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세미나》 8장 일상 없는 삶의 지속과 반복, 나오는 글: 좀비가 욕망하는 세계 좀비세미나를 처음 기획한 시기는 찬바람이 불던 지난겨울의 초입이었다. 약 3개월에 걸쳐 진행한 세미나를 마치는 지금은 완전히 봄이다. 지난해 말 세미나 모집공지를 올리면서 ‘이 세미나는 혹시 모를 좀비바이러스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합니다.’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문구를 넣었다. 실상은 좀비바이러스가 아닌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방역이 문제였다. 판타지다운 설정으로 현실을 조금 덜 무겁게 풀어보자 싶어 쓴 말인데, 아무리 가볍게 여기려 해도 현실의 상황은 별다르게 나아지지 않았다. 세미나가 끝나는 지금까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고,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도 해제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대창궐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에서 만나 좀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좀비가 무섭고 끔찍하다는 이야기, 좀비에게 죄책감 혹은 동질감과 동료의식을 느낀다는 이야기, 좀비 아포칼립스가 도래했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좀비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들을 오래 나누었다. 아이티섬에서 주술에 걸린 노예들이었던 좀비는 인류를 살육하는 뛰는좀비로, 뛰는좀비에서 다시 인간과 소통하며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을 보이는 포스트좀비로 변해갔다. 정확하게는 좀비 자체가 변했다기보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좀비의 모습과 역할이 변했다. 좀비는 타자 괴물에서 점점 우리와 유사한 존재가 되어갔다. 어느새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좀비에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멍하게 한 가지만을 좇는 시선과 걸음, 맹목적인 집착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우리는 좀비와 다르지 않았다. 좀비는 우리 자신이었고, 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대리하던 존재였다. 우리는 좀비를 통해 쉽게 인류를 절멸하고 모든 문명을 파괴하는 종말을 상상했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욕망은 우선 종말에 대한 상상으로 나타났다. 그럼 종말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모든 인류가 사라진 세계에서 좀비는 무엇을 좇게 될까? 좀비가 가져온 종말은 파국을 지향하는 동시에 자꾸만 파국을 지연시킨다. 좀비는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떠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지연된 파국에서 우리의 망설임을 본다.
우리는 파국을 원하는 동시에 망설인다. 망설였기 때문에 파국은 우리를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창궐》과 드라마 《킹덤》의 좀비들은 궁궐을 습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든다. 좀비가 사라지면, 영화 속 조선의 체제는 일부 수정된 채 다시 재건된다.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도 왕정과 신분제도는 굳건하다. 파국을 원하는 동시에 망설였던 우리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이 사라져도 우리에게 헬조선이 계속되는 한 좀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헬조선에 좀비가 사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파국을 원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