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좀비] 좀비 아포칼립스의 완성과 탈주2021-01-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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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옥상으로 가는 길_ 발제.hwp (87.5KB)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옥상으로 가는 길>, <별이 빛나는 밤>

 

좀비의 세계가 펼쳐지는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 두 편 모두 좀비 아포칼립스 이후 유폐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작품의 편차가 크고 분위기는 다르지만, 두 소설 모두 같은 결말을 향해 달린다. 스스로 좀비가 되거나, 좀비가 된 상황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거나. 이들은 왜 좀비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한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좀비의 세계에서는 누가 행복한가를 언급한다. 역시 좀비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좀비가 행복하다는 답이 도출된다. 그러니 행복하게 좀비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거나 좀비가 되기 전까지는 좀비를 피해 달아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좀비가 죽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인간을 공격하기를 멈추지 않듯이. 좀비를 소재로 한 글이나 영상물에서는 좀비를 피해 달아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 그렇게 달아나서 찾아갈 안전한 곳이 과연 있을까. 좀비를 피해 모인 인간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좀비 아포칼립스의 세계는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좀비를 피해서 모인 이들끼리의 공간 안에서.

 

경쟁, 약자들끼리의 싸움

대상 수상작인 <옥상으로 가는 길>은 좀비를 피해서 모인 공간 안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통로까지 막힌 건물 안에서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성국 때문이다. 왜소증 장애를 앓고 있는 성국은 좁은 쓰레기배출구를 통해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거리를 점령한 좀비들을 피해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옥상뿐이다. 건물의 청소부로 일하며 평생 사람들의 냉대를 받고 살아온 성국은 이 좁은 세계의 영웅이다. 건물 안에 모여 살아남은 이들의 생명은 성국의 좁은 등과 여윈 몸으로 지탱된다.

성국은 정말로 영웅일까? 겉으로는 성국에게 굽실거리고 있지만, 각각 의사, 간호사, 대학생, 건달인 다른 인물들이 정말로 성국을 존경하고 우러러보고 있을 리 없다. 성국이 없는 곳에서는 스스럼 없이 험담을 하며, 식량을 빼돌리지는 않을까 의심한다. 대학생 종수는 여자친구인 간호사 희원을 이용하여 성국을 농락하고 식량을 얻어낸다. 성국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약한 여성인 희원에 대한 폭력으로 종수를 압박한다. 성국은 영웅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악인도 아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고양이를 칼로 죽이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지만, 그 고양이의 어린 새끼에게는 소중한 식량을 나누어준다. 성국은 생존의 방식을 터득한 인물일 뿐이다.

안전한 공간은 쉽게 안전하지 못한 공간으로 변한다. 어느 날 일행은 거리에서 좀비에 쫓겨 달아나는 모자를 발견한다. 모자는 부족한 식량 때문에 안전한 공간에서 방출된 참이다. 성국은 일행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모자를 일행에 받아들인다. 성국의 선행은 이들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모자 중 아들인 어린 세호의 등장은 일행들의 관계를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세호가 성국처럼 좁은 쓰레기배출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더불어 성국이 식량을 조금씩 빼돌려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을 때, 일행은 성국을 가차 없이 응징했다. 성국은 매를 맞고 이가 부러진 채 묶이는 신세가 된다.

성국의 선행과 성국을 돕고자 한 세호의 선행은 전혀 예기치 못한 결말을 낳는다. 세호의 모친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어렵게 도망친 성국은 건물 옥상에서 세호를 만난다. 성국은 별 망설임 없이 세호를 해친다. 세호가 없어야 일행 안에서 성국의 생존과 지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세호를 막 해친 성국은 감염된 고양이에게 가볍게 긁힌 상처로 인해 좀비가 된다. 성국의 눈앞에서 세상은 온통 붉게 변한다. 무작정 인간에게 달려드는 좀비처럼 망설임 없이 세호를 해쳤기 때문인지, 성국은 자신이 좀비가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인다.

이들의 생존이 지난한 싸움이고 치열한 경쟁이라면, 그 경쟁은 대체로 약자들 간의 싸움으로 표현된다. 왜소증을 앓는 성국은 성인 남성을 무력으로 제압하지 못한다. 대신 성인 남성 일행들은 성국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은근히 업신여기며,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준비가 되어있다. 성국은 이들이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구호품 조달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지위를 보장받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보다 약한 여성이나 어린아이에게는 얼마든지 강도 높은 폭력을 행사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좀비가 된다

좀비를 피해 달아나며 안전한 곳을 찾는 이들의 시도는 이처럼 처참하게 실패한다. 아무리 안전한 곳도 곧 안전하지 못한 곳이 된다. 좀비를 피해 달아나는 생존자들도 곧 좀비가 되거나, 좀비와 다름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살의와 잔인성은 좀비의 야만적인 공격성을 쉽게 뛰어넘는다. 유폐된 공간 밖에는 좀비가 우글거리지만, 공간 안에 있는 인간이 좀비보다 무해하리라는 보장은 불가능하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이렇게 완성된다.

어설픈 습작소설처럼 상투적 표현과 구성으로 가득찬 <별이 빛나는 밤>은 기꺼이 좀비가 되는 결말로 좀비 아포칼립스를 벗어난다. 시종일관 허술한 좀비 아포칼립스를 구현하던 이 소설에서 희망은 좀비가 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떤 심사위원의 말대로 좀비의 세계에서는 좀비가 가장 행복하다. 좀비들과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들에게 둘러싸인 채 공포에 떨고 있는 이들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별이 빛나는 밤>의 등장인물 혁은 밀폐된 창문을 열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이미 좀비가 된 친구 아영에게 자신의 몸을 내준다. 결국 우리 자신이 언젠가는 좀비가 된다는 사실, 이미 좀비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별이 빛나는 밤의 환희는 우리가 서로 쫓고 쫓기는 존재가 아니라 닮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되살아난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 좀비의 세계에서 달아나지 않고 좀비의 삶을 받아들이기. 어쩌면 이것이 완성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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