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중국문학] 홍루몽 1권 11화~20화 :: 이야기의 향방은 묻어둔 채2019-10-16 23:58
작성자
첨부파일홍루몽1017.hwp (162.5KB)

홍루몽 1권(11화~20화)_아라차





이야기의 향방은 묻어둔 채





진가경도 죽고, 임여해도 죽고, 진종도 죽고, 가서도 죽고. 초반에 등장했던 많은 인물들이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신기한 것은 죽기 직전, 산 사람의 꿈에 나타나고, 저승사자와 대화도 나눈다는 것. 곧 있으면 신선이 된다는 사람은 부러 장례에는 오지 않는다. 사람, 신선, 저승사자가 아무런 경계도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성 밖에 나가 있는 가경은 손자며느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자신도 조금 있으면 승천하여 신선이 될 것을 철석같이 믿던 터라 집에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 공연히 홍진세계에 돌아와 몸을 더럽혀 지난 공을 다 헛것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은 오불관언으로 모든 일은 가진이 제멋대로 하도록 맡겼다.(281p)


장례 행렬은 실로 장엄하고 오리 가까이 길게 장사진을 이룬다.  사대 군왕 중 왕위의 작위를 세습받는 북정왕까지 왕림한다. 한편, 가경의 장례를 계기로 희봉의 권세가 더 올라간다. 희봉에게는 “일이 줄줄이 이어져서 이루 말할 수 없었”음에도 스스로 일과 권세를 즐기는 성품 탓에 거칠 것이 없었다. 묘한 것은 남편이나 친척 어른 앞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보잘 것 없다 하고, 어린 나이를 핑계 삼으며 부러 둔한 척을 한다는 것. 처세술도 참 기이하다. “재주 있는 사람이 힘들기 마련”이라고 추어올리는 말에 희봉은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노곤한 줄도 모른다. 이 가운데 희봉을 짝사랑하다 계략에 빠진 가서가 죽어가는 장면이 안쓰럽다. 진종의 죽음도 그 양태가 비슷한데, 풍월로 많이 듣던 장면이지만 실제로 죽을 만큼 정을 많이 쏟는 경우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풍월보감의 곡소리는 무슨 의미일까.


“누가 정면을 보라고 했나요? 자기들이 거짓을 진짜로 잘못 알고선 어째서 나를 태우려 한단 말인가요?”(272p)


귀비가 된 원춘이 왕의 하례대로 친정집에 하루 머물 수 있게 됨에 따라 녕국부와 영국부에는 성친별원이 만들어진다. 귀비가 머물 작은 정원인 줄 알았던 성친별원의 규모가 또 가히 태허환경에 버금간다. 정원공사를 마치고 대관원 여기 저기에 편액과 대련을 붙이기로 하는 장면이 재미있다. 보옥의 아버지인 가정은 내로라 하는 여러 문객들과 정원을 둘러보고 각 건물과 경치마다 이름을 붙이려고 한다. 이 때 가보옥이 동행한다. 문객들이 보옥이 이름 붙이는 것을 듣고 무조건 칭송하고 추켜 세우고 가정은 괜히 꾸지람을 내놓는다. 보옥은 “새로 지으면 아무래도 옛사람의 구절이 좋다 하고, 옛 구절을 쓰자고 하면 고루하여 마땅치 않다”는 듯 아는 시구를 모두 가져다 쓰는 중이다.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보옥은 내 놓는 말이 또 가관이다. 


“앞서 본 곳은 자연의 이치와 기운을 갖추고 있어 비록 대나무를 심고 샘물을 끌어들였지만 인공적으로 꾸민 듯 하지는 않았습니다. 옛사람이 ‘자연스러운 그림’이라고 한 말은 바로 그럴 만한 땅이 아닌 곳에 억지로 만들거나 그럴 만한 곳이 아닌 곳을 억지로 꾸민 것을 가장 경계한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백방으로 정밀하게 꾸민다고 해도 끝내는 어울리는 않게 되기 때문이지요.”(366p)


습인과 대옥이 가보옥과 삼각 관계로 그려지는 듯 하다가도 알쏭달쏭하다. 실상 가보옥은 습인과만 운우지정을 맺은 장면이 나왔을 뿐, 대옥과 보옥의 감정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습인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미끼를 던지며 맺은 약속이 예상을 뒤엎는다. 돈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가보옥의 성장을 바라는 약속이라니. 와중에 가보옥의 생각 중에 특이한 것이 있다.


“그의 생각에 원래 하늘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 때 산천과 일월의 정기는 오로지 여자아이에게 모이도록 하였고 수염 난 남자는 그냥 그 찌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자신이 사내대장부로서 자제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441p)


여기까지 읽어도 이야기의 향방은 도대체 모르겠다. 보옥이 대옥에게 들려주던 변신 쥐 이야기처럼 그저 나오는 대로 형편에 맞게 적은 이야기인지 의심이 갈 수밖에. 거기에 또 의미를 부여하면 하염없이 태허환경이 탄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통령보옥이 구경하는 세상 이야기 속에서 어떤 진짜를 보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보게 되는 진짜는 또 어떤 가짜일까. 이야기의 향방은 묻어둔 채, 일독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향해 나아가본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