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0324 발제 13장 14장
칸트, The Philosopher
1700년대 후반 유럽 문화 안에서 비교적 서로 독립적인 세 가지 가치 체계가 등장했다. 과학과 도덕성/윤리 그리고 예술이다. 이 영역은 칸트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최초로 명시적으로 주제화되었다. [순수이성비판]은 근대 자연과학의 전제조건을 명확히 밝혔고, [실천이성비판]은 도덕성에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독립적인 위상을 부여했다. 그리고 [판단력비판]은 과학과 도덕성과는 구분되는 미학의 영역을 확정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르네상스와 함께 시작된 문화적 발전의 정점이었다.
칸트의 철학을 보통 선험철학이라고 한다. 선험철학으로 칸트는 흄과 같은 경험주의적 회의주의와 데카르트와 같은 합리주의적 독단주의를 모두 거부했다고 일컬어진다. ‘선험적 a priori’이란 경험 이전의, 경험과는 독립된 이라는 뜻이다. 칸트는 인식의 조건들이 이미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틀(형식)이 주체 안에 존재한다고 전제한 것이다.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인식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역전시켜 대상이 주체의 영향을 받는다고 본 것이다.(사물들은 우리의 인식형식을 따라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지구중심설에서 태양중심설로의 전환만큼이나 전제를 바꿔버렸기에 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고 불린다.
칸트는 철학에 자연과학과 똑같은 확실한 위상을 부여하고자 했다. 과학실험에서처럼 일정한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분리하고 결합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이 조건들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자는 것이다. 만약 우주의 기본적 균일성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뉴턴의 과학은 성립하지 않는다. 뉴턴의 우주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본 조건 위에 성립하듯이 칸트의 선험적 조건에는 공간과 시간이라는 직관 형식과 인과성과 같은 몇 가지 기본 형식들이 있다. 칸트는 우리가 이미 형식이 부여된 감각 인상들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형식이 부여되지 않은 외적 영향들과 물자체는 파악이 불가능하다. 지식과 신앙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칸트는 “너는 ~해야 한다.”라는 당위 규범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공간, 시간, 인과성 등의 선험적 형식들처럼 이같은 도덕명령이 모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도덕명령이 그 유명한 정언명령이다. “너는 오로지 너의 행위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네가 바랄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 보편적이 될 수 있는 준칙에 따라서 행위하라는 요구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는 원칙과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칸트의 정언명령은 메타 규범, 즉 규범에 대한 규범이다. 정언명령이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실제로 도덕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도덕적 의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 인간에게는 반드시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칸트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에게 이는 기정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존재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도덕법칙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도덕법칙의 입법자이다. 우리는 모두 도덕적 자율성을 갖는다. 인간이 원칙적으로 그러한 법칙들을 만들 자유를 갖고 있으며 충분히 이성적이라고 전제한 것이다. 나아가 자유롭고 이성적인 개인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아무 법이나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다른 개인들도 자신과 똑같은 존재이며,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인 존재라는 점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행위의 자유는 보편적 법칙에 따라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이렇게 칸트는 일반적 원칙으로써 인권 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정치사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은 평화의 철학이었지만 여성들, 임시 노동자, 하인, 동성애자들은 입법자로서 인정하지 않았음도 드러난다.
이로써 칸트에게는 인과성을 바탕으로 인식하는 필연성의 세계와 도덕률로 살아가야 하는 자유의 세계가 있는 듯 하다. 칸트는 이 두 세계를 매개하는 능력으로 ‘판단력 이론’을 추가한다. 칸트는 판단력이 목적론과 미학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것들은 인식의 판단이 아니라 취향의 판단이다. 좀 말이 안 되지만 칸트는 미적 판단은 어떤 면에서 주관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타당하다고 본다. 예술 작품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하게 감상하면 동일한 미적 쾌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동일한 감정을 가질 것이고, 이 공통의 감정이 올바른 판단의 토대이고, 이 올바른 판단은 보편적이라는 논리다. 칸트에게 아름다운 것은 참과 선과 연관되어 있다. 칸트는 진리와 도덕성을 구분했으며, 숭고처럼 아름다운 것이 이 둘을 매개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필연성과 자유를 매개할 수 있는 숭고의 문제를 더 탐색해 보았다. 칸트에 따르면 대상과 무관한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다. 아름다움이나 숭고의 느낌은 우리 안에서 능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적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판단 능력을 다룬다. 기쁨은 대상에서 오는 게 아니라 주체의 능력에서 오는 것이다. 기쁨은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나 스스로 판단하고 용감히 행위할 때나 언제든 우리와 함께 한다. 기쁨은 능력의 활동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대상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써 필연성과 도덕적 자유, 미학의 세계가 합일에 이르렀다. 노년의 칸트는 마지막으로 “Es ist Gut!(좋다!)”를 외치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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