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 이야기이다. 이 사랑은 아름답지만 슬프다. 모든 사랑이 대체로 그렇다. 그 보편성을 극적인 아이러니를 통해 잘 보여주는 것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사랑뿐 아니라 삶의 문제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연극과 뮤지컬, 영화 등을 통해 매번 새롭게 질문하고 해석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은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낮과 밤, 선과 악, 고통과 희열, 성공과 몰락, 열정과 냉소, 추함과 아름다움 등이 뒤섞이고 뭉개져 엉켜있다.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러한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원수였던 집안이 화해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처참한 죽음으로 변하며 강철 같은 사랑의 약속은 깃털 같은 오해로 산산이 부서진다. 이것이 시간의 순서대로 결과적으로 발생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랑’이라는 메타포 속에서 반대극에 놓인 상황과 의미들은 이미 처음부터 들끓고 있었다. 로미오 ; 사람도 약초 같아. 언제나 선과 악이 왕처럼 대적하여 진을 치고 마주 선다. 악이 승할 때는 죽음의 버러지가 당장에 그 풀을 먹어 치운다. (2막 1장) 줄리엣 : 아름다운 폭력배, 천사 같은 악마, 비둘기 깃의 까마귀, 늑대처럼 삼키는 양, 거룩한 겉모습의 추악한 실체, 유모가 하는 말과 정반대가 되는 말, 저주받을 성자님과 존경받을 악당 놈, 자연아, 지옥에서 네 할 일이 무엇이냐? 그토록 아름다운 살결의 천국 속에 마귀의 영혼을 숨기고 있었구나. (3막 2장) 여기서 ‘자연’을 인간의 본성 또는 세계의 본질이라고 본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과 삶의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랑이든, 삶이든 모순과 비극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안고 우리는 통곡하고만 있어야 할까? 우리는 사랑과 삶의 중력을 이겨낼 수는 없는 것일까? 속도를 지키는 일. 적절한 시간 동안 기다리고 절제하는 것. 일말의 힌트가 로렌스 수사의 말을 통해 전해진다. 로렌스 수사 : 현명하고 차분하게. 빨리 뛰면 넘어진다. 사랑을 절제하라. 오랜 사랑은 절제한다. 너무나 느린 것이 너무나 빨리 온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금기시했던 명령을 어긴다. 성급하고 섣부른 호기심 때문이었다. 인간이란 본성적으로 금기를 깨뜨리는 존재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하나님의 실수는 인간을 빨리 뛰는 존재로, 의심하는 존재로 만들 것일지도 모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은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비극이다. 우리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릴 때, 사랑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인물로 떠올리는 것은 아담과 이브의 혼이, 우리에게로 내려져 온 하나님의 저주가 깃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금단의 사과를 맛보겠다고 선을 넘는 아담과 이브의 성급함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금기를 성급함과 상통한다. 그들은 과속패달을 너무 세게 밟았다. 로렌스 수사 : 그토록 사랑하던 로절린 아가씨를 그토록 빨리 버려? 젊은이의 사랑은 마음에 있지 않고 눈에 있단 말이구나.(2막 2장) 줄리엣 ; 그래도 하고 싶으면 멋진 네 몸에 걸으렴. 그게 내가 숭배하는 우상이거든. 그러면 믿을거야. (2막 1장)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리석은 것일까?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서둘러 판단하고 불완전한 눈을 맹신했으며 뻔한 참극을 불러올 것을 알면서도 금기를 깨뜨렸다. 마치 언제 터져 사라질지 모른 채 하늘로 높이 솟아 터지는 불꽃놀이의 불꽃처럼. 아름답고 찬란하며 활홀한 그 불꽃처럼. 순간 사라져버려 눈물이 날 정도로 허무하고 슬픈, 그 불꽃처럼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책장을 덮자 한바탕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수많은 불꽃들 중 먼 과거의 한순간, 하늘로 날아 올라갔던 익숙한 불꽃 하나를 얼핏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까마득한 하늘가 어딘가에서 몸이 부서져 내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