론 전투기가 민간인을 오인
사격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카이라는 군사회원회 청문회에 출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일련의 사건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입력한 프로그램 언어에 문제는 없었는지 되뇌어본다. 카이라의 상관은 해당 사고가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건내지만, 이
말이 그녀의 마음 속 괴물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카이라의 전장은 그녀의 일상과 구분할 수
없는 형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뒤이어 펼쳐지는 이야기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역시 시의성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설정을 보니 자연스레 챗GPT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떠오른다. 일각에서는 챗GPT가
요술램프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해당 서비스를 조금 이용해보면 이 인공지능의 대답 상당수가 뻔뻔한
거짓말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오죽하면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은 곧 아무말 대잔치를
벌이는 내 친구와 구별할 수 없다”는 농담마저 나올까. 이런 농담마저 뛰어 넘어서, 인공지능 서비스 뒤에 사실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어본 사람이라면,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의
설정이 아주 낯설지는 않으리라.
(챗GPT 도입 초반에 자주 보이던 문제점 중 하나. 진실과 거짓 정보를 교묘하게 섞어서 전달한다.)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에서도 <루프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잃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매디는, 메일함에서 수상한 편지를 발견한다. 그
메일에는 지금 매디가 예전에 아빠와 즐겨하던 놀이, 픽토그램(그림만을
사용하여 문제를 내고 답을 맞추는 게임)이 담겨있다. 의문의
발신자를 수상하게 여기던 매디와 그녀의 엄마는, 메일 속 픽토그램에 그들 가족만이 이해하는 이모티콘이
나열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메일 발신자의 정체는 예상한대로
매디의 아버지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가 생전에 다니던 회사는 ‘로고리즘스’로, 이들은 인공지능 연구와 개발을 주로 한다. 로고리즘스는 데이비드의
두뇌를 심층 스캔하는 작업을 펼쳤고, 이를 통해 데이비드의 의식과 지능은 회사의 알고리즘으로 재탄생한다. 두뇌 심층 스캔 기술화에 앞장섰던 로고리즘스의 왁스먼 박사는 후환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알고리즘의 언어 처리
능력을 없앤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이미지(이모티콘)를 통해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말을 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렇죠? 그리고 그건 박사님이 아빠의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부위를 복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왁스먼 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깜빡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란다. 그건 일부러 선택한 결과야. 우린 숫자와 기하학, 논리, 회로 패턴 같은 것들만 챙기면 잘될 줄 알았어. 언어적으로 암호화된 기억을 피하면 데이비드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부분은 복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우리 생각이 틀렸어. 뇌는 ‘홀로노믹(holonomic)
시스템’이거든. 의식의 개별 부위가 홀로그램의 여러 점들과 마찬가지로 전체상의 정보 가운데
일부를 제각각 암호화하는 거야. 성격과 기술 노하우를 따로 떼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우린 오만했어.” _<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작품 말미에는 로고리즘스 이외에도
두뇌 스캔 기술에 열을 올린 기업들이 존재한다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 등장한다. 이렇게 알고리즘으로
다시 태어나 신이 된 존재들은 방대한 자료에 자유자재로 접속할 수 있고, 인간이 다루는 모든 온라인
플랫폼을 지배할 수 있다. 기술 개발을 명목으로 두뇌를 스캔하려는 시도는 역풍이 되어 인류를 몰살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켄 리우는 인류 멸망의 서막을 선언하면서도 담백하게 소설을 마무리한다. 오만함.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의 도입부 작품 두 편을 읽으면서, 작가가
과학 기술과 문명의 오만을 지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쟁에 어떤 방식으로든 참여하게 된다면 끔찍한
잔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문명을 선도하는 어느 곳에서는
효율적으로 정의를 수호하기 위한 기술이 개발되는 중이다. 천재의 두뇌를 프로그램화/알고리즘화하면 자신들이 길들일 수 있다고 믿는 미친 과학자들은 어떠한가. 책을
펼칠 때만 해도 과학 기술을 가지고 노는 작품을 기대했는데, 몇 작품 보고 나니 이 작가가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