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르헤스는 아래에서 보듯이 「수정알」의 영향을 언급하고, 개정판에 4개의 단편을 추가한 사실을 언급했다. 「알렙」은 같은 제목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런데 나는 보르헤스가 이런 배치에도 주의를 기울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알렙」을 독자들이 좀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그는 친절을 베푼 것이 아닐까. 물론 다른 작품들 역시 독자적 가치가 있으리라. 그런데 만약 이 책을 하나의 구조물-그가 즐겨 묘사하는 것처럼 미로같은-로 본다면「알렙은 그 가장 깊숙이 숨은 장소일 것이다. 그는 독자가 바로 이 장소로 들어오길 바라지 않는다. 독자는 그가 공들여 만든 언어의 구조물을 완상하며 그 장소로 들어갈 것이다.
2. 보르헤스는 국내에 단편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산문가, 시인이고 그리고 글로 쓴 것 못지 않게 정교한 말을 구사하는 강연자이자 인터뷰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직접 말한 내용은 많지 않다. 작품에 대해 말을 덧붙이는 것을 사족으로 생각한 듯하다. 대신 그의 산문에는 단편소설과 직간접으로 연관되는주제를 다룬 내용이 적지 않다. 산문과 단편소설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것은 그의 글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인터뷰와 산문에서 해당 작품과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가 언급한 「수정알」과 움베르토 에코의 「알렙」에ㅡ 대한 언급을 옮겼다. 「수정알」은 그 작품에 나오는 수정알 자체보다 주인공이 그것에 빠지게 된 정황에 대한 묘사가 보르헤스의 마음을 끌었을 것이다. 에코의 언급은 보르헤스가 얼마나 자신의 '남부'를 사랑했는지 적확하게 이해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가 사랑하는 '남부'를 지하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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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르」와 「알렙」에서는 웰스의 단편 「수정알」이 준 영향을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 후기 이 개정판에는 4개의 단편이 추가되었다. - 1952년의 추신 ● 신의 글 알레고리 당신 소설 속에는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인물들이 있어요. (…) 당신 소설 속에는 그걸 성공한 사람들이 몇 있잖아요. 그들은 성공했지만, 나는 못했어요! 상상으로 만들어낸 인물인 그들이 성공했죠. 내겐 내놓을만한 어떤 해답도 없답니다. 이제 그는 변했고, 계시는 다른 사람에게 나타난 것과 같으니까. 그는 그 상황에 이르기 전, 그 자신이었던 특정한 개인에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요. - 말, 323p 나는 관념보다 이미지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추상적인 사고를 잘하지 못하거든요. 그리스인과 히브리인처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화와 비유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이 그런 것이니까요. - 말, 153p 소설이 개별 인간의 우화라면, 알레고리 문학은 관념 덩어리가 빚어낸 우화이다. 관념들은 상징화되어 있다. 따라서 각각의 알레고리에는 소설적인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다. 소설가들이 상정하는 개인들은 그 안에 종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소설 속에는 알레고리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 장, 280p ● 아벤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 ● 두 왕과 두 개의 미로 「아벤하깐 엘 보하리. 자신의 미로에서 죽다」는 (…) 우리는 그것을 원래의 필경사들이 『천일야화』에 포함시켰지만 신실한 갈란은 제외시켰던 「두 왕과 두 개의 미로」의 변형으로 간주할 수 있다. - 1952년의 추신 미로 내가 이건 미로의 악몽이라는 걸 깨닫고 속으로 중얼거렸을 때, 나는 미로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된 거에요, 그래서 그냥 바닥에 앉아 있기만 했지요. - 말,54p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로와 이상한 패턴들은 예술적 기교로서 나오는 것 인가요, 아니면 어떤 생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가요? 그게 아니에요. 나는 그것들을 근본적인 징후, 근본적인 상징으로 여겨요. 내가 그것들을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것들이 내게 주어진 것이지요. (…) 나는 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요. 그러니 미로는 적합한 상징이지요. - 말,87p 미로 같은 세상의 무질서라는 테마로 돌아가 봅시다. 그것은 보르헤스에게서 직접 나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조이스, 심지어는 중세의 텍스트에서 발견했습니다. (…) 미로의 개념은 바로크 예술과 매너리즘 이데올로기의 일부였습니다. (…) 세상에 대한 모든 분류는 미로 또는 두 갈래 길들의 정원을 이룰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라이프니츠에게서도 나타났고,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백과전서』 서문에서도 아주 분명하고 명백하게 나타난 관념이었습니다. (…) 어쨌든 보르헤스의 미로들은 나에게 아마도 내가 다른 곳에서 발견한 미로에 대한 수많은 암시들을 응결시켰으며, 따라서 만약 보르헤스가 없었다면 『장미의 이름』을 쓸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기도 합니다. (…) 보르헤스의 작업도 상호 텍스트성의 방대한 영토로부터 이미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일련의 테마들을 이끌어내 예시적인 비유로 전환시키는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 쓴, 182p 분신 스피노자는 만물이 원래의 자신으로 존속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돌은 영원히 돌이고자 하며 호랑이는 영원히 호랑이고자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나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보르헤스로 남게 될 것이다. -보르헤스와 나 보르헤스는 내가 몹시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나타낸답니다. (…) 반면에 ‘나’는 그러니까 이글의 제목인 「보르헤스와 나」에서 ‘나’는 공적인 사람을 나타내는 게 아니라 사적인 자아를 나타내고, 또한 현실을 나타내지요. -말, 104p ● 기다림 ● 문턱의 남자 시간 시간은 단 하나의 본질적인 수수께끼에요. 다른 것들은 신비스럽지만 본질적인 수수께끼라고 할 수 없을 거예요. 공간은 중요하지 않아요. (…) 시간의 문제는 자아의 문제, 자아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지요. 자아는 과거고, 현재고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측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이기도 해요. 그 두 가지 수수께끼가, 불가사의가 철학의 본질적인 과제예요. -말, 205p 그대가 3000년을 살더라도. 아니 그보다 10배를 더 살더라도. 그 누구도 지금 잃고 있는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 수 없음을 명심하라. 그 기간이 길든 짧든 마찬가지이다. 현재는 모두의 것인바. 죽음은 그 현재를 잃는 것이며 현재는 지극히 짧다. 미래나 과거를 잃는 자는 없다. 있지도 않은 것을 뺏길 수는 없으니 말이다. 만물은 동일한 행로를 따라 돌고 도는 법이니 그 행로를 한 세기를 보든 두 세기를 보든 영원히 보든 같은 것임을 기억하라. - 『명상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우리가 이 말을 진중하게 받아들인다면 아우렐리우스가 두 가지 흥미로운 사유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과거와 미래의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도 이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는 “의지가 출현하는 형태는 오직 현재일 뿐 과거나 미래가 될 수 없다. 과거와 미래는 이성의 원리에 구속된 의식의 속박에 의해 개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누구도 과거를 살지 않았으며 누구도 미래를 살 수 없다. 현재가 모든 삶의 형태이다.” 두 번째는 「전도서」가 그렇듯 모든 새로움을 부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유사하다는 추정은 얼핏 보면 세상을 빈한하게 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 결국 지각, 감정 사유, 생의 부침의 수는 한정적이며, 우리는 죽기 전에 그것을 소모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재차 말한다. “현재를 본 자는 모든 사물을 본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난 일과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이다.” 호시절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변치 않고, 항구적이라는 주장이 사람을 서글프게 하거나 분노케 하지만. 궂은 시절에는 어떤 수치도, 어떤 재난도, 어떤 독재자도 우리를 가난하게 하지 못하리라는 약속이 된다. - 원, 343p ● 알렙 신곡 소설 속에서 보르헤스가 사랑한 여인의 이름이 베아뜨리스라는 점에서 몇몇 평론가들은 이 작품이 단테의 『신곡』을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보았다. (…) 하지만 보르헤스는 이 작품의 영어판 서문에서 이런 가설을 전적으로 부인했다. 그리고 베아뜨리스 비테르보는 실존 인물로서, 소설을 쓰기 얼마 전 일어난 그녀의 돌연한 죽음은 자신에게 큰 상심을 주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소설에 반영되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까를로스 아르헨티노 다네리는 보르헤스의 실제 친구로, 소설에 인용된 그의 시는 친구의 시 그대로를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 전, 355p 최초의 알레프는 바로 「천국」편의 마지막 노래에 나온다. (…) ‘이 매듭의 우주적 형식’을 정지된 정신과 짧은 언어로, 그 명백한 현존으로 묘사하면서 단테는 세 가지 색깔의 새 둘레를 보는데, 보르헤스가 베아트리스 비테르보의 잔인한 유물들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벌써 오래전에 잔인한 유물이 되었던 그의 베아트리체는 이제 빛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테의 알레프는 보르헤스의 환각에 빠진 알레프보다 열정적으로 더 많은 희망으로 넘친다. 보르헤스는 자신에게 최고의 하늘 Empireo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단지 부에노스아이레스만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쓴, 38p 수정알 Crystal Egg 케이브 씨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제대로 교육을 받았는데, 그런 그가 몇 주 동안이나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가족을 걱정시키는 게 싫었던 케이브 씨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가 복잡해지면 몰래 아내 곁을 빠져나와 집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리고 8월말 새벽 3시경, 가게로 들어온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 웰, 319p 바로크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매우 바로크적인 스타일로 썼어요. 토머스 브라운 경이나 공고라나 루고네스 같은 사람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늘 의고체나 진기한 것이나 신조어 등을 사용해서 매번 독자를 속이려고 애썼죠. 그러나 지금은 아주 단순한 단어를 쓰려고 노력해요. 딱딱한 단어나 사전적인 단어는 피하려고 노력하죠. 그런 걸 피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 말, 37p 보르헤스는 정신적으로는 바로크와 그것의 개념 조작 방식에 매료되었지만, 그의 글쓰기는 바로크풍이 아닙니다. 그의 글쓰기는 명백하게 신고전주의적입니다. - 쓴, 191p 고전주의자가 현실을 상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인데 방법마다 접근법은 매우 다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중요한 사실을 포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작품 속의 현실이 독자에게 밝힌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암시하고. 한 가지 현실(사건)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현실과 결과를 언급하는 것이다. (…) 가장 효과적이고도 어려운 세 번째 방법은 정황의 창조이다. - 원, 99p 영원 나는 향수가 영원을 설명할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추방된 자가 눈물을 머금고 행복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그는 그 가능성 중 하나가 달성되면 다른 것이 배제되거나 밀려난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한 채 그 가능성을 ‘영원성의 이미지를 통해’(스피노자) 바라본다. 기억은 격정에 사로잡혀 초월적 시간성을 향해 기운다. 우리는 과거의 행복을 하나의 이미지로 모은다. 내가 매일 오후 바라보는 다채로운 붉은 낙조가 기억 속에서는 단 하나의 낙조가 된다. 예지도 이와 같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희망들이 아무런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원성은 욕망의 방식이다. - 원, 279p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를 휩쓸어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은 호랑이여서 나를 덮쳐 갈기갈기 찢어 버리지만, 내가 바로 호랑이다. 시간은 불인 까닭에 나를 태워 없애지만, 나는 불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불행히도 현실이다. 나는 불행히도 보르헤스다. - 장, 337p 인용한 책들 보르헤스의 말: 1982 만리장성과 책들(또 다른 심문): 1952 영원성의 역사: 1936 보르헤스 문학전기 허버트 조지 웰스 단편선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