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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중국문학] 홍루몽 81~90회 :: 무엇에 씌일 것인가2019-12-0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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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 5권 81화~90화_2019.1202_아라차

무엇에 씌일 것인가


임대옥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갓집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척집에 얹혀 사는 본인의 가련하고 처량한 팔자를 한탄하는 설정값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은 이렇게 생을 마감할 것이 예정되었기에 대옥의 이야기가 읊어질 때마다 안타까움 반 어이없음 반이다. 시서에 능하고 칠현금까지 탈 줄 하는 재주많은 아가씨께서 어찌하여 신세 한탄으로 아까운 청춘을 탕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뭔가 모자란 듯 애매모호하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가보옥과의 인연만 붙들고, 그의 정혼 얘기에 넋을 놓고 곡기를 끊고 죽을 것을 예비하는 모습에서는 그저 할 말이 없다. 


유독 이번 회차에서는 귀신의 등장이 많다. 형체는 없이 소리와 분위기로만 등장하는 귀신에 인물들이 놀라 뒤로 자빠지고 소리를 치고 도망을 친다. 승려 묘옥은 귀신에 씌여 몸에 병이 나고 헛것을 보고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기도 한다. 망해가는 대관원에 서서히 생(生)이 아닌 사(死)의 표상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리라. 이상한 것은 사람이 죽어도 금방 귀신이 돼서 나타나고, 죽음이 얼마든지 홀대받는 묘사들이 많았던 지라 굳이 귀신이 무서운 존재인가 싶다가도 생의 원통함을 드러내는 기제로 귀신만한 것이 없는 것도 이해는 가는 바이다.


보통 뭔가에 씌었다고 할 때, 많이 나오는 앞 단어는 “콩깍지”와 “귀신(마귀)”이다. 뭔가에 씌어 사리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일컬을 때 쓰는 이 표현. 콩깍지일 때는 그나마 귀엽지만 귀신일 때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러나 과연 씌이는 것이 콩깍지와 귀신 뿐일까. 모처럼 집으로 돌아와 보옥의 공부를 단도리하는 가정은 공명과 출세에 씌어 있고, 술자리에서 애꿎은 사람을 술잔으로 내리쳐 죽인 설반은 허세와 주색에 씌어 있다. 가모와 왕부인 등은 허례와 체면에 바쁘고, 희봉은 이재와 권세에 휘둘리고 있다. 조악한 악역으로 등장한 금계와 보섬 마저 무지와 권모술수에 씐 인물들이다. 


하는 일 없이 바쁜 무사망 보옥은 무엇에 씌었는가. 누이들의 아름다움에 씌고, 누이들과의 즐거운 놀이에 씌고, 풍류에 씌고, 자신의 운명에 씌었다. 보옥이 바라보는 대관원과 누이들의 삶과 자신의 삶이 이 소설이 묘사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것이 특이하든, 시대의 반영이든 보옥의 콩깍지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소설의 색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무엇에 씌었는지에 따라 그가 어떤 캐릭터인지 결정된다. 못내 안타까운 캐릭터로 생을 마감할 대옥이 씌인 것은 아무래도 콩깍지보다는 비애인 것 같다. 그 비애마저도 자신이 스스로 지어올린 자기비하의 탑에 불과하지만 그로서는 이미 거대해진 탑을 무너뜨릴 수가 없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 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탄탄하게 쌓아올린 비애의 탑은 결국 자신을 죽이고 말 것이다. 무엇에 씌어 있고, 무엇에 씌일 것인가. 본인에게 씐 것은 귀신도 모른다. 제 정신이라 모두 자부하고 살겠지만 우리는 얼마간 뭔가에 씐 채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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