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욱하느냐의 차이 : 노지심의 길과 임충의 길
두 번째 인물이다. 성질 급한 노지심과 그보단 좀 덜하나 한 성격 하는 임충. 엄밀히 이야기하면 노지심에 이어 임충이 등장하기까지 지나친 인물이 여럿이다. 그 가운데는 <노지심전>의 시작을 열었던 태위 고구도 있다. <노지심전>을 열자마다 등장했던 고구가 금세 사라져 버려 어떻게 되었나 싶었는데 <임충전>에서 갑자기 등장하더라. 앞으로 이런 일이 종종 있겠지.
<임충전>은 파락호 건달들을 혼내주는 노지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노지심은 동경, 지금의 카이펑 대상국사의 채소밭을 관리하다 파락호의 건달들을 상대하게 된다. 무튼 이들도 힘 좀 쓴다는 어깨들이었겠지만 노지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노지심 최강자설?)
노지심은 버드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파락호의 건달들을 한 번에 휘어잡는다. 누가 노지심에게 대들겠는가! 노지심의 힘!
카이펑 대상국사에 가면 버드나무를 뽑는 노지심 상을 볼 수 있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절에 한낱 소설 속 인물의 동상을 세워놓다니. 게다가 노지심을 봐도 전혀 불심이 깊어질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라 하자.
대상국사 절터는 본디 전국 사공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위무기 신릉군의 집터였단다. 신릉군은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과 함께 당시 널리 이름을 떨친 세력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위공자열전>은 지금 읽어도 꽤 흥미롭다. 신릉군은 조나라 한단을 공격하는 진나라 군대를 막고자 여러 인물의 도움을 받는다. 후영과 주해 등은 <자객열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쉬이 목숨을 바치는 이들이었다. 한편 신릉군에게 은혜를 입은 여인도 그를 돕는다.
이를 무엇이랴 이름 붙여야 할까. 의리라고 하자니 조금 의미가 바래버리는 듯하다. 우정이라 하자니 너무 가볍고. 하튼 신릉군의 이야기는 사마천 당대에도 크게 사랑을 받았다. 유방이 그토록 신릉군을 덕후였다니 말할 게 더 있을까.
하니 노지심의 이야기에서 임충의 이야기로 바뀌는 공간으로 신릉군의 집터 위에 세운 대상국사는 꽤 그럴싸한 공간임 셈이다. 담 너머로 노지심을 본 임충은 노지심에게 넋을 잃고 그 날로 노지심과 의형제를 맺는다. 현대인이 보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성급하다. 이 급발진은 뭐지? 협俠의 문법이라 치자. <사기열전>에서도 <수호전>에서도 이들은 서로를 너무도 쉬이 알아본다.
김성탄은 <수호전>의 '수호'를 멀다고 풀었다. 동떨어진 곳, 변방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노지심이 위주 경락부에서 출발하여 오대산을 거쳐 동경, 카이펑에 이르렀다면 이제 임충은 동경을 떠나 창주를 지나 양산박까지 가야 한다.
임충은 고구의 양아들 고아내의 모함으로 개봉부에 끌려간다. 개봉부는 대상국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오늘날 카이펑 개봉부에 가면 포증, 포청천의 거대한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송인종 때 개봉부윤으로 활약한 인물로 유명하다. 작두를 휘두르며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황족도 거리낌 없이 벌을 주었다지. (용작두를 대령하라!) 그래서 개작두, 범작두, 용작두를 구경할 수도 있다.
포증의 동상과 '정대광명'이라는 개봉부의 현판
포증은 이후 민간의 영웅이 되어 신으로 추앙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그처럼 공명정대한 인물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역사적 경험의 반증일 테다. 임충은 억울한 옥사를 겪고, 창주로 유배를 떠나면서 돈의 힘을 깨닫는다. 돈만 충분히 있으면 나름 배부르게 먹고 자며 유배지로 갈 수 있다. 아니, 죄인이 돈으로 객점에서 술과 고기를 사고, 자신을 호송하는 관리를 대접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겐 낯설다.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굶어 죽기 딱 좋겠지.
돈이 있으면 유배지로 가는 죄수를 도중에 죽일 수도 있다. 거꾸로 돈이 있으면 목에 찬 칼을 벗을 수도 있고, 유배지에서도 적당히 편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뿐인가 잘하면 용돈벌이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황금, 혹은 은전만능사회라 생각하지는 말자. 시진 같이 호걸을 좋아하여 술과 고기를 대접하고 주머니 두둑하게 돈을 주는 이도 있다.
읽는 내내 임충이 과연 언제 '수호'로 굴러 떨어질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노지심은 임충에 비해 꽤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진관서 백정 정가를 단번에 때려죽였던 노지심에 비해 임충은 수차례의 고비를 잘 넘긴다. 고아내를 가만 두었으며, 자신을 해하려 했던 압송관 둘을 무사히 돌려보냈다. <노지심전>을 읽은 후여서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들었다. 노지심이라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순순히 개봉부에 끌려가지는 않았을 테다. 아마 끌려가기 전에 몇 차례 사고를 치고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겠지.
원한이 깊으면 복수도 깊다 하던가. 임충은 자신을 죽이려던 육겸과 부안, 차발 세 사람을 죽인다. 자신이 옥사를 겪도록 한 육겸, 한때는 친구였으나 자신을 저버린 그를 임충은 매우 잔혹하게 죽인다.
육겸의 웃옷을 찢고 날카로운 칼로 심장을 도려내니 일곱 개의 구멍으로 피가 터져나왔다. 심장과 간을 손에 들고 고개를 돌려 보니 차발이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 임충이 차발을 붙잡아 누르며 말했다. "너 이놈은 원래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니었더냐. 내 칼을 받아라!" 차발의 목을 잘라 창끝에 꽂았다. 돌아와서 부안, 육겸의 목을 모두 잘랐다. 날카로운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넣고 셋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사당 안으로 들고 들어와 산신상 앞 탁자 위에 올려 놓았다. (2권 47쪽)
다진 고기를 뿌리며 진관사 백정 정가를 죽인 노지심은 순박한 편이다. 결국 임충도 뭇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뒷세계로 숨는 수밖에. 시진은 그에게 도적 무리를 소개해주고 임충은 드디어 양산박으로 떠난다.
확실히 <수호전>은 <사기>에서 만났던 자객과 협객의 모습이 겹쳐 읽힌다. 무협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사기>에 비해 <수호전>은 더 변두리 인간들에 주목하고 있다. <사기>가 역사이고 <수호전>이 문학인 이유가 여기에 있을 테다. 한편 무협지와 다른 점은 기술 묘사가 간결하다는 점, 최강자 논쟁이 없다는 점 정도. 다들 나름의 고수지만 우열을 가리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양산박의 왕륜 생각은 다르다. 그는 임충과 같은 고수를 무리에 받아들일 경우 자신의 지위가 위태롭게 될까 걱정한다. 이것이 왕륜의 사망 플래그일지는 더 지켜보도록 하자.
찾아보니 양산박은 이렇게 심산유곡은 아니더만... 그래도 멋있으니까
<수호전>을 읽으면서 무엇을 통해 시대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철학 전공자에게 송대는 주자의 시대이다. 북송과 남송으로 나눈다면, 북송에는 주자를 위해 길을 닦는 이들이 존재할 뿐이다. 주자학을 위한 비옥한 토양을 마련하는 시대라고 할까? 송대의 여러 문인, 관료들도 비옥함을 더하는 인물들에 불과하다.
<수호전>은 소설이며 역사는 아니다. 따라서 <수호전>을 통해 송대를 읽는다는 것은 무리일 테다. 그럼에도 <수호전>을 읽으며 수호,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본다. 제법 재주는 가졌지만 꽃을 피우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는 당송변혁기를 사대부의 시대로 이야기한다. 과거제를 통해 관료 지식인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다. 어쩌면 과거보다는 더 안정적인 사회, 더 합리적인 사회로 변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예외적 삶의 자리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사마천은 한무제 시기에 <사기열전>을 기술했다. 한무제는 관학의 시대를 연 인물로 유명하다. 독존유술, 유가독존의 시대, 국가 철학의 시작을 보며 사마천은 협객과 자객, 문사文士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남겼다. <수호전>이 송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거대한 시대의 변화에 떨어져 나가는 자리를 '수호'라 하자. 변두리 야만인들의 공간. 오랑캐와 비슷한 인간들. 도적떼 무리. 이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오늘날에도 욱하다 보면 비슷한 곳으로 굴러 떨어지는 까닭이다. 양산박 도적떼 소굴이 뭐 그리 멀리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