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문학] 오셀로 2022-02-22 16:45
작성자

오셀로 

 

 

빌런 이아고

 

<오셀로>에서 비극은 인간의 무지와 나약함에서 온다. 오셀로는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아내인 데스데모나의 순정한 사랑을 의심한다. 데스데모나는 사태를 분별하지 못해 자신을 변호할 여력이 없다. 로더리고는 데스데모나를 흠모하는 정념에 휩싸여 양심을 져버리게 된다. 결국 이 셋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이아고의 아내 아멜리아이다. 아멜리아는 이아고의 계략과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치밀한 계략가이던 이아고에게 아멜리아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부인을 죽일 필요까지 있었을까? 정직하고 당차며 용감하다고 인정받던 이아고의 가면은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을 것이다. 그 무기를 뺏겼을 때조차 이아고는 스스로를 내려놓지 않았다. 끝까지 악의 힘을 끌어모아 싸웠다. 칼을 빼들고 아멜리아를 찌르는 동안 어쩌면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와 열등감이 끓어올랐을지 모른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한 줌 남아있는 마지막 양심이었을 아멜리아. 이아고는 그녀를 죽임으로써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끝까지 악의 힘을 놓지 않는 전투력에서 이아고는 빌런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빌런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빌라누스(villanus)’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빌라누스는 고대 로마의 농장 빌라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빌라누스들은 차별과 곤궁에 시달리다 결국 상인과 귀족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 이처럼 아픈 과거들로 인해 결국 악당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 빌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이아고는 차별과 곤궁이라고 여길만한 처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소문에는 그놈이 내 자리에 들어가 내 할 일을 했다고 해.’ -13), 반면에 오셀로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며 아름다운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그녀가 무어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생각해봐. 단지 오셀로의 자랑과 환상적인 거짓말만 듣고 그랬어. -21) 이아고에게 오셀로는 과대 평가된 인물이며 데스데모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피해자일 뿐이다. 그의 곤궁은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허상에 의한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곤궁을 빠져나갈 방편으로 그는 혐오와 질투를 택했다.

혐오라는 감정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인신공격이나 근거 없는 험담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수시로 나는 무어놈이 싫어라고 말한다. 오셀로가 무어인으로 흑인이며 이방인이라는 점도 혐오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낯선 감각은 내면에 두려움과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 ‘우월하다는 인식과 하찮다라는 폄하가 오셀로에게 뒤섞이며 혐오의 감정은 배가 되었을 것이다.

빌런 이아고가 가진 능력은 이성과 의지였다. 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은 정원이고 의지는 정원사같아......이렇게 통제하고 교정하는 권한은 우리 의지에 달려 있어.....이성의 접시가 없다면 인간 본성의 저열한 혈기에 따라 우리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종말에 도달할거야.’(13)

이성의 힘으로 오셀로를 판단했을 때 오셀로에게서 가장 빼앗고 싶었던 것이 그의 절제력과 강직한 윤리의식이었을 것이다. 오셀로를 무너뜨리는 위해서 그는 질투심을 이용한다. 결국 오셀로는 이아고가 심은 질투의 불씨에 스스로 불을 붙여 타버리고 만다. 이아고는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자신의 질투심에도 풀무질을 해댄다. ‘나도 그녀가 좋아......복수심을 살찌우기 위해서 성욕 센 무어인이 내 자리에 들었다고 의심하고 싶어져.’(21) 하지만 이아고는그 불길에서 살아 남았다. 빌런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잠들어 있을 뿐. 빌런은 아마도 이 연극이 끝나도 어딘가에서 다시 부활을 꿈꾸고 있을 것만 같다.

 

새롭게 톱아보는 여성상, 데스데모나와 아멜리아

 

이 작품의 인물 중 여성 캐릭터는 빌런의 아내인 에밀리아와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이다. 데스데모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셀로와 결혼을 할 만큼 용기 있는 여성이다. 하지만 오셀로의 영웅담을 듣고 반해 사랑에 빠졌다는 점에서 볼 때 단순해 보이기도 한다. 또한 억울한 오해를 받으면서도 지고지순한 복종과 신의를 지키려고 하는 나약한 여성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무어인에 대한 편견을 갖기보다는 오셀로가 겪었던 고난과 성과에 매혹되었다는 점은 특이하다. 오셀로는 그녀에게 자신이 겪은 전투 속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마도 데스데모나가 사랑에 빠진 것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를 통해 오셀로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그녀의 동정심 때문에 나는 그녀를 사랑했소. 마술은 이뿐이오. -13) 하지만 이야기는 대상과 거리가 있다. 그녀는 그 거리감을 사랑으로 메워버렸다. 데스데모나는 자신이 선택한 이야기와 대상을 일치시킴으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려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에는 이어고가 꾸민 계락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녀에게 겹핍되어 있었던 것은 강한 의지가 아니라 이야기에 대한 창조적 상상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셀로의 의심을 파헤치고 이아고의 계략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이야기는 좀 더 달라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반면 이아고의 아내 아멜리아에게는 이야기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만이 있었다. 이아고의 악마성을 알고 있었던 것도, 모든 진실을 폭로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것도 아멜리아였다. 이 작품에서 조금은 천박하게 묘사되지만 아멜리아는 계급과 서열에도 굴하지 않고 헛된 명예나 질투심에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녀의 눈은 진실을 알아볼 뿐이었다. 물론 그녀는 갈등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손수건을 이아고에게 건네주는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그녀는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진심을 끝까지 지켜주려 노력한다. 그녀는 진실을 위해 죽음까지 불사해야 했다. 마지막에 이아고를 향해 악담을 퍼붓고 욕을 해대는 아멜리아와 변변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몸에 칼을 꽂는 이아고의 대결은 이 작품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가장 고귀한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 아멜리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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