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R&D [퀀텀스토리_3부 양자논쟁] _ 211020 아라차 발제
물리적 실체를 물리학적으로 서술할 수 없다는 역설
전자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상반된 성질을 동시에 관측할 수는 없다.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어가 주장하는 상보성 원리다. 보어는 5차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에게 보고하듯 상보성 원리에 대해 강연한다. 아인슈타인은 즉시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보어-아인슈타인의 팽팽한 양자 논쟁의 시작이다.
파동상태로 슬릿을 통과한 전자나 광자가 스크린에 도달하면 입자상태로 점을 남긴다. 아인슈타인은 중간에 어떤 과정을 거쳐 파동함수가 붕괴되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의 논리를 시각화해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움직이는 첫 번째 단일슬릿(구멍 한 개) 스크린과 최종 스크린 사이에 두 번째 이중슬릿을 삽입하여 입자의 운동량을 측정하면 입자가 거쳐 온 전체 경로(위치)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보어는 아인슈타인의 사고 실험을 대응하기 위해 또 다른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움직이는 첫 번째 슬릿에 움직임을 관측하는 아주 예민한 눈금자를 달아 측정 가능하도록 장치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발한 장치를 달아도 눈금을 정확히 읽으려면 빛을 쪼여야 한다. 눈금을 읽는 행위 자체가 입자의 운동량에 영향을 주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불확정성 원리가 성립한다. 이렇게 5차 솔베이 회의는 보어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아인슈타인은 조금도 설득되지 않았다.
폴 디랙은 양자역학 이론을 해석하는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디랙은 전자의 스핀에 관심을 기울였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 특수상대론이론에 위배되는 문제를 푸는 데 전자의 스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파동방정식이 시간과 공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슈뢰딩거가 상대성이론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상대론적 파동방정식이 필요했다. 수학자인 디랙은 일단 수학 문제를 푸는 것에 집중했고 그 해 답에 물리적 의미를 부여하는 문제는 다른 이론가들에게 맡겼다. 디랙은 4X4 행렬계수를 이용한 상대론적 파동방정식을 만들고 해까지 구해냈다.
양자역학 방정식에 4차원 시공간이 도입되었고, 이는 전자의 스핀이 고려되었음을 뜻한다. 스핀은 상대론적 양자역학만이 갖는 특징으로 고전물리학에는 이에 대응하는 개념이 없다. 전자가 지닌 대부분의 물리적 특성들은 고전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데, 유독 스핀만은 양자 세계에만 존재하는 특성이다. 디랙방정식은 또 다른 발견으로 이어졌다. 전자의 두 가지 스핀값은 디랙방정식의 해의 절반에 해당하며, 나머지는 전자의 음에너지 상태가 된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양에너지 해만 취하고 음 에너지 해를 치워도 별 문제가 없었다. 물리계가 갑자기 음에너지 상태가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는 전자가 음에너지 상태로 도약할 수 있다.
디랙은 양과 음의 해 문제와 싸우다가 한 가지 해결책을 찾는다. 이 우주가 음에너지 상태의 ‘바다’로 가득 차있고, 모든 상태들이 스핀으로 짝을 이룬 전자쌍들에 의해 점유되어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음에너지 상태를 배경으로 양에너지 상태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것. 이 곳에서 전자 하나가 빠져 나오면 구멍이 생기고 이 구멍에는 그에 상응하는 플러스 전하가 생긴다. 이를 양성자, 양전하를 띤 전자라고 보았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는 하나가 아니라 전자와 양성자 두 종류이고, 이는 다른 입자가 아니라 ‘한 입자의 두 가지 양면’라는 것이다.
6차 솔베이 회의는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2차 논쟁이 화제였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사고 실험을 제시했다. 조그만 구멍이 뚫린 상자 안에 시계를 넣고 시계와 연결된 셔터를 둔다. 상자를 광자로 가득 채운 후 무게를 측정한 다음 광자 하나가 빠져나가게 한 다음 잽싸게 셔터를 닫는다. 그런 다음 상자의 무게를 달면 된다. 광자가 빠져나간 시간도 재고 무게(에너지)도 잴 수 있다는 것이다. 보어는 당황했으나 반격은 날카로웠다. 상자 안에 놓인 시계를 확인하려면 상자와 바깥 사이에 광자가 교환되어야 하고, 이는 곧 에너지가 교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상자의 무게를 측정할 때도 바늘의 위치를 알기 위해 빛을 쪼여야 한다. 임의의 한 순간에는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만 관측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빛을 통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상자의 무게를 정확히 알려면 일정 시간 동안 관찰된 평균 무게를 재야한다. 아인슈타인에게 가한 치명타는 이 다음이다.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상자 안에 있는 시계는 무중력 상태 있는 시계보다 느리게 간다. 상자 안 시계는 예측할 수 없는 패턴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보어와 코펜하겐 해석의 승리였다. 관측 장비가 아무리 정밀하다 해도 무엇인가를 관측할 때는 관측 대상을 교란시킬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정확도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 한계를 규정한 것이 불확정성원리이다. 아인슈타인은 업그레이든 광자 상자 실험을 또 제시했다. 관측자가 두 가지 관측가능한 물리량 중 하나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였다. 보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후 히틀러의 득세로 독일을 떠난 아인슈타인(E)은 보리스 포돌스키(P), 네이선 로젠(R)과 함께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입증하는 EPR 역설을 만든다.
“계를 교란시키지 않고 물리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면 그 물리량에 대응하는 물리적 실체가 존재한다.” EPR역설은 물리적 실체를 이렇게 정의하고 시작한다. 두 개의 입자 A, B가 충돌한 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상황이다. A, B의 질량이 같으면 A의 위치만 알아도 B B의 위치를 알 수 있다. B의 위치를 관측하지 않고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B의 위치는 물리적 실체가 되고 운동량은 물리적 실체가 아니게 된다. 코펜하겐 해석이 옳다면 B의 위치 또는 질량이 멀리 떨어져 있는 A의 운동량과 위치 중 ‘무엇을 관측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버리는 셈이다. 관측자가 무엇을 관측하느냐에 따라 입자 B의 위치와 운동량 중 하나가 실체인지 아닌지 오락가락해져 버린다니 정말 역설이 아닐 수가 없다.
(EPR 역설은 나중에 데이비드 봄의 스핀 사고실험과 존 스튜어트 벨의 정의로 이어지지만 결국 1982년 실제 실험이 이루어져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다.) 아인슈타인은 EPR에도 조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서 자신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보어는 EPR 논리에 대한 반론을 발표하면서 관측 대상과 관측 장비 사이의 교환되는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성공적인 방어는 아니었다. 관측이 수행되기 전에 모호하고 불확실했던 계가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슈뢰딩거는 EPR 사고 실험에서 두 입자의 상태를 한꺼번에 정의하지 파동함수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인슈타인은 슈뢰딩거의 의견에 또 다른 상자 실험을 제시한다. 하나에는 공이 들어있고 다른 하나는 비어있는 상자가 있다. 한 상자에 공이 들어 있을 확률은 정확히 50%이다. 아인슈타인에게 확률은 실체를 서술하는 완벽한 방법이 아니다. 이에 슈뢰딩거는 ‘고양이 역설’로 파동함수가 실제를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방사능 물질과 가이거계수기가 설치된 상자 안에서 살아있는 고양이와 죽어있는 고양이가 중첩되어 있다는 황당한 결과를 얻게 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코펜하겐 해석으로 풀면, 상자의 뚜껑을 열기 전에 고양이는 중첩된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 고양이가 어떤 상태였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탈무드>같은 면이 아인슈타인을 끝까지 양자역학의 반대편에 서게 했다.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고자 했던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노력은 고전적인 실체와 양자적 실체 사이의 애매함을 남겨 둔 채 학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채드윅의 중성자, 페르미의 중성미자 등 새로운 입자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었다. 뮤온도 입자 명단에 올라왔다. 이 외에도 입자 명단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인 입자들이 많았다. 모든 만물이 하나의 기본 입자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는 철학자의 꿈은 빨리 흘러 보내야 했다. 때는 2차 세계 대전의 벽두였고, 물리학자들은 핵물리학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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