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동아시아] "달이 내 마음을 말하죠[月亮代表我的心]"2023-06-1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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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내 마음을 말하죠[月亮代表我的心]

에레혼

 

공상과학 컨텐츠에서 과학과 거리가 먼 기술력으로 최첨단에 대항하는 부분을 좋아한다. 이런 모티프는 수많은 SF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로봇 군대와 대치하는 상황에서 구식 무기가 큰 힘을 발휘한다거나, 온 세상이 컴퓨터 바이러스에 뒤덮였을 때 플로피 디스크 따위가 구세주로 등장하는 이야기들. 유치하기 짝이 없고, 누군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전형이라고 말하리라. 하지만 예상 외의 장면으로 독자를 놀라게 할 방법으로 이만한 고전적 수법을 또 찾기란 쉽지 않다.

 

켄 리우의 작품에는 이런 ‘구식 소재’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만 옛것을 소환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테마나 스토리 전반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는 작가이다. 그가 몇 차례 활용했던 스팀펑크 세계관이나 본인의 발명품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실크펑크 소재 작품 《민들레 왕조 연대기》만을 가지고 이런 평가를 내리는 건 아니다. 켄 리우 월드에서 우리는 종종 전복된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속 <장거리 화물 비행선>에서도 ‘있을법한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탄소 배출 규제가 극을 향해 치달은 가까운 미래. 인류는 비용 절감을 위해 속도를 포기한다. 작품 속에서 태양광 에너지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물 비행선은 란저우에서 라스 베이거스까지 이동하기 위해 약 63시간을 필요로 한다. 2023년 현 시점에서, 란저우-라스 베이거스는 일반 항공기로 주파하면 20시간 안팎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이마저도 직항편이 없는 두 지역의 항공 교통 상황을 고려한 시간이다. 그런데 <장거리 화물 비행선>에서는 이 불편함이 개선되기는커녕 증대되는 미래가 그려지는 셈이다. 이런 작품에는 구식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는 인물이 한 명쯤 등장해야 제격이다.

 

“비행선 조종사는 흐르면 점점 자기 배를 닮아가요.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는 비행선을 타면 난 금세 잠들어 버릴걸요.” 아이크는 조종석을 둘러싼 계기판의 작은 손잡이와 다이얼, 토글스위치, 페달, 반원형 조절 스위치 따위를 가만히 바라봤다. 모두 묵직하고 단단한 아날로그 방식이었고, 그래서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키보드만 타닥타닥 두드리는 건 비행선 조종이라고 할 수도 없죠.


비행선 조종사 배리 아이크는 직업 만족도가 높은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긍정적 마인드는 그가 전도유망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기에 나타나는 태도일 수 있다. 하지만 비행선을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아날로그식 조종법을 설명하며, 그는 비행 전체 과정을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낀다. 모든 것을 예측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다 믿는 일. 첨단 기술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비행선 안에서 아이크는 그 누구보다 문명인의 태도를 가지고 직업에 임한다.

 

아이크의 아내 예링 역시 조종사 겸 승무원으로 근무한다. 작품에서 부부가 만나게 된 사건은 아이크의 시각에서, 지극히 문명인스러운 관점에서 서술된다.

 

아이크는 그곳(광시)에서 예링을 만났다. 중간에 결혼 중개 회사가 끼어 있었다. …… 중개 회사가 준비한 여성은 모두 열다섯 명이었다. 맞선 장소는 마을 학교 건물이었다. 아이크는 교실 앞쪽의 조그마한 의자에 앉아 칠판에 등을 기대고 있었고, 교실로 안내받은 여성들은 학생용 책상 앞에 앉았다. 마치 아이크가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이 손안에 두고 부릴 수 있기에 페이마오투이를 좋아하는 아이크는, 예링에게 비슷한 이유로 매력을 느낀다. 자신에게 수줍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기분을 맞춰주려는 예링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배우자 가족에게 지참금 명목으로 낸 5,000달러도, 예링을 비행선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준 스스로의 존재도, 아이크는 이 모든 조건이 예링에게 구원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

 

아이크와 교대하며 비행기를 조종하는 예링은, 남편의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게다가 돈을 벌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아이크와 대비적으로, 예링은 지나치게 동양적인 인물이다. 비행선의 안전한 운행을 위한 기와 풍수 이야기를 하는 예링. 그녀의 동양인 정체성은 달을 보며 등려군의 노래 “그저 오래오래 살면서”를 듣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그저 오래오래 살면서”의 가사는 예링이 가족에 대해 품고 있는 그리움을 대변한다. 아이크는 결혼을 통해 예링을 가족 틈바구니에서 구출했다고 생각하고, 또 예링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예링은 비행선 안에서 늙어가는 부모를 떠올리고, 그들이 멀리서나마 자신과 같은 달을 본다는 사실을 작은 위안으로 삼는다.

 

아이크 역시 비행선 안에 울리는 등려군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을까?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예링을 보며, 아내가 자신 덕분에 문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확신하는 아이크의 모습이 스쳐 지난다. 사실 예링은 비행선 안에서 미세한 불만 표출을 지속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비행선 안의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비행선의 기를 예링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바꾸는 것 말고도, 음악을 듣는 행위 역시 예링이 아이크에게 답답한 감정을 우회적으로 토로하는 수단이다.

 

<수조가두>를 지었던 시절에 소동파는 유배지에 묶인 몸이었다. 그리고 동파가 영원토록 같은 달을 바라보자고 말을 건낸 대상은, 작품에 딸린 메모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아우이다. 예링이 답답한 가족들 사이에서 불행했을 것이라 짐작하는 아이크는 당연히 소동파와 예링의 타향살이를 이해할 수 없겠지. 하긴, 소동파의 후대 사람들이 <수조가두>를 황제에 대한 충심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오독한 사례도 있으니 아이크의 오해가 아주 실망스럽거나 놀랍지도 않다.

 

이처럼 <장거리 화물 비행선>을 읽고 처음 든 느낌은 아이크에 대한 적개심과 예링에 대한 연민이었다. 두 감정이 교차하다가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예링이 가엽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곧장 반성했다. 공간의 소소한 부분을 바꾼 것이면서도, 그 작은 변화가 둘 사이를 온화하게 바꾼 것이라 믿는 예링의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구축한 인물 관계 설정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비행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그리고 벗어나기 어려운 남편과의 관계에서 예링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과연 소심한 저항 말고는 없는 것인지. 그녀의 행동이 너무 사소해 저항이라고 볼 수조차 없다면, 예링이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저 내가 보는 달과 고향 땅에서 보이는 달이 같다고 믿는 일 뿐인지, 이야기를 읽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조가두水調歌頭―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

소동파蘇東坡

<병진년 추석, 새벽까지 즐겁게 술을 마시고 흠뻑 취하다.
이 글을 짓고서 동생 자유를 그리워하다.>

丙辰中秋, 歡飮達旦, 大醉, 作此篇, 兼懷子由

 

밝은 달 언제부터 있었나, 술잔 들고 하늘에 묻네.
하늘 궁궐에서도 모를테지, 지금이 무슨 해인지.
바람타고 돌아가고 싶어도 옥으로 된 궁궐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추울까 두렵구나.
일어나서 춤추며 달그림자와 노니는데,
이 모습이 어디 인간 세상 같더냐.

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
不知天上宮闕, 今夕是何年
我慾乘風歸去, 又恐瓊樓玉宇, 高處不勝寒
起舞弄淸影, 何似在人間

 

붉은 누각을 돌아 비단 창가에 내려, 불면하는 이 비추는 달.
억하심정 없을텐데, 어찌 헤어져 있을 때 가득 차 밝은 건지.
사람에게 슬픔과 기쁨, 헤어짐과 만남이 있다면
달에는 흐렸다 개고, 찼다가 기우는 법이 있으니
이는 예로부터 온전함의 어려움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오로지 바라는 바는 오랫동안 살아 천리 밖에서도 고운 달 같이 보았으면.

轉朱閣, 低綺戶, 照無眠
不應有恨, 何事長向別時圓
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
但願人長久, 千里共嬋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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