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 R&D] 이렇게 역동적인 블랙홀의 황금기2022-03-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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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블랙홀과 시간여행 7, 8장 발제.hwp (82.5KB)

블랙홀과 시간여행7 황금시대 & 8 탐색

 

있어서는 안 될 사악한 존재 취급을 받던 블랙홀 연구에도 황금기가 찾아왔다. 1964년부터 대략 1975년까지 황금기를 지나면서 블랙홀은 사물을 집어삼키는 구멍이 아니라 역동적인 물체로 취급받게 된다. 이 책의 서론에는 킵 손이 상상한, 블랙홀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사례가 언급되었다. 킵 손의 상상도 이 블랙홀 연구의 황금기에 힘입어 가능해졌다. 블랙홀은 회전하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에너지를 저장한다. 또 블랙홀의 맥동은 중력파를 만들어낸다.

 

블랙홀 황금기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휠러와 젤도비치, 시아마이다. 킵 손의 스승이기도 한 휠러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나누어주고 답은 스스로 찾도록 했다. 킵 손이 받은 첫 문제는 일반상대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여 블랙홀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킵 손은 원통형 자기장이 내폭파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휠러의 예측이 틀렸다고 보았다. 이 오류는 블랙홀 형태와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통찰로 나아갔고, 킵 손도 휠러에게서 점차 독립하였다.

 

1972년 킵 손은 후프 추측을 발표했다. 구형의 물체가 내폭파하거나 눌린다면, 그 물체는 임계원둘레 안쪽으로 수축할 때 블랙홀이 된다. 후프 추측에서 킵 손은 구가 아닌 물체를 상상한다. 어떤 물체가 구와는 다른 방식으로 압축될 때, 그 물체의 모든 둘레가 임계원둘레보다 작으면 블랙홀이 된다고 킵 손은 추측한다. 원통형 자기장선이 구형의 별과 다른 변화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물론 킵 손의 후프 추측은 아직 추측에 머물러 있다.

 

킵 손의 동료이자 소련 과학자이며 상대성이론 전문가인 노비코프를 발탁한 이는 젤도비치였다. 무기 설계가 거의 주업이었던 젤도비치는 복잡하고 오랜 숙련이 필요한 이론 분야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맡기며, 현장을 지휘했다. 젤도비치는 직관이 뛰어난 만큼 고집도 셌다. 블랙홀 황금기의 세 번째 중요 인물인 시아마는 케임브리지에서 강의했지만, 교수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유능한 학생들을 블랙홀 연구로 이끌었다.

 

블랙홀 황금기에는 블랙홀이 매끈한 구 형태를 지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모증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털이 없다는 말은 블랙홀이 되기 이전 상태의 특징이 블랙홀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젤도비치와 노비코프의 연구가 촉발한 파장은 이스라엘과 프라이스의 연구와 발견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구형이 아닌 별의 내폭파가 블랙홀을 만들지 않거나, 정확하게 구형의 블랙홀을 만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스라엘이 도달한 결론에는 내폭파하는 물체가 전하도 가지지 않고, 회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이 결론은 다시 과학자들의 질문을 끌어냈다. 만약 내폭파하는 별이 회전하고 전하도 띠고 있으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은 돌기(작은 산)를 가진 구 형태를 상상했다. 프라이스는 이 문제를 복사로 풀어냈다. 돌기는 중력 복사를 통해 중력파로 전환되고, 이 복사가 돌기를 제거하며, 블랙홀은 털이 없이 매끈해진다.

 

프라이스의 정리는 블랙홀이 자기장선을 떼어내는 방법도 알려준다. 자성을 띤 별이 내폭파하여 자성을 띤 블랙홀이 만들어지면, 전류는 별 내부에 갇히고 자기장은 별의 전류를 감지하지 못한다. 이제 자기장은 별이 아닌 블랙홀 지평면에만 도달하게 되면서, 전자기 복사(전기력과 자기력의 잔물결)로 변하여 날아가 버린다. 그 후 블랙홀은 자성 없이 남는다. 이 현상은 복사로 바뀌는 물리량과 바뀌지 않는 물리량 연구로 연결된다.

 

복사로 바뀌지 않는 물리량은 블랙홀의 질량과 회전, 전하의 영향이다. 일단 별이 내폭파하여 블랙홀이 되고 나면, 블랙홀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이 세 가지 이외에 다른 특징을 알 수 없다. 질량, 회전, 전하가 블랙홀에 남는 유일한 털이다. 블랙홀을 이해하기 위해 단순한 이론적 모형을 만들 필요도 없을 만큼 블랙홀은 별의 모든 특징을 무력화한다. 블랙홀의 극단적인 단순함은 과학자들을 확고하게 매료시키거나, 철저하게 무관심하게 만드는 점이었다.

 

블랙홀은 단순한 동시에 역동적인 물체이기도 했다. 황금기에 과학자들은 블랙홀의 회전과 맥동을 공식화했다. 블랙홀의 회전과 소용돌이 연구는 블랙홀을 각각 내부와 외부에서 관찰하는 시점의 분리와 함께 진전되었다. 블랙홀 내부에서 입자는 매우 빠르게 회전하지만, 외부에서 지평면의 입자를 볼 때는 중력에 따른 시간 지연으로 입자가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듯 보인다. 블랙홀의 회전으로 인한 원심력으로 입자들은 지평면 가까이 모인다.

 

입자들을 튕겨내는 원심력이 블랙홀을 파괴하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도 제기되었다. 이 질문을 통해 블랙홀은 자신이 파괴되지 않을 만큼만 회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블랙홀은 빠르게 회전하면서 적도가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상태가 될 뿐이다. 로저 펜로즈는 여기서 회전하는 블랙홀이 회전에너지를 저장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에너지는 지평면 밖에 저장되므로, 서론에서 킵 손이 말했듯 어떤 사물에 동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이 가능하다.

 

블랙홀의 맥동은 발견된 후에도 오랫동안 부정되었다. 과학자들은 블랙홀 주변에 생기는 시공간 곡률의 잔물결을 중력 복사라고만 이해했는데, 이는 블랙홀을 외부의 시점으로만 보았기 때문이었다. 관점을 블랙홀 내부로 옮겨가 보면, 블랙홀은 매우 정교하게 규칙적으로 진동했다. 블랙홀의 맥동은 안정적으로 블랙홀에서 회전에너지를 뽑아낸다. 이렇게 뽑아낸 에너지는 중력파로 방출되면서 블랙홀의 맥동이 더 커지지 않도록 안정되게 만든다.

 

초기에 블랙홀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천문학과는 거리가 멀었고, 천문학자들은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 그나마 블랙홀을 실제로 탐색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는 폭탄 제조로 바쁜 젤도비치 정도였다. 탐색할 마음을 먹었다고 금방 탐색이 가능하지도 않았다. 마땅한 탐색 기술도 없었고, 블랙홀이 태양계 근처에 존재할 확률 자체가 희박했다. 블랙홀 탐색은 블랙홀 이론 연구와는 또 다른 영역이어서 황금기가 다 지나간 이후에나 조금씩 가능해졌다.

 

블랙홀을 관측하려면 정확하게 지구와 다른 별 사이에 블랙홀이 놓이거나, 블랙홀이 어떤 별과 함께 움직여야 했다. 두 별이 중력으로 묶여 움직이지만, 한 별의 질량이 매우 크면서 암흑처럼 보일 때 그 별은 블랙홀일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쌍성계 몇 개를 블랙홀 후보로 오래 관찰했지만, 아직은 모두 블랙홀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블랙홀이 없다고 믿던 과학자의 후예들이 블랙홀을 찾느라 애쓰는 상황이 어쩌면 황금기의 진짜 유산이랄 수 있겠다.

 

킵 손은 블랙홀 탐색 작업이 진전한 데 여러 집단이 공헌했다고 적는다. 아인슈타인을 따른 이론물리학자들인 상대론자들, 상대론자들과는 다른 지식으로 우주를 연구한 천체물리학자들, X선 검출기 등을 설계하고 탐색을 실행했던 실험물리학자들, 로켓과 우주선을 쏘아 올린 기술자들과 책임자들, 엄청난 기금을 제공한 미국의 납세자들까지. 하다못해 전쟁 무기 개발과정까지 포함해서 따지고 보면 모든 게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진짜 블랙홀의 황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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