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목[리딩R&D] 실체는 변덕쟁이2021-11-0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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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R&D [퀀텀스토리] 양자적 실체_1110 발제_아라차



실체는 변덕쟁이 



EPR역설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하기 위해 나왔지만 오히려 양자역학의 옮음을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데이비드 봄은 EPR역설을 스핀을 이용한 사고 실험으로 확장해 코펜하겐 해석과 숨은변수이론이 동시에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존 스튜어트 벨은 부등식 실험으로 양자적 실체의 비국소적 특성과 양자얽힘이 가능함을 예시했으며, 알랭 아스페는 실제 실험으로 이를 증명해 낸다. 양자역학은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여전히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했다. 


그렇다면 “양자적 실체는 비국소적이다”는 무슨 의미일까.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향을 미치는 “양자얽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실험이 확장되어도 결국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불확정성원리였다. 그래서 리처드 파인만은 “파동-입자의 이중성이 양자역학의 가장 큰 미스터리”라고 했다. 1982년 말런 스컬리와 카이 드륄은 불확정성원리를 극복하는 실험을 제안한다. 토마스 영의 이중슬릿 실험을 원자로 대치시킨 사고 실험이다. 원자의 궤적을 예측하면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다고 본 것인데, 여기서도 관측기구와 관측 대상의 상호 관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광자나 원자를 직접 관측하지 않고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다면 어떨까? 관측 장비를 통과한 후에 광자의 경로를 추적하면 파동으로 나타난 간섭무늬가 사라질까? 이처럼 역으로 추적하는 ‘양자 지우개’ 실험으로 넘어가면 양자역학은 더 미묘해진다. 관측자가 ‘들여다보지 않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행동을 옮기는 순간 간섭무늬(파동성)는 다시 나타나버린다. ‘지연된 선택에 의한 양자 지우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관측이 이루어진 후에’ 입자의 경로를 확인할지 말지를 결정함에 따라 간섭무늬가 나타났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용해도 파동성과 입자성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입자들은 정말로 관측자의 의도를 읽고 있는 것일까?


주어진 물리계에서 ‘관측자’의 역할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어떤 자격을 갖춰야 관측자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세계의 파동함수는 단세포 생물이 출현할 때까지 수억 년 동안 붕괴를 미뤄왔는가? 아니면 좀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한 물리학 박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왔는가? 이는 존 벨의 질문이었다. 물리학자들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가능한지 비슷한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고리형 초전도체를 이용한 실험으로 최종적으로 거시적 양자 상태의 중첩이 생성된 것을 확인했다. 고양이까지는 아니어도 맨눈으로 양자적 중첩 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미시세계이고 어디까지가 거시 세계인지 경계조차 모호해졌다.


인간의 감각기관은 일종의 관측 장비이다. 청각기관은 하나의 물리적 현상(공기의 진동)을 다른 현상(전기신호)으로 바꿔서 뇌로 전송하는 역학적 장치이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은 물리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렇다면 오감이라는 것은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이차적 속성일까?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다. 결론이 어떻든 우리가 느끼는 이차적 속성이 실체와 똑같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 양자적 입자가 갖고 있는 물리적 특성들이 관측을 통해 나타난 결과일 뿐, 실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관측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관측 방식에 따라 나타나는 자연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광자나 전자와 같은 양자적 입자들은 관측을 하기 전에도 분명히 물리학의 법칙을 따르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 특성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가 관측을 해야 비로소 하나로 결정된다. 관측기구와의 상호작용이 이들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특정한 값이 나올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을 뿐 단 한번의 관측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결코 알 수 없다. 과학자들에게도 실체 문제는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양자적 실체는 양자 단위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숨은 변수는 없고 상호작용만 있다!) 아인슈타인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 한결같은 환영”을 실체라고 했다지만, 이쯤 되면 상호작용 그 자체를 실체라고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제 양자 큐비트와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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