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셰익스피어의 기억
보르헤스 전집 5: 20190510 희음
「1983년 8월 25일」
여관으로 들기 위해 숙박계에 이름을 기재하려던 보르헤스는 자신의 이름이 이미 기입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을 꿈꾸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만나게 된다. 71세의 보르헤스를 꿈꾸는 84세(1983년 8월 25일)의 보르헤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꿈꾸는 셈이다.
- 중요한 것은 꿈꾸는 사람이 한 사람인지, 서로를 꿈꾸는 두 사람이 있는지 밝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나 - 그가 말을 멈추었고,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나 또한 그와 함께 죽은 것이었다.
「파란 호랑이들」
평소 호랑이에게 매혹을 느끼던 “나”는 1904년 말, 갠지스 강의 델타 지역에서 푸른 빛깔의 호랑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근처 마을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금기를 어기고 마을의 언덕 꼭대기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나는 신비스런 작은 푸른 돌들을 발견한다. 그 돌들은 증식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주거지가 있는 라호로 돌아온 뒤에 나는 증식하거나 사라지는, 돌들의 변환/변화의 통계학에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혼돈의 고통만 가중된다. 괴로움 끝에 와질 칸 사원을 찾아간 나는 자신의 짐을 벗겨달라 간청의 기도를 올린 끝에 마침내 거지에게 그 돌들을 넘겨주게 된다.
- 내 삶의 여정은 평범했고 나는 늘 꿈속에서 호랑이들을 보았다. - 당신은 낮과 밤, 분별력, 일상적 습관, 그리고 세상을 되찾게 될 거요.
「빠라셀소의 장미」
자신의 제자 하나를 보내달라는 빠라셀소 기도 끝에 한 젊은이가 찾아온다. 그는 빠라셀소에게 ‘예술’을 배우고 싶다며 ‘돌’로 인도하는 길을 함께 가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러고는 빠라셀소에게 장미를 태우고 재 속에서 그 장미가 다시 솟아오도록 만드는 걸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빠라셀소는 그에게, 필요한 건 신앙이라고 말하며, 재가 되었을 뿐인 장미를 보여준다. 제자는 자신이 내보였던 금화를 챙겨서 떠난다. 빠라셀소가 혼자 남아 장미를 되살린다.
- 길은 ‘돌’이지. 출발점도 ‘돌’이고. (···) 자네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바로 목적인 거지. - 인간의 타락이라는 것이 우리가 에덴 동산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 가면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불경스러운 손으로 확인하도록 한 사람, 그는 누구인가?
「셰익스피어의 기억」
『셰익스피어의 연대기』의 작가, 헤르만 세르겔의 이야기. 다니엘 토프에게서 그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건네받고 그 기억을 다시 수화기 너머 익명의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처음에 그는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지만, 나중에는 그 기억이 자신의 원래 기억에 기반한 자기 정체성을 잃게 하고 스스로를 미치게 할까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기억을 넘겨준 뒤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꿈꾸는 사람 역시 또 다른 자일지 모른다고. 때로 아마 진실된 것일 작고 덧없는 기억들이 자신을 놀라게 한다고.
- 나는 두 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형편이지요. 내 개인의 기억과 부분적으로는 나 자신인 셰익스피어의 기억. - 인간의 기억은 종합이 아니다. 그것은 무규정적인 가능성들의 혼돈이다. - 처음에 두 개의 기억은 서로의 물을 뒤섞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셰익스피어의 거대한 강은 나의 평범한 물길을 위협하고, 급기야는 거의 그 안에 휩쓸려 들어가 버리도록 만들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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