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과 시간여행》 13 블랙홀의 안쪽 & 14 웜홀과 타임머신 블랙홀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이 책의 마지막은 관측도, 상상도 불가능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유쾌하고 친절하게 우리를 이끌었던 과학자 킵 손은 이런 상상이 현실의 연구에 끼친 영향을 흥분이 가시지 않는 어조로 설명한다. 가설로 시작하여 증명으로 끝나는 과학의 세계에도 상상력은 중요하다는 사실을 킵 손은 몸소 보여준다. 애초에 관측이나 기록이 불가능한 블랙홀이라면, 연구 방식이 대담해서 나쁠 일이 뭔가. 별이 내폭파한 결과물인 블랙홀은 우리 우주의 최종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주의 대파국 이후에는 블랙홀만 남는다. 블랙홀 내부를 상상하는 일은 우주의 미래를 상상하는 일과도 같다. 지평면을 통과해 블랙홀 안쪽으로 들어간 모든 물체는 특이점에 도달하면서 파괴된다. 특이점에서 조석중력은 무한해지고, 시공간은 사라진다. 지평면이 작은 섭동에 안정적이므로, 섭동이 내폭파를 멈추게 할 것이라는 예측은 틀렸다고 판명되었다. 1962년 킵 손은 휠러의 연구 그룹에서 내폭파하는 우주가 재폭발할 가능성과 재폭발의 방향에 관심을 가졌다. 별이 우주의 다른 지역 혹은 아예 다른 우주로 폭발해버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휠러는 블랙홀의 특이점을 일반상대론과 양자역학이 결합되는 장소로 보고 계속 관심을 쏟던 참이었다. 대체로 재폭발에 회의적인 분위기를 반전시킨 이는, 새로운 수학 도구로 위상수학을 내세운 영국의 펜로즈였다. 수학에 정통한 물리학자 펜로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이점을 정리했다. 펜로즈는 모든 블랙홀의 중심에 특이점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970년 호킹과 펜로즈는 우리 우주의 빅뱅 대폭발 순간 시공간 특이점이 생성되었으며, 우주 붕괴의 순간에도 특이점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펜로즈와 호킹의 연구는 블랙홀 안쪽에 대한 호기심을 더 촉발했고, 블랙홀을 통한 우주여행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생겨났다. 블랙홀의 전자기 진공요동과 복사는 블랙홀 내부의 에너지를 가속하여 공간을 파괴한다. 블랙홀 내부에서 물체를 파괴하는 힘은 점점 무한해져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까지 이어진다. 블랙홀에 대한 주류의 설명은 항상 다른 상상력에 의해 반박되었다. 무한을 용납하지 않는 양자역학은 일반상대론과 결합한 양자중력으로 블랙홀 내부를 다시 상상한다. 블랙홀 내부의 시공간이 파열되어 시간이 사라지면, 공간은 무작위 확률 거품으로 남는다. 어떤 이론이 더 그럴듯하다고 칭찬하고 어떤 이론은 터무니없다고 비웃을 만큼 확실하게 증명되지 못했다. 블랙홀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 최신 물리학과 수학을 비롯한 각종 이론이 집중되는 공간이었다. 지평면 없는 특이점에 관한 펜로즈의 상상처럼 단지 가능성만으로 주류 학계에 충격을 주는 이론도 있었다. 적어도 블랙홀 연구에 관해선 확실함만을 따를 필요는 없었다. 때로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듯 보이는 곳에서 새로운 발견이 나타났다. 킵 손은 칼 세이건의 SF소설을 감수하다가 웜홀을 상상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칼 세이건의 소설 속 블랙홀 우주여행은 웜홀 우주여행으로 변형된다. 블랙홀과 달리 웜홀의 입구는 양쪽에 있다. 다만 웜홀은 잠시 열려있다가 사라지기에 안정적으로 여행하려면, 웜홀이 닫히지 않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음의 평균 에너지 밀도를 가진 이상 물질이 이런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어진 연구들은 킵 손의 가정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웜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웜홀을 생성할 수도 있을까? 공간의 확률적 양자폼에 대한 상상은 풍부하지 못한 양자중력법칙 이해에도 불구하고 가능성만은 인정받았다. 공간을 구부리고 구멍을 뚫어 꿰매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시공간을 비틀고 뒤트는 방식인데, 이런 웜홀에서 우리는 공간은 물론 시간도 거슬러 오르게 된다. 타임머신에 대한 물리학의 금기 탓에 킵 손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진다.
웜홀을 활용한 타임머신이 양자역학과 관련되면 세계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확장한다. 현실에서는 가능성 중 하나만 구현되겠지만, 확률은 무한하다. 웜홀이 타임머신으로 알려지면서 킵 손의 연구는 대중적인 오해에 직면한다. 과학을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었던 킵 손은 묻는다. 우주와 우주의 법칙을 잘 알지 못하기에 무엇이 옳은지 우리는 지금 판단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굳이 섣불리 가능성을 닫아버리려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