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없으면 만들어 먹는 민족 어떤데 에레혼 해외에서 살게 되며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쌀밥도, 김치에도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며 한국인의 채취를 지우리라는, 이상한 다짐이었다. 본성을 거스르는 생활을 영위한 결과는 우습게도, 내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된
일과를 앞두고 있을 때에는 밥을 먹어야 마음이 편했다. 면이나 국수로 연달아 밥을 먹는 때에는 ‘마지막으로
쌀밥을 먹은 끼니’를 무의식적으로 되뇌었다. ‘밥심 DNA’를
부정해보려는 시도가 나를 밥에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만 셈이다. 하긴 쌀밥에서 내가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여긴
건 순진한 발상이었다. 한국의 식사 문화는 밥을 기본으로 깔고 간다.
내가 급식을 먹을 때만 해도 스파게티, 비빔국수, 떡볶이는
쌀밥의 반찬으로 식판 위에 올라왔다. 밥이라는 단어가 한국인의 심층 사유에 얼마나 깊게 자리잡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살펴보자. 《살인의 추억》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제 한국 영화의 고전처럼 소환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도 ‘밥’이 등장한다. 심지어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이 대사는 극작가가 대본에 써넣은 게 아니라고 한다. 대본을 집필한 봉준호는 이 부분의 대사를 비워
놓고, 해당 장면의 대사를 읊어야 하는 배우에게 즉흥 연기를 부탁했다고 한다. 유력한 용의자를 비꼬는 듯한 말이면서도 왠지 상대방을 동정하는 의미까지 담긴 문장. 봉준호는 의미 심장한 한 마디를 뱉어 달라고 배우에게 부탁했고 송강호는 이 대사를 며칠간 고민했다고 한다. 장고 끝에 나온 한마디는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말이었다. 《쌀 재난 국가》에서는 이렇게 밥이 무의식의
근간을 차지하는 상황을 두고 쌀에 갇히고 중독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중국인과 동아시아인의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쌀 중독’, ‘쌀의 함정’과 같은 말보다
한국인의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도 드물 것이다. 밥이 보약이라고 믿었던 한국인들은 산지가 70퍼센트인 땅에서 밭농사가 아닌 벼농사를 제1의 농업 방식으로 채택했다. 관개 시설에 의존하는 벼농사의 특성상, 한국인 상당수는 여름에 하늘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국은 중국 강남지방이나 동남아 지역과 달리 1년 내내 벼를 키울 수 있는 기온대도 아니며, 특정 시기에 강수량이
집중된 한국의 기후 여건은 벼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벼농사 망치기 적합한 기후 특성으로 인해 한반도에 들어선 역대 왕조 및 통치자는 물난리/가뭄에
대비하는 규휼 국가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 치수治水는 벼농사 문명의 지배층이라면 예외없이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일이었다. 물을 잘 다스린 임금은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들은 후대인들에게 박한 평가를 받았다. “동아시아의 엘리트(를 꿈꾸는 자)들은 재난을 수습할 자신이 없으면 국가권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재난으로부터 살아남은 자들이, 재난 구제에 실패한 엘리트들을 처참한 재난의 현장으로 끌어내려
그 죗값(구제 실패)을 돌려받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논의는 2장에서 벼농사 체제에 대한 분석으로 접어든다. 인상적인 부분은 저자가
한국에서 금기시되는 발언을 꺼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인의 ‘정’, 상부상조 전통의 또다른 일면을 지적한다. 《쌀 재난 국가》 2장의 핵심을 관통하는, 동시에 상식을 깨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두레, 품앗이와 같은 협력 및 협업은 순기능만 존재하는가?” 벼농사는 밀농사에 비해 더 큰 규모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고차원의 업무 분담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협력 속에서는 개인이 끊을 수 없는 연대가 생기며, 이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에는 반드시 긍정적인 감정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노동의 결과값이 다를 때 발생하는 시기심,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에 대한 질책은 한데 어우러져 일할 때 극대화되는 감정이다. 이런
부정적 감정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방편으로, 벼농사 공동 노동 조직은 누가 어느 토양에서 일하든
비슷한 결과물을 산출할 수 있도록 하는 ‘표준화’와 ‘평준화’를 고안하기 위해 애썼다. 벼농사의 협업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의 조직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2장에서 핵심적으로 언급하고자 하는 부분도 벼농사 체제 원리가 ‘현대로 이식’되었다는 데에 있다. 벼농사 시스템의 평준화와 표준화는 현대의 기업 문화에 직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개인간의 숙련도가 평준화될 것이라는 가정과 개인들의 숙련도가 동일한 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정이 결합하면, 같은 연차의 인력에게 동일한 보상을 주는 것이 가능해진다(정당화된다). …… 연공제는 연차를 공유하는 노동자들 가운에 연대 의식을 고양 시켰고, 생산성이
집합적으로 향상되는 데 디딤돌이 되었다. ‘왜 같이 일 해놓고 나이 많다고 더 가져가’라는 불만은, ‘너도 기다리면 나처럼 보상받아’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덮였다.” “표준 작업의 숙지와 숙련화 과정은 수십, 수백 번의 반복 작업 속에서 이해하고
터득하여 결국에는 몸에 밸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사수와 함께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배운 끝에, ‘일할 줄 아는’ 직원 하나가 만들어진다. …… 본인이 맡은 업무에서 펑크가 발생하지 않고 혼자서 양식에 맞게 보고서를 쓸 수 있게 되면, 그로써 표준화 작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아시아가 그렇게 일찍부터 구축하고
있었다고? 집단화되고 정돈되지 못한 대상처럼 묘사되어 온 아시아의 모습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는 《쌀
재난 국가》의 주장은, 서구의 이론틀로 바라본 아시아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시아야 말로 저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관료제 시스템을 몇 천년 전부터 고심해 온 문명인 셈. 아시아의 공동노동 문화를 두고 《쌀 재난 국가》의 저자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바라보기 위한 우리만의 시각을 발견할 때마다 통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 참, 글을
마치기 전에 ‘떡밥 회수’는 해야겠다. 앞서 말한 <살인의
추억> 속 “밥은 먹고 다니냐?” 대사는 이후에 영어자막
처리하기 어려운 구절로 유명하다. 직역해버리면 한국어 특유의 ‘밥 먹었냐’ 인사 치레에 대한 뉘앙스를
담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가장 널리 알려진 번역이 “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냐?(Do you get up early morning too?)”인데, 이
또한 말맛이 잘 살지 않는다. 역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건, 밥이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