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과 장부》 제3장 경제 세계화 초기의 군사 혁명 세계화는 곧 ‘경제 세계화’였고 ‘무기 세계화’였다. 우리는 오래도록 이 세계화의 흐름 안에서 살아왔다. 이 책 2장에서는 국제통화기금이 1997년 발행한 《세계 경제 전망》이라는 문서를 인용하여 세계화를 설명한다. “세계화는 국가를 넘나드는 상품, 서비스, 국제 자본 흐름의 규모가 커지고 기술이 광범위하고 신속하게 전파되면서 세계 각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이 문서가 발행된 1997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일본과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로도 퍼져나갔다. 경제 세계화가 통일된 하나의 시장을 만든다면, 그 시장은 언제든 경제 주체들을 옭아매는 그물처럼 작용하게 된다. 현대의 우리는 어떤 국가도 이 시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경제 세계화’는 군사적으로도 통일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글로벌 히스토리’라는 관점을 내세우면서 서유럽 중심의 세계화 앞에서 중국이라는 커다란 세계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서술한다. 16~17세기를 거치면서 중국은 서유럽에 군사적 측면에서 우위를 빼앗기고 종속되면서 근대를 맞고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과거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전반적으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되지 않았으며, 경제적으로도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또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듯이 서유럽이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 이유도 유구한 문명의 자신감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 이전 서유럽은 이슬람 제국이나 아시아에 비해 여러 면에서 낙후되었고, 이들은 서유럽과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육로나 해상을 이용하는 교역이 제한된 시점에 서유럽은 새로운 교역 대상을 찾는 항해에 온 힘을 쏟는다. 그 결과 서유럽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세계와 만나게 된다. 대항해시대를 전후하여 막강해진 서유럽의 항해술은 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도발과 침투로도 나타난다. 중국에서 건너간 화약과 무기는 몽골과 이슬람 세계를 거쳐 서유럽에 전해졌고, 다시 더욱 강력해진 형태가 되어 아시아로 돌아온다. 더욱 파괴력이 커진 살상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 전역에서 화약무기가 개발되고, 군사기술이 정교해진다. 서유럽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서유럽을 모방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싸움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가능하면 패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 패자는 생명이나 자유, 혹은 그밖에 무언가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런 빼앗김만이 패자의 비극일까? 어쩌면 패자의 진짜 비극은 애초에 자신이 왜 싸우게 되었는지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억지로 싸움판에 끌려 나왔다면 패자는 패배의 원인을 곱씹느라 자신이 싸움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3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현재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은 칼을 쥔 사람이 아니라 무기”라는 엥겔스의 말을 인용하며 비판한다. 군사 기술의 변화 없이 선진 무기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주장에서 드러나는 점은 어떻게든 전투의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집념뿐이다. 애초에 왜 싸우는지, 싸우지 않을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우리의 사고를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물론자 엥겔스의 말을 역시 유물론자이자 그의 동료였던 마르크스의 주장에 비춰 이야기해 보고 싶다. “자본가는 자본의 담지자일 뿐”이라던. 자본을 손에 넣은 자본가는 그가 인색하던, 자비롭던, 사악하던, 선량하던 관계 없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자본을 축적하는 일에 몰두한다. 자본가가 죽거나 자본을 타인에 빼앗겨 더 이상 자본가가 아니게 될 때까지 그 일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착취와 축적은 자본가의 습성이 아니라 자본의 습성이다. 무기와 병사(혹은 군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생명을 파괴하는 일은 무기의 습성이지 병사의 습성이 아니다. 무기를 손에 쥔 이상 병사는 무기의 습성대로 파괴와 살상을 자행하게 된다. ‘폭력의 담지자가 된 병사’는 정교하고 발전된 무기를 통해 더욱 강한 파괴자로 거듭나게 된다. 자본가가 자본을 찬양하듯 병사는 무기를 찬양한다. 왜 자본을 축적하느냐는 질문이 어리석게 들리듯, 왜 죽이냐는 질문도 어리석게 들리는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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