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차이나] 잔향의 중국철학|| 불사의 노인이 아닌, 잘 썩는 송장이 되어2022-03-3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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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불사의 노인이 아닌, 잘 썩는 송장이 되어.pdf (64.2KB)

불사의 노인이 아닌, 잘 썩는 송장이 되어

에레혼

 

얼마 전, 잊혀졌던 이의 이름이 sns와 포털 사이트에 보였다. <'세기의 미남' 알랭 들롱, 안락사 결정 아들 "그가 부탁했다" (매일경제, 2022320)> 알랭 들롱은 2019년에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 건강이 악화되자 더 이상 삶을 유지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

 

이런 소식을 접하면 죽는 방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다운 모습으로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러한 화젯거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데에는 의학 기술의 발전이 영향을 미쳤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지만 있다면 거의 영원에 가까운 상태로 사는 인간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렇게까지 하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다시 뒤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시기를 정할 수가 없던 시기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지만, 고대 중국만 놓고 보면 극과 극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 죽음에 대해 '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던 반면, 영원을 갈망했던 사람도 있었다. 잔향의 중국 철학10장 불후不朽와 속후速朽에 대한 대비 역시 이런 상반되는 지점을 포착한 듯 보인다. 죽음을 바라보는 중국 고대인들의 입장만큼, 죽음 이후에 어떻게 남을 것인가 하는 질문도 첨예한 논쟁이었다.

 

루쉰은 속후, 즉 빠르게 썩어서 없어지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용어의 출전이 흥미롭다. 책에서는 유가 경전 중 하나인 예기禮記에서 속후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예기의 이 구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옛날에 공자 선생님께서 송나라에 있었을 때 환사마가 석관을 만드는 일을 보았다. 환사마는 이 일을 3년 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했다. 선생께서 '이렇게 사치하게 할 바에야 죽으면 빠르게 썩는 것이 낫겠구나' 하셨다." 예기》 <단궁檀弓>


개인적으로는 이 말을 공자가 했다는 사실이 의외처럼 보였다. 유학자라 하면 역사를 중요시하는 사람들 아니던가. 심지어 공자는 '춘추필법'이라는, 역사적 평가 방식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기록(문장)의 초월적 가치를 존숭한 인물이 불후를 긍정한다는 건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실 위 인용문은 공자가 환사마(사마환퇴)의 탐욕을 비판하는 에피소드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예기의 석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지은 백화문의 소설도 또한 빨리 썩어 없어지기를 소망한"(298) 루쉰이 속후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인용한 맥락에서 해석해야 한다.


중국 역사에서 불후를 이야기 한 사람은 의외의 시기, 뜻밖의 가문(?)에서 등장한다. 위나라의 초대 황제, 조조의 아들 조비曹丕는 영원히 썩지 않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문장이란 국가를 다스리는 큰일이며, 불후不朽의 성대한 사업이다. 인간의 수명은 때가 되면 다하게 되고, 영광과 즐거움은 그 한 몸뚱아리로 그치게 된다.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일정한 때에 이르게 되며, 문장의 무궁함과는 같지 않다." 조비, 전론典論·논문論文


조조와 그의 자식들이 주축이 된 위나라는 '문장가의 국가'였다. 삼국지소설에서는 이런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역사서에서 언급하는 조씨 가문의 일화, 그리고 그들이 남긴 글은 이 사람들이 작문에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시기만큼 글짓는 일과 정치의 연관성이 부각된 때도 없었다. 그리고 비로소 위나라를 필두로 하는 위진남북조 시기부터, 국가를 경영하는 '불후의 사업'으로 문장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문장은 불후의 사업. 잔향의 중국 철학에서 이 소재를 단독으로 언급하지 않은 게 이상할만큼, 조비의 말은 고대 중국의 언어와 정치에 관계에 대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조비는 철저하게 정치와 사회적 효용의 측면에서 글 짓는 일을 논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위나라 때부터 글 잘 짓는 사람은 정치에 철저하게 이용당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문인이 중국 사회에서 전면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위나라는 '글쟁이'에게 이상국가에 가까웠다. 루쉰도 이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조비는 시부詩賦에 교훈을 깃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시부에 교훈을 깃들인다는 당시의 견해에 반대했습니다. 최근의 문학 관점으로 보건대, 조비의 시대는 '문학의 자각시대'라고 부를 수 있으며, 또는 최근에 말하고 있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일파와 같은 것입니다." <위진 풍도·문장과 약·술의 관계>


그럼에도 루쉰은 이러한 불후의 문장관이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지식인들이 조비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호시절에 대한 향수 내지는 역사책에 기록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다. 루쉰이 중국 사회가 바뀌려면 문예 혁명이 필요하다며, 일본에서의 의사 공부를 관두고 중국으로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중국 인민를 계몽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자신이 영원한 선생으로 남는 것을 거부했다. 1920년대, 불후의 석학으로 남고자 했던 '선생님'들이 당시 각종 사회 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에 대해 취했던 태도는 어떠했는가? 앞서 살펴보았던 후스와 같은 인물들은 학생 시위대를 비난하기도 했다.

 

구습 타파를 논하던 이들이 스스로가 구습의 자리에 위치하자 모순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루쉰은 지식인들의 이중적 태도를 앞장서서 비판했으며 지식인 사회와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신문화운동에 앞장섰던 지식인 그룹이 자신들의 사상 역시 언젠가는 고문처럼 변하리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1920년대 중반 즈음 보수파의 대표 주자처럼 변한 후스도 불후 따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중국 고대)에 백화의 문장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문장이야말로 당시의 '신문학'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고문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아니며, 고문이란 후대의 사람들이 붙인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 즉 그들은 금문今文을 지었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고문이라고 부른 것이다." (본문 211)


루쉰은 중국 지식계의 이단아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주장을 하기는 쉽지만, 그 변해야 하는 대상에 스스로를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잔향의 중국철학에서는 루쉰이 타자(의 웅성거림)에 집중한 이유를 레비나스의 철학과 연관 짓고 있다. 하지만 나는 루쉰의 타자/약자에 대한 주목을 분석하기 위해 그렇게 먼 길을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소박하게 분석해보면 어떨까. 루쉰은 그저 타자 내지는 약자에게 자신의 자존심을 좀 꺾을 수 있었던 인물이 아닐지. 지식인의 에고가 강한 인물들에게 타인의 웅성거림 따위가 비집고 들어올 공간이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는 것이 자기 사상의 실현이라고 믿었던 인물, 루쉰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을 하나 이용하며 발제문을 마무리해보려 한다.

 

늙은이 그건 아니지요. 마음에서 우러나서 눈물 흘리면서, 댁을 위해 슬퍼하는 이도 있는 것이오.

길손 아닙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를 위해 슬퍼하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늙은이 그렇다면, 당신은, (고개를 저으며) 가는 수밖에 없겠소.

길손 그렇습니다. 저는 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앞에서 저를 재촉하는 소리, 부르는 소리가 있습니다. 저를 멈추지 못하게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제 발이 망가진 게 원망스럽습니다. 여러 군데를 다쳤고, 피를 흘렸습니다. (한쪽 발을 들어 늙은이에게 보인다.) 그래서 저는, 피가 부족합니다. 피를 마셔야 해요. 그렇지만 피가 어디 있습니까? 설령 누군가의 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누가 되었건 저는 그 사람의 피를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물을 좀 마셔서 제 피를 보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걷다 보면 물은 있게 마련이라 부족한 것은 없다고 느껴집니다. 단지 기력이 부칩니다. 피가 묽어져서 그럴 겁니다. 오늘은 작은 웅덩이도 보지 못했는데, 길을 적게 걸어서 그럴 겁니다.

길손, 19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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